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홍명보의 아이들' 지금은 안녕하십니까?

박주미 입력 2018. 7. 19. 15:10 수정 2018. 7. 1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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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시상식 기념사진

눈이 마주치자마자 환하게 웃는다. 2012년 20대 초반의 나이가 이젠 서른. 앞자리 숫자가 2에서 3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내 눈엔 10년 전 청소년 대표 시절에 처음 본 그대로 박종우다. 그리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수확해 낸 자랑스러운 선수, 독도 세리머니로 마음고생을 꽤 했고 그래서 시상식엔 동료들과 함께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선수다.

'승리를 가져올게' 파랑새가 된 독도남

"이게 얼마 만이야~~~" "진짜 오랜만이죠!" 이젠 서로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된 박종우는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게 인사를 한다. 2014년 2월 중국 광저우로 이적한 뒤로 무려 5년 만에 본 '실물영접'인데 새삼 5년의 세월이 낯설게 느껴진다. 중국 광저우에서 1년을 보내고 아랍에미리트리그로 이적해 중동 생활을 한 박종우는 올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K리그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오랜만에 K리그에 돌아왔다. 기분이 어떨까?

"신입생, 1년 차 느낌이에요. 하하! 많이 바뀌었어요. 같이 뛰던 형들도 있지만 어린 친구들이 많고 감회가 새롭고 기대도 되고, 부담도 없지 않아 있고요"

큰돈을 포기하고 국내로 복귀 왜?

솔직히 궁금했다. 중동은 선수들에겐 매력적인 리그다. 큰돈을 벌 수 있다. 연봉도 그렇고 세금 부분도 국내보다는 조건이 좋다. 리그 수준도 낮지 않다. 더운 날씨가 처음 적응할 때에는 힘들 수 있지만 웬만한 실내에는 냉방 시설이 갖춰져 있다. 경기장에도 냉방 시설이 있을 정도니 나쁘지 않다. 습도가 낮은 편이어서 그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면 되고 해가 지면 제법 시원하다.

부인과 남매를 둔 한 가장의 입장에서는 이직(선수에게는 이적)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로 고려해야 할 항목은 수입일 텐데 돈을 포기하고 국내로 복귀한 이유가 뭘까? 돈을 벌 만큼 벌어놓은 걸까? 오랜 해외 생활에 지쳐 한국어로 부르는 응원과 함성이 그리웠을까?

"솔직히 그게 제일 컸어요. 해외 생활하면서도 K리그 경기는 계속 챙겨봤거든요. 하이라이트도 챙겨보고요. 아내랑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했었어요. 마침 수원 경기 보고 있었는데 저런 팀, 저런 경기장, 저런 팬들이 보내주는 응원이 들리는 곳에서 뛰면 기분이 어떨까? 아, 나도 한 번쯤은 뛰어보고 싶다. 이렇게요."

'아. 저 눈빛. 그래 종우는 저런 선수였지.' 그동안 취재 경험에 비춰 장담하건대 가식이 아니다. 박종우는 솜씨 좋게 둘러대거나 교묘하게 피하거나 혹은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말로 인터뷰를 하는 선수가 아니다.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말하기가 어려워요." "답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솔직하게 말하곤 했다. '정말 국내 팬들의 응원이 그리웠구나' 싶다.

그리고... 뛰지 않는 동료들

그토록 국내로 복귀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라운드에서 동료들이 뛰.지.않.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박종우는 2015년 7월부터 명문팀 알자지라에서 뛰다 2017년 구단 사정으로 에미리트 클럽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에미리트 클럽은 하위권에 있는 팀이었지만 상위권 도약이라는 새로운 목표와 도전을 오랜만에 품게 해준 팀이었다.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박종우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한 경기 한 경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도 모자랄 판에 동료들은 대충이었다.

오랜 패배감에 찌든 동료들의 생각은 '어차피 질 텐데 뭘…' 이었다. 박종우 혼자서 답답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새로 이적한 팀이 있는 곳은 휴양지 같은 곳이어서 자녀들은 정말 좋아했다.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연봉은 받았으니 대충 뛰어도 되는 일.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내와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 훈련장에서 만난 박종우와의 일문일답 2018.07.16

이제야 꺼내는 본론

박종우의 K리그 복귀가 반갑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축구의 현실을 떠올린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 수확을 해냈을 때만 해도 한국 축구의 장래는 밝았다. 앞날엔 꽃길만 펼쳐진 줄 알았다. 그러나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이 한국축구의 마지막 영광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주축 선수들인 런던 세대, 이른바 '홍명보의 아이들'이 예상보다 더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한국 축구의 전체 부진과도 연결된 듯하다.

기성용과 구자철을 제외하고 유럽 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준 선수를 꼽기 어렵다. 2012년 당시에는 더 많은 선수가 유럽 무대를 활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반적인 선수들의 기량이 성장해 한국 축구 전체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설 것으로 많은 이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대부분 2~3년 사이에 경기력이 떨어지거나 팀에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성장의 가속도를 붙여야 할 시기에 지지부진했다.

물론 런던 세대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다. 더 좋은 팀으로 이적하고 더 좋은 곳에서 뛰고 싶고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는가? 시기적 상황이나 주변 변수가 있었을 테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중심 역할을 맡은 런던 세대의 기대에 못 미친 성장과 뜻밖의 방황은 두고두고 아쉽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은 귀국 현장에서 속된 말로 '엿을 먹었고'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는 달걀이 날아왔다. 이어진 한국 축구의 부진과 점점 실감하게 되는 아시아 축구에서 한국 대표팀의 위상 변화가 떠오르는 이유다.


K리그에서 부르는 런던 세대의 부활

이 때문에 박종우가 K리그로 복귀한 것이 반갑다. 박종우와 함께 런던 세대인 윤석영도 이번 여름 이적 기간에 K리그에 돌아왔다. K리그에서 이 런던 세대가 보여줄 활약이 기대된다. 런던 세대의 성공적인 부활로 한국 축구가 부진에서 탈출하고 아시아 호랑이의 자존심을 다시 찾아오길 희망한다. K리그에서 마지막 불꽃을 제대로 활활 피워주길 기다린다.

박주미기자 (jj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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