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동생!'.. "소통하니까 눈빛만 봐도 서로 알았어요"

김지한 입력 2018. 7. 22. 07:01 수정 2018. 7.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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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차효심과 짝 이뤄 코리아오픈 혼복 우승한 장우진
단일팀 결성 5일 만에 정상.. "결승서 의지하게 돼"
"소름 돋아.. 훗날에도 다시 호흡맞추면 더 뜻깊을 것"
21일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 혼합복식에서 정상에 오른 차효심(왼쪽)과 장우진이 셀카를 찍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드라마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니까 저도 정말 얼떨떨해요. 효심이 누나한테 고마운 게 더 많아요."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이후 27년 만에 남북 단일팀 멤버로 국제대회 정상에 오른 장우진(23·미래에셋대우)이 한 말이다. 21일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가 열린 대전 충무체육관. 꽉 들어찬 4000여 관중석에선 두 선수의 이름이 연이어 터져나왔고, 우승이 확정되자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 대회 혼합복식에 남북 단일팀으로 나선 한국의 장우진과 북한의 차효심(24)은 순간적으로 서로 껴안으면서 우승 분위기를 만끽했고, 셀카도 함께 찍으며 그 순간을 남겼다.

21일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 혼합복식에서 정상에 오른 차효심(왼쪽)과 장우진.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김택수 한국 남자탁구대표팀 감독은 "솔직히 4강만 가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 다 정말 잘 싸웠다. 이게 스포츠의 힘인 것 같다"고 말했다. 둘이 호흡을 처음 맞춘 건 지난 16일. 코리아오픈에 북한 대표팀이 참가하기로 확정하면서, 남녀 복식 각 1개 조와 혼합 복식 2개 조에 한해 남북 단일팀이 결성되고, 합동 훈련을 처음 한 날이었다. 그렇게 호흡을 맞춘 지 1주일도 안 돼서 둘은 세계선수권 못지 않은 수준으로 치러진 코리아오픈 정상에 올랐다.

예선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장우진-차효심은 16강에서 홍콩의 웡춘팅-두호이켐을 3-1, 8강에서 홍콩의 호콴킷-리호칭을 3-0으로 완파하면서 기세를 이었다. 이어 준결승에서 대만의 첸치엔안-쳉이칭을 3-2로 따돌린 뒤, 결승에선 '만리장성' 중국의 왕추친-순잉샤에 3-1로 역전승했다. 홍콩, 대만, 중국 조 등 만만치 않은 상대를 연이어 물리친 것이다.

21일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 혼합복식에서 경기를 치르는 차효심(왼쪽)과 장우진.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김 감독은 "우리가 완벽하게 경기를 치러 이겼다. 시간은 부족했지만 첫날 연습할 때부터 둘이 예사롭지 않더라"고 말했다. 장우진은 오른손 셰이크핸드, 차효심은 왼손 셰이크핸드 전형이다. 둘은 합동 훈련 첫날 서로의 스타일을 공유한 뒤에 호흡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장우진은 먼저 1991년 세계선수권 단일팀 멤버였던 김택수 감독에게도 조언을 얻었다. 장우진은 "감독님이 당시 처음에 북측 선수들과 서먹서먹하셨대더라. 그래서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어색하게 하지 말자고 하시더라"면서 "먼저 다가갔는데 효심누나도 적극적이었다. 털털하고 소심하지 않더라. 그래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말했다.

장우진은 1살 많은 차효심을 '효심이 누나'라고 불렀다. 차효심은 장우진을 '동생'이라고 불렀다. 장난도 치면서 금세 친해졌다. 장우진은 "김택수 감독님이 효심 누나한테 '우진이보다 네가 누나니까, 잘 못하면 때려도 돼'라고 농담조로 하시더라. 그러니까 효심 누나가 "남자한테 그러면 됩니까"라고 해서 감독님이 "우진인 착하니까 괜찮아"라고 답하자 누나가 "착하겐 안 생긴 것 같은데..."라고 해서 서로 쑥쓰러웠던 게 풀어졌다"고 말했다.

21일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 혼합복식에서 정상에 오른 장우진(왼쪽)과 차효심이 우승을 확정짓고 기뻐하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경기를 치르면서 둘은 호흡을 더 맞춰갔다. 장우진은 "효심 누나가 상대 남자 선수가 치는 공을 잘 받아주니까, 나도 더 편안하게 칠 수 있었다. 서로 소통을 많이 하고, 하나둘씩 그런 부분들이 쌓여가니까 말 그대로 믿음이 생겼다. 대회 막판엔 벤치에서 서로 말을 안 해도 눈빛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용어에 대해서도 북한식 순우리말에 맞춰 소통을 풀어갔다. 장우진은 "처음엔 못 알아들었지만 누나가 친절하게 알려줬다. 리시브를 받아치기, 서브를 쳐넣기 하는 식으로 우리가 용어를 맞췄다. 시합 전후로 더 얘기하면서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21일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 혼합복식에서 정상에 오른 장우진(오른쪽)과 차효심(왼쪽 둘째)이 우승을 확정짓고 코칭스태프와 기뻐하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우승을 확정한 뒤 장우진은 "친구처럼 대해줬던 효심이 누나한테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홈에서 열린 대회라 긴장도 많이 했다. 그런데 효심 누나가 침착하게 하던대로 하자고 했다. 경기하면서도 의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승을 확정하고 순간적으로 차효심과 포옹하는 세리머니를 펼친 장우진은 "자연스러운 감정에서 정말 기뻐서 그런 세리머니가 나오더라. 그런데 게임 끝나고 세리머니할 땐 괜찮았는데 효심누나가 짐 정리하고 나갈 때 살짝 눈물을 보이더라. 그때 나도 헤어져야겠단 생각에 살짝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21일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 혼합복식에서 정상에 오른 장우진(오른쪽)과 차효심(가운데)이 우승을 확정짓고 기뻐하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5월 단체전 세계선수권 여자 팀에 이어 2달여 만에 직접 단일팀 혼합복식 멤버로 국제대회 정상에 오른 장우진은 훗날을 기약했다. 장우진은 "소름이 돋았다. 역사에 남을 일 아닌가. 인생에 정말 기억에 남을 일이 될 것 같다"면서 "앞날을 장담할 순 없지만 훗날 또다시 같이 하게 된다면, 더 뜻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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