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국이 버린 '차붐' 위로한 중국 선전..'20년의 약속'

최용재 2018. 7. 20.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간스포츠 최용재]
사진=스포츠공감 제공
사진=스포츠공감 제공
1998년 차범근은 한국 축구의 '역적'이었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던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 참패의 원흉으로 낙인찍혔다. E조 1차전 멕시코와 경기에서 1-3 역전패를 당한 뒤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0-5 참패를 당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초유의 월드컵 도중 감독 경질이라는 선택을 했다. 한국 축구가 한국 축구의 '영웅' 차붐을 처참하게 버렸던 장면이다.

차 감독은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었다. 온갖 비난의 목소리와 대한축구협회의 외면으로 한국 축구에 차 감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차 감독은 중국으로 떠났다. 바로 중국 광둥성의 '선전'이었다. 차 감독은 1998년 7월 선전 핑안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금이야 선전은 경제 발전으로 중국 4대 도시로 IT 산업의 중심 도시로 유명하지만 당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였다. 그리고 차 감독에게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장소였다. 차 감독은 이곳에서 1999년 12월까지 머물렀다. 그에게 선전은 나락으로 몰렸던 자신을 위로해 준 곳 그리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장소기도 하다. 20년 뒤 차 감독이 다시 선전을 찾았다. 선전에 진 마음의 빚을 갚고자 그리고 20년 전 선전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차붐은 몸과 마음을 선전으로 이끌었다.

사진=스포츠공감 제공
19일 선전 샹그릴라 호텔에서 '팀차붐 플러스 론칭 기자회견'이 열렸다. 내외신 취재진 60명 이상 운집하는 등 선전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팀차붐 플러스는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팀차붐 유소년 프로그램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넓히는 프로젝트다. 그 시작이 중국이다. 차범근 축구 교실로 한국 유소년 축구에 큰 힘을 쏟아 온 차붐이다. 차범근축구상은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해 차범근축구상을 수상한 11인은 팀차붐이라는 팀을 꾸려 독일 원정을 다녀왔다. 한국 축구의 미래는 유소년에게 달렸다는 차붐의 철학과 유소년을 발굴해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차붐의 소명이 합쳐진 작품이다. 이제 차붐은 중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기존 팀차붐과 차이점도 있다. 팀차붐은 초등학생 육성에 집중하고 있고, 팀차붐 플러스의 대상은 중학생이다. 초등학생에 이어 중학생도 발굴하겠다는 차붐의 신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사진=스포츠공감 제공
"선전에 마음의 빚이 있다."

선전에서 만난 차붐은 그윽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꺼냈다. 그는 "1998년에 나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한국에서 상황은 어려웠다. 많은 괴롭힘도 받았다"며 "그때 나를 받아 준 곳이 선전이다.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정말 고마운 도시"라고 20년 전을 떠올렸다.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전이 차붐에게 준 감동은 컸다. 차붐은 "선전에 있을 때 나의 제자들, 팬들은 지금까지 나를 잊지 않고 반겨 준다. 내가 선전으로 오면 이들은 항상 나를 반겨 줬고, 나를 보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온 친구들도 있었다. 진심을 느꼈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런 감동은 항상 차붐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1999년 차붐은 선전을 떠났다. 재계약 제의가 강했지만 아내가 아팠다. 폐 수술을 해야 했다. 선전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선전을 떠나면서 차붐은 이렇게 약속했다.

"선전이 나를 사랑해 주고 위로해 줬다. 언젠가 선전에서 좋은 축구로 후진을 양성하겠다. 선전 축구 발전을 위해 차범근 축구 교실을 열겠다."

이 약속이 '20년' 만에 지켜졌다.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기회를 노렸지만 수차례 무산됐다. 이번에는 중국 국영기업인 중정문체발전관리유한공사의 후원으로 성사할 수 있었다.

차붐은 "중국에서 유소년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 처음에는 반대했다. 한국에서도 할 일이 많고, 많은 제의도 뿌리쳤다"며 "지속적으로 제의가 왔다. 그래서 선전에서 시작하면 수락하겠다고 내가 역제안을 했다. 받아들여졌다. 선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설명했다.

시작은 선전이지만 크게는 중국 축구 전체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차붐은 "중국 축구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나의 축구 삶을 보여 주면서 중국 유소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소년이 변하면 중국 축구 전체도 변한다"고 강조했다.

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는 중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매해 범위를 확대해 아시아 축구 전체적인 발전을 꿈꾸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속한 46개국 대상으로 아시아 유소년 기량을 높이는 차원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차붐은 한국 축구 영웅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축구의 영웅이다. 그가 분명히 아시아 축구에서도 할 일이 있다. 이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부탁한 일이기도 하다. 인판티노 회장은 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사진=스포츠공감 제공
"나도 이제는 아시아 축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인 차붐은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만 잘한다고 아시아 축구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동남아시아·중동 등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경쟁해야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아시아 축구 발전에 힘이 되고, 월드컵에서도 아시아 축구가 선전하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나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넣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왜 100골을 채우지 못했냐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2골 중 1골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1골은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해 남겨 뒀다' 인생에서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머지 2골을 꼭 채우겠다."

차붐이 한국과 아시아 축구의 '희망'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선전(중국)=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고려인 출신' 피겨 데니스 텐, 칼에 찔려 사망

1998년 한국이 버린 '차붐' 위로한 중국 선전…'20년의 약속'

상승세 LG vs 독보적 1위 두산, 잠실 라이벌 빅뱅

이소라 “고소영과 신경전, 같은 옷도 안 입어”

'인생술집' 이혜영 “과거 신동엽과 소개팅 했었다”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