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청부사' 김연경이 말하는 터키 리그, 대표팀 [여기는 터키]

서다영 기자 입력 2019. 3. 1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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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유니폼을 입든 언제나 중심이자 간판이었던 ‘에이스’ 김연경(엑자시바시 비트라)은 올 시즌 소속팀에서 제2·3 공격옵션을 맡고 있다. 낯선 모습이지만 공격과 수비 모두 능한 김연경이기에 가능한 변화다. 최근 터키에서 만난 그는 역할 변화에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태극마크와 대표팀에 대한 솔직한 마음도 털어놨다. 팀 동료들 사이에 그가 유행시킨 ‘손 하트’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연경. 이스탄불(터키)|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배구 여제’ 김연경(31·엑자시바시 비트라)에겐 늘 챔피언이란 영예로운 표식이 따라다닌다. 1년 만에 복귀한 터키 리그에서도 소속팀을 정규 리그 1위로 이끌며 최종 우승을 향해 나아가는 그는 남모를 고충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 중이다.

어디서든 화려하게 빛나던 에이스는 새 보금자리에서 제2·3의 공격 옵션이 됐다. 수비, 리시브 등에 치우친 그림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궂은 토스에도 미소를 잃는 법이 없었다. 묵묵히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정신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일정하지 않은 볼 분배 속에서도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197점을 올린 김연경은 정규리그 21승1패(승점 64.300)로 라이벌 바키프방크(21승1패·승점 62.440)를 꺾고 순위 표 최정상에 오른 엑자시바시의 숨은 공신이다. 향후 이어질 터키리그 플레이오프와 유럽배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터키 컵 등에서 옛 명성을 되찾으려는 엑자시바시에게 김연경은 이미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이런 김연경의 뒤엔 ‘어머니’라는 든든한 동반자가 서 있다. 한국과 터키를 오가며 김연경의 타지 생활을 돕는데, 때론 막내딸의 투정도 군말 없이 받아주는 버팀목이다. 김연경도 낯선 땅에서 외로울 어머니를 위해 발렌타인데이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꽃을 사 집으로 돌아가는 애틋한 마음도 감추지 않는다. 힘든 순간을 함께 넘어서는 ‘내 편’에 대한 고마움이다.

스포츠동아는 최근 터키 이스탄불에서 김연경을 직접 만나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다.

● 힘들지만, 옳았던 터키 리그 복귀

-바쁜 일정을 소화중이다. 팀에 적응하는 데도 정신이 없었겠다.

“정규리그가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챔피언스리그 일정을 동시에 소화하다보니 해외 원정을 오가면서 더 바빴다. 다행히 터키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선수들이 나를 좀 더 친근하게 느끼더라. 또 과거 페네르바체 시절 동료인 멜리하와 에즈기가 도움을 많이 줬다. 근래엔 팀 동료들에게 손 하트를 가르쳐줬는데, 주머니에서 손 하트를 꺼내는 게 선수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웃음)”

-1년간 터키리그를 떠나있었다. 그 사이 달라진 점이 있나?

“페네르바체는 다른 종목을 함께하는 스포츠클럽이라 성적에 대한 압박감과 부담감이 많았다. 엑자시바시는 배구단이라 선수들을 믿는 분위기다. 경기에서 지더라도 ‘다음 경기에 잘해서 이기자’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는 스트레스가 없다.”

-바키프방크에게 정규리그 첫 패배를 당한 뒤엔 어땠나?

“상대가 잘했고, 우리가 못한 것은 인정했다. ‘터키 컵이나 더 중요한 경기가 많으니 잘 준비해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엑자시바시나 바키프방크 모두 좋은 팀이다. 다만 우리가 아직 세밀한 부분에선 많이 부족하다. 바키프방크는 이미 지난 시즌도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라 자체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만, 우리는 아직 선수 개개인이 잘 파악되어 있지 않다. 팀워크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또 연승만 하다보니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의 대비가 잘 안됐다. 앞으로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타이밍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팀의 메인 공격수가 아니다. 그간 맡아보지 않은 역할이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내 역할을 떠나 엑자시바시는 우승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적을 결정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처음엔 힘들기도 했다. 한 세트에 공을 하나만 때리다가 다음 세트엔 갑자기 10개를 때린 적도 있었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서 리듬이나 타이밍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나 뭐지? 무슨 역할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도 했다. 이 팀이 나를 영입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아직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사실 팀 내 레프트 포지션에서 공격과 수비를 다방면으로 잘 하는 선수가 많지 않다.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모타 감독과는 이야기를 해봤나?

“감독님은 내게 큰 요구를 안 하신다. 항상 ‘뭘 더 해야 할 것 같느냐’고 물으면 ‘지금도 괜찮다’고 한다. 나는 아직 5~60%밖에 보여주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게 다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선 속상하다. 나는 사실 더 하라면 할 수 있는데…. 하지만 팀을 나에 맞춰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감독님도 구상이 있을 거다. 개인적인 부분만 생각할 수는 없다. 나 자신을 많이 내려놓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래도 터키 리그 복귀는 좋은 선택이었을까?

“터키에 다시 돌아와 좋다. 중국보다 터키에서 유럽 배구를 배우는 것이 좋다. 이제 한국 나이로 32살이다. 적은 나이가 아닌데, 굴곡 없이 계속 좋은 팀에서 뛸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한편으론 몸 관리를 잘한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김연경. 이스탄불(터키)|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 디테일 입을 대표팀, “변화 시기 적절”

-해외 동료들에게서 라바리니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던데.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리그 미나스 클럽 소속 선수들이나 이탈리아 출신의 친한 선수들에게 물으니 모두들 ‘최고’라고 입을 모으더라. 사람도 좋고, 테크닉 지도법이나 전술·전략 모든 부분에서 평이 좋았다. 솔직히 코치가 그런 평가를 받기 쉽지 않다. 의견이 나뉘기 마련이다. 그런데 모두들 괜찮다고 하니 나도 사실 놀랐다. 이미 이탈리아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분이다. 함께하게 돼 영광스럽기도 하고, 기대가 많이 된다.”

-외국인 감독 선임은 파격적인 선택이다. 대표팀에 어떤 변화가 이뤄질까?

“세계 배구는 점점 디테일해지는데, 우리는 그런 부분에 있어 부족했다. 선수 개인 기량에 디테일까지 떨어진다면 세계무대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세계 배구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감독님을 만났으니 100% 믿고 잘 따르면 될 것 같다. 우리가 얼마나 빨리 습득하느냐가 중요하다. 다행히 변화의 시기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감독님이 어떻게 선수를 구성하고 어떤 전략을 짤지 궁금하다.”

-손발을 맞출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각 대회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인다.

“당연히 8월 예정된 2020도쿄올림픽 세계예선전이 가장 큰 대회이니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게 될 거다. 같은 조에 편성된 강팀 러시아는 물론 멕시코, 캐나다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 준비를 잘해야 한다. 올해 가장 첫 대회인 5월 발리볼네이션스리그는 호흡을 맞춰나가는 단계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에서는 여자배구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자부심을 느낄 것 같다.

“뿌듯하다. 요즘 경기장에 관중들이 많이 온다고 들었다.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소식도 참 듣기 좋다. 경기도 정말 재미있게 하더라. 터키 사람들에게도 한국 배구 리그가 유명하고, 훌륭한 리그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부러워하는 선수들도 꽤 있다. 대표팀에서 성적만 잘내면 더욱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지 않을까.” -남은 선수 생활의 유일한 목표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일이다. 동기부여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도 팀으로도 많은 것을 이뤘다. 큰 부상이 없다면 한국 나이로 36~37살쯤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다. 배구선수로서 가장 큰 목표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먼저다. 일단 출전을 확정짓고, 그 다음 것들을 준비하고 싶다.”

-김연경 아카데미를 비롯해 후원 사업 등 유소년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 배구를 하는 유소년 선수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후원 사업 역시 앞으로도 많이 이어갈 생각이다.”

-여전히 배구가 좋은가?

“물론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다. 약간 밀고 당기기를 하는 느낌이다(웃음). 하지만 배구를 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고,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내 삶이 모두 배구로 이뤄져있다. 김연경 아카데미도, 후원도 배구로 인해 시작하게 된 것 아닌가. 나 역시 여전히 배구로 인해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그래서 더욱 힘이 된다.”

이스탄불(터키)|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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