"선수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 12년만의 통합챔프 비결"

서필웅 2019. 4. 1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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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첫 女사령탑 우승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 / 여성 특유의 리더십으로 지도 / 현역시절 경험 전수 최대 노력 / 부임 이후 5년간 시행착오도 / 김해란·김세영 등 합류 큰 힘 / 스포츠계 여성감독 인식 변화 / 후배들에게 길잡이 되고 싶어

세상에 팽배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누군가가 용감하게 나서 이에 맞서 싸우고 성과까지 만들어내야만 한다. 최근 국내 스포츠계에 뿌리 깊은 고정관념 하나가 깨졌다.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에서 박미희 감독이 흥국생명을 이끌고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프로스포츠 최초로 정상에 오른 여성 감독이 된 것이다. ‘많은 인원을 통솔하면서 장기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프로스포츠에서 여성 감독은 한계가 있다’는 통설을 보기 좋게 깼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2014년 부임 이후 5년간 쉼 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정상까지의 시간 속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해 결국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고 비결을 털어놨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여성 감독 최초로 우승을 달성한 프로배구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이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남정탁 기자
사실 그는 올드팬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1980년대 여자배구 슈퍼스타 출신이다. 다만, 선수생활을 끝낸 뒤 가정에 전념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배구계에 남아 가정과 일의 병행을 선택했다. 물론 당시만 해도 그에게 감독의 길이 열릴 거라고는 박 감독 자신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배구가 좋아 떠나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대표팀 매니저, 해설 등으로 오랜 기간 배구 곁에 있다 보니 조금씩 감독 제의가 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망설이다가 결국 결심을 했다”고 처음 사령탑에 도전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자신은 있었다. 여성 감독만의 확실한 장점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남성 감독들과는 달리 나는 선배로서 선수들에게 터놓고 다가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의 삶과 생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서 “감독이 된 이후에도 내가 걸어온 선수로서의 경험을 전수해 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고 자신의 지도철학을 설명했다.

그러나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시작한 감독생활도 시행착오는 찾아왔다. 그는 “선수들은 감독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지만 나는 선수단 16명과 16대1의 관계를 맺으니까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맞춰 주는 건 힘들더라. 가끔 오해도 생겼고 그만큼 상처도 받았다”면서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감독으로서의 나와 선수들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지난 시즌 김해란, 올 시즌 김세영 등 베테랑들이 합류하며 박 감독의 어깨도 매우 가벼워졌다. “어디까지나 나는 감독이라 팀 분위기를 이끄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감독이 할 일과 고참선수들이 할 일이 따로 있더라”라면서 “그래서 선수들을 믿고 맡겼고, 그만큼 팀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선 올 시즌 흥국생명은 한층 더 강해졌다. 2년 전 정규시즌 우승 뒤 지난해에 정규리그 최하위로까지 추락했지만 불과 한 시즌 만에 전열을 재정비해 다시 정규리그 1위로 복귀했다. 여기에 챔프전에서 한국도로공사를 꺾고 팀에 12년 만의 통합우승 영광을 안겼다. 그는 “2년 동안 많은 것을 겪으며 나도, 선수들도 함께 성장했다. 덕분에 영광스러운 통합우승을 해낼 수 있었다”고 밝게 웃었다.

더욱 뿌듯한 일은 박 감독의 활약 속에 여성 감독에 대한 스포츠계 인식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책임감은 더 커졌다. 그는 “최근 지도자를 희망한다고 내게 털어놓는 후배들이 배구뿐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많이 늘었다”면서 “나이가 적지 않아 얼마나 감독생활을 더 할지 모르겠지만, 남은 기간도 그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박 감독 이전 배구계 최초 여성 감독으로 길을 닦은 조혜정 전 감독에 대한 존경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첫 길을 걸어가신 것만으로도 조 선배는 엄청난 일을 하신 거다. 그분의 도전이 있었기에 나도 조금 더 편하게 여성 감독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내 우승과 함께 조혜정 선배의 노력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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