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감독 임기, '4년 보장'은 환상이다

김정용 기자 입력 2018. 7. 2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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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표팀 감독을 일단 뽑았으면 4년 동안 믿고 맡겨보자.'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 반복됐지만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는 목표다. 한국은 `1994 미국월드컵`을 준비할 때부터 전임 감독 체제를 도입했다. 그 뒤로 4년을 준비해 대회에 나간 감독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월드컵 직후에 감독을 선임해서 4년을 보장해주는 것이 최선일까? 사실은 2년 정도 준비하는 것과 4년을 준비하는 것 사이에 효과의 차이는 없고, 쓸데없이 기간이 길어지면서 불안요소만 커지는 게 아닐까? `풋볼리스트`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4년을 보장한다고 성적이 나아진다는 근거는 없다

4년을 한 감독이 지휘한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는 건 아니다. 각종 성공 사례를 봐도 4년을 준비한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각 조의 약체(6월 FIFA랭킹 기준으로 조 3, 4위인 팀)가 16강에 진출한 경우는 4팀이다. 그 중 4년 동안 한 감독이 맡아 준비한 팀은 하나도 없었다.

16강 진출 이변을 만들어낸 팀 중 가장 오래 한 감독이 지휘한 건 덴마크였다. 아게 하레이데 덴마크 감독이 약 2년 7개월 동안 팀을 이끌었다. 스웨덴은 약 2년, 러시아는 약 1년 10개월, 일본은 약 2개월 동안 지휘한 감독이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이들 중 일본은 대회가 임박해 감독을 경질하고 기술위원장이었던 아키라 니시노에게 지휘봉을 맡긴 특이 상황이니 제외하도록 한다. 나머지 세 팀 감독의 평균 재임 기간은 약 2년 2개월이었다.

한국의 성공 사례를 봐도 2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한 감독이 이끌었을 때 성적이 좋았다. `2002 한일월드컵`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1년 5개월 동안 준비해 월드컵을 치렀다. `2010 남아공월드컵`의 허정무 감독은 2년 5개월 동안 준비했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한 경우는 이렇게 두 번이었다.

다양한 성공 사례를 볼 때 적절한 재임 기간은 2년 정도였다

히딩크, 허정무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충분하다고 보고 월드컵 준비를 진행했다. 이례적으로 많은 A매치와 전지훈련 기회를 가졌던 히딩크 감독을 논외로 하더라도, 허정무 감독은 2년 반 동안 다양한 실험과 선수 변화를 모색할 수 있었다.

2년 반 동안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에 시도한 변화의 폭을 보면 4년씩이나 보장해 줄 필요가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허 감독은 당시 19세, 20세였던 기성용, 이청용을 대표팀에 데뷔시켜 남아공월드컵에서 핵심으로 활용했다. 주전 센터백 콤비인 조용형과 이정수, 선발로 경기를 소화한 김재성, 주전 골키퍼 정성룡 등 본선에서 뛴 국내파 선수 대부분이 허 감독 아래서 데뷔했다. 2년 반은 대표팀 선발 라인업 절반을 갈아엎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감독에게 2년을 맡긴 효과와 4년을 맡긴 효과가 비슷하다면, 너무 오랜 시간을 한 리더십으로 유지했을 때 나오는 건 부작용뿐이다. 모든 리더십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재임 기간이 짧으면 몰랐을 문제점들이 기간이 길어지면 하나씩 불거지기 마련이다.

스페인의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이 8년 동안 전성기를 이끌었고, 독일의 요아힘 뢰브 감독이 12년 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감독 임기는 길수록 좋다`는 주장을 하는 축구인도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세계 1위를 다투는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 모두 대표팀을 맡은 뒤 첫 메이저 대회에서 결승 진출을 달성했기 때문에 2년씩 재신임을 받아가며 장기집권에 도달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오히려 스페인의 경우 한 감독에게 지나친 신뢰를 보내면 독이 된다는 근거로도 볼 수 있다. 델보스케 감독이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로 2016`까지 지휘봉을 맡겼으나 결과는 16강 진출이라는 아쉬운 성적이었다.

또한 장기 집권이 가능한 유럽 국가들은 사실 2년 마다 감독의 역량을 꾸준히 재평가하며 거기까지 간 셈이다. 유럽은 2년 간격으로 유럽선수권(유로)과 월드컵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유럽 대표팀 감독은 2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한다. 대회 성과가 좋으면 다음 대회까지 임기가 연장되는 식이다. 통째로 4년을 맡기는 나라는 흔치 않다.

아시아 예선의 특성상, 교체 시기를 놓칠 위험이 높다

한국은 월드컵과 월드컵 사이에 `중간 평가`를 할 만한 대회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이 `4년 임기설`의 자연스런 원인이었다. 유럽은 유로와 월드컵을 통해 2년 단위로 감독을 재평가할 수 있다. 남미는 여름에 열리는 코파아메리카를 통해 1, 3년 단위로 재평가가 가능하다. 남미 역시 2024년부터 유로와 마찬가지로 월드컵과 2년 간격이 되도록 일정을 조정할 예정이다.

반면 아시안컵은 월드컵 바로 다음 해에 열리는데다가, 개최 시기가 일정하지 않다. 여름과 겨울을 오가며 개최된 아시안컵은 2011년부터 다가오는 2019년 대회까지 3회 연속으로 1월에 열린다. 월드컵 이후 겨우 반년 만에 아시안컵이 열린다. 아시안컵 이후 3년 반이 지나야 월드컵이 찾아온다. 아시안컵은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감독을 중간 평가 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에 열린다. 지난 두 차례 아시안컵 감독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이후 경질된 바 있다.

월드컵의 아시아 예선 과정 역시 감독 역량을 평가하기 어렵게 만든다. 유럽과 남미는 월드컵 예선을 하나의 단일 대회로 치른다. 남미 국가들은 예선 초기부터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만난다. 반면 아시아 예선은 2차 예선에서 거의 당연하다는 듯 약체들을 상대로 승리한 뒤, 최종(3차) 예선으로 돌입한 뒤에야 더 어려운 상대와 만나며 감독 역량을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감독의 경쟁력을 평가할 기회가 너무 뒤늦게 생긴다.

러시아월드컵 준비 과정을 보면 아시아 예선 일정이 감독 역량을 평가하기에 부적합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2015년 6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진행된 2차 예선을 무실점 전승으로 통과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2016년 9월 시작된 최종 예선에서 초반부터 흔들렸다.

최종 예선에서 문제를 드러냈지만, 아시안컵과 2차 예선에서 호평 받은 슈틸리케 감독을 바로 경질하기에는 시기상조였다. 최종 예선이 절반 진행된 2016년 11월부터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가 국내외 명장들의 선임 가능성을 타진하며 감독 교체를 물밑에서 알아본 것도 이 시기였다. 그리고 실제 경질은 6월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슈틸리케 감독을 신태용 감독으로 교체하는 것이 너무 늦었던 건 축구협회가 늦장을 부린 탓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예선 일정 자체가 조금만 방심하면 감독 교체 타이밍을 놓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축구협회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임의의 시점에 늘 대표팀 감독의 역량을 평가할 방법을 마련해둬야 한다. 대표팀과 프로팀을 막론하고 모든 감독은 수시로 교체된다. 축구의 생리다. 문제는 한국의 교체 타이밍이 자주 늦는다는 점과, 차기 감독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아 임시방편급 감독을 연속으로 선임했다는 점이다.

2+2 방식, 아시아에서도 가능하다

메이저 대회가 2년 마다 열리는 건 아니지만, 아시아에서도 2년마다 감독 역량을 재평가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일본의 알베르토 자케로니 전 감독이 대표적이다. 자케로니 감독은 2010년 일본축구협회와 계약하면서 `2+2` 형태의 계약을 맺었다고 알려졌다. 실제로는 보장된 계약 기간이 더 짧았다. 매년 계약이 갱신되는 형태였다. 자케로니 감독은 AC밀란, 유벤투스를 지도한 유명 감독이었다. 아시아 국가가 4년을 보장해주지 않아도 유명 감독과 계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1+3` 형태로 대표팀을 운영하는 방법도 있다. 앞선 월드컵 감독에게 이듬해 아시안컵까지 맡기고, 준비 기간을 가진 뒤 월드컵을 3년 남긴 시점에 본격적으로 감독을 선임하는 방법이다. 대표팀 감독을 꼭 월드컵 직후에 선임해 4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 역시 고정관념이다. 미국의 경우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자 올해 말까지 데이브 사라챈 코치에게 감독 대행을 맡기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새 감독을 선임하기로 했다.

한국도 `2+2` 형태로 계약을 체결한 전례가 있다. 2006년에 선임한 핌 베어벡 감독, 2010년에 선임한 조광래 감독이다. 둘 다 지도력이 인정받을 경우 다음 월드컵까지 대표팀을 지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베어벡 감독은 1년, 조광래 감독은 약 1년 4개월 만에 대표팀을 떠났기 때문에 한국은 연장 옵션을 실행해 본 경험이 없는 상태다.

선임위, 늘 감독을 평가하고 교체를 대비해야 한다

언제든지 감독을 경질할 수 있다는 것이 축구계의 생리이자 현실이라면, 축구협회는 늘 현재 감독을 평가하고 다음 감독을 물색할 준비를 해 둬야 한다. 축구협회는 올해 1월부터 감독선임위원회를 신설했다. 기존 기술위원회와 달리 국가대표 및 올림픽 대표 감독의 선임과 지원에만 신경 쓰는 새로운 조직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차기 감독 선임을 위해 수 개월 전부터 준비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대표팀 관련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새로운 위원회가 신설된 만큼, 과거보다 기민하고 정확하게 감독 평가와 선임이 이뤄저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의 대안을 찾지 못해 경질 시점을 놓쳤던 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선임위원회가 늘 대안을 모색하고 선임 가능한 감독의 풀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지금은 좋은 감독을 선임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니다`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월드컵 종료와 함께 대표 경험이 있는 감독들이 대거 구직 시장에 나오는 시점이지만, 그만큼 많은 타국 축구협회와 경쟁을 해야 한다. 또한 2년이나 3년 뒤가 아니라 4년 뒤 월드컵까지 직장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감독들도 잘 알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대표팀 부임을 더 꺼린다는 것이다.

김판곤 위원장이 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해 이미 움직이고 있는만큼 지금은 향후 4년을 책임질 감독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2+2` 형태의 계약을 추진하는 것이 위험부담을 줄이는 한 방법이다. 모든 감독들은 중도에 경질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축구협회 역시 새 감독의 업무에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늘 역량을 평가할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4년 뒤에는 좀 더 열린 사고를 갖고 다양한 감독 선임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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