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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기자 코리안 리포트] 14년차 베테랑 추신수의 길고 힘들었던 여정

민훈기 입력 2018.07.17. 12:04 수정 2018.07.1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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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기 51경기 연속 출루의 시즌 최고 기록을 쓰면서 빅리그 데뷔 14년 차에 올스타에 선정되기까지


16일(이하 한국시간) 벌어진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볼티모어 상대로 추신수(36)는 시즌 18호 홈런 포함 2안타 2볼넷으로 4번의 출루를 기록했습니다. ‘전설’ 베이브 루스가 1923년에 기록한 51경기 연속 출루와 타이를 이뤘습니다. 올 시즌 MLB 최다 기록이자,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 최고 기록을 후반기로 이어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생애 첫 올스타전으로 갑니다.


추신수는 정말 힘겨운 길을 모두 이겨내고 오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2001년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후 마이너리그에서 빼어난 실력 발휘에도 불구하고 참 오랜 기간 마이너에서 뛰어야 했습니다.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를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한 것이 빅리그 도전과 정착의 결정적인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시내티를 거쳐 거액의 FA 계약으로 텍사스 이적까지. 추신수의 여정을 마이너 시절부터 돌아보겠습니다.


데뷔 14년만에 올스타전에 출전한 추신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TX SNS


◆ 시애틀을 선택한 추신수

부산고등학교 왼손 투수 추신수에게 가장 꾸준한 관심을 보인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였습니다.

짐 콜번 스카우트 부장(후에 다저스 투수코치)이 직접 부산으로 날아가 추신수의 투구를 면밀히 살폈습니다. 그리고 투구를 마치자 추신수에게 타격을 한 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추신수는 장외 홈런을 쳤습니다. 150km를 넘게 던지는 왼손 투수 대신 타자가 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를 감안했을 것입니다. MLB 투수의 평균 신장이 190cm 정도 되는데 추신수는 180cm 남짓했고 당시는 더욱 왜소한 고교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격 능력이 눈길을 확 끌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시애틀보다 더욱 많은 사이닝 보너스를 제시한 팀이 있었습니다. 바로 뉴욕 양키즈였습니다. 그렇지만 추신수는 꾸준히 관심을 보여준 시애틀과의 의리를 선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시애틀 마이너에서 지나치게 오랜 기간을 보낸 아쉬움이 있고, 그래서 양키즈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여운은 남지만 추신수는 늘 그런 친구입니다.


시애틀 마이너리그 시절 만난 추신수 @minkiza.com 



◆ 눈부신 마이너 시절


지금부터 17년 전인 2001년 18세 소년 추신수는 애리조나 루키리그에서 미국 프로야구생활을 시작합니다. 말도 안 통하고 은근히 차별이 빈번히 발생하는 어려움에도 51경기에서 3할2리에 2루타 10개, 3루타 10개, 홈런 4개, 12도루, 35타점, 51득점의 눈부신 활약을 펼칩니다. 66안타 중에 28개의 장타에 51경기에서 51득점이라니. 게다가 출루율이 4할2푼7리에 OPS가 .936의 압도적인 첫 시즌이었습니다.

시애틀 팀은 시즌 막판에 추신수를 싱글A로 올렸는데 3경기 출전해 13타수 6안타 4할6푼2리를 기록했습니다.


돌아보면 마이너에서는 어떤 레벨이든 상관없이 정말 거칠 것이 없는 활약을 펼친 추신수였습니다.

2002년 위스컨신의 미드웨스트리그 싱글A팀에서 시작한 추신수는 119경기에서 3할2리에 2루타 24개, 3루타 8개, 홈런 6개에다 무려 34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시즌 막판 다시 승격해 하이 싱글A에서 11경기 3할8리로 프로 데뷔 후 뛴 소속 리그마다 항상 3할대 타율을 기록합니다.


2003년 하이 싱글A 캘리포니아리그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110경기 2할8푼6리로 잠시 숨고르기를 했지만 2루타 18개, 3루타 13개에 홈런은 계속 늘어나 9개를 쳤습니다.

2004년에는 더블A로 승격돼 더욱 매서운 방망이를 휘두릅니다. 흔히 ‘더블A부터 진짜 프로야구’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이 레벨부터는 경쟁이 치열해 집니다. 여기서 좌절하는 선수가 부지기수. 그런데 추신수는 텍사스리그 샌안토니오 소속으로 132경기를 뛰며 프로 데뷔 후 최고인 3할1푼5리에 개인 최다 15홈런, 84타점, 89득점으로 모든 부문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도루는 무려 40개를 쟁취했고 2루타 17개, 3루타 7개의 중거리포도 건재했습니다.



◆ 빅리그 데뷔와 트레이드


2005년, 프로 데뷔 5년 만에 추신수는 AAA까지 진출합니다.

거칠 것 없는 ‘추추 트레인’의 질주는 결국 메이저리그 데뷔로 이어집니다. 시즌 초반인 4월 22일 시애틀 홈구장 세이프코필드에서 벌어진 오클랜드와의 홈경기, 0-3으로 뒤진 9회 투아웃 1루에서 포수 미겔 올리버를 대신해 대타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처음 밟았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오클랜드의 정상급 마무리 옥타비오 도텔. 1구 몸쪽 낮은 볼(150km)을 고른 뒤 2구 바깥쪽 속구(150km)를 쳤지만 1루 땅볼로 아웃됐다.


그 후 몇 차례 잠깐씩 빅리그를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꾸준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추신수의 수비 위치인 우익수에는 스즈키 이치로라는 대스타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추신수의 재능을 인정한 팀에서는 이치로에게 중견수 전향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치로를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인데, 오히려 추신수의 좌익수 전향이라든지 다른 방안을 팀에서 찾지 못한 점은 아쉬웠습니다.

결국 다음 시즌 중반까지 추신수는 시애틀에서의 빅리그 총 14경기에서 6푼9리(29타수 2안타)의 기록만 남기고 2006년 7월 27일 마이너리그의 션 노팅햄과 함께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됩니다. 시애틀은 1루수 벤 브루사드를 받았습니다.


2006년 클리블랜드 이적 후 드디어 빅리그 기회를 잡기 시작합니다. @minkiza.com



◆ 솔직한 추신수, 클리블랜드에서 피어나다


클리블랜드 이적 후 곧바로 빅리그에 편입된 추신수는 트레이드 이틀 후인 7월 29일 빅리그 경기에 선발 출전합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시애틀. 그리고 홈런 하나와 볼넷 2개를 기록했는데 추신수의 빅리그 제1호 홈런이었을 뿐 아니라 경기가 1-0으로 끝나며 결승 홈런이 됐습니다.


2006년 중반부터 새 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45경기를 뛰며 2할 9푼 5리 3홈런 22타점으로 실력 발휘를 했지만 팀 사정으로 2007년은 AAA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당시 3루수 앤디 마르테의 부상으로 4월 하순 빅리그에 갔다가 5월 4일 다시 AAA 버펄로로 간 추신수는 3할2푼3리의 맹타로 빅리그 콜업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팔꿈치가 많이 아팠습니다. 참고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빅리그의 호출을 받은 7월, 추신수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무조건 올라가서 최선을 다해서 뛰다가, 너무 아파지면 부상자 명단(DL) 가면 되긴 합니다. 그러면 MLB 활동 기간도 늘어나고 FA도 빨라질 수 있습니다.(DL도 모두 활동 기간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만약 빅리그 가서 금방 아파지면 마이너리그 코칭스태프와 의료진이 질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 추신수는 AAA 감독에게 팔꿈치 통증을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빅리그 호출 대신 정밀 검사를 받았고, 결국은 인대 접합 수술이라는 안타까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1년 가까이 수술과 재활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이때가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당시 플로리다에서 재활하던 추신수를 만났을 때도 가족 등을 걱정하며 국내 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빅리그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솔직한 통증 고백으로 인해 MLB 경력은 1년 정도 손해를 봤지만, 추신수는 팀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6월 초 건강하게 빅리그에 복귀해 3할9리 14홈런 66타점 68득점으로 드디어 진정한 ‘빅리거’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진 2009-2010시즌 2년 연속으로 추신수는 3할 타율에 ‘20홈런-20도루’ 클럽에 이름을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했습니다. 110년이 넘은 클리블랜드 구단 역사상 2년 연속 타율 3할-20홈런-20도루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추신수가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2010년에도 올스타전 출전이 유력해 보였지만 7월 초 오른손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DL에 오르며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던 추신수였습니다.


손가락에 상대 투구를 맞는 중상과 음주운전 구설수 등의 사건사고도 있었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 성실함으로 위기를 극복한 추신수는 동료들 사이에서 ‘가장 저평가되는 선수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외야수 커티스 그랜더슨을 만났을 때 우연히 추신수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가장 먼저 한 표현도 ‘most underrated player’라는 말이었습니다.


전반기를 51경기 연속 출루로 마치며 시즌 최다 기록과 텍사스 최고 기록을 후반기로 이어갑니다. @TX SNS


◆ 신시내티를 거쳐 텍사스로


2012시즌을 마치고 FA 1년을 남긴 가운데 결국 클리블랜드는 추신수를 신시내티로 트레이드했습니다.

물밑으로 다년 계약 협상도 있었지만 스캇 보라스의 요구 조건을 맞추기에는 클리블랜드의 재정이 약했습니다. 신시내티와도 1년 계약을 맺고 2013시즌 후 FA 시장을 노린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만 서른의 추신수는 생애 처음 맞이한 내셔널리그 시즌이었지만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154경기를 뛰면서 21홈런 20도루로 개인 통산 3번째 20-20을 기록했고 무려 4할2푼3리의 출루율을 기록하며 생애 최초로 100득점 고지에 올랐습니다.(107득점)

시즌이 끝나고 신시내티는 FA 추신수를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가장 무거운 계약서를 안긴 텍사스가 추신수의 새로운 둥지가 됐습니다. 7년 1억 3000만 달러의 거액 장기계약이었습니다.


워낙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라서 주변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2016시즌에는 부상으로 48경기를 뛰는데 그쳐 비난이 쏟아지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2017시즌에는 149경기를 뛰면서 2할6푼1리에 22홈런 78타점 96득점으로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경기 외적으로도 클럽하우스의 든든한 맏형, 리더 역할을 하면서 팀 관계자들이나 언론, 그리고 팬의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그리고 2018시즌을 앞두고 레그킥을 장착하는 등 변신을 꾀하며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가 무색하게 놀라운 전반기를 장식했습니다.

51경기 연속 출루로 MLB 야구계의 큰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2할9푼3리에 출루율 4할5리, 18홈런 43타점, 54득점, 62볼넷에 2루타 20개도 보탰습니다. 볼넷은 리그 2위이고, OPS .911도 리그 9위의 기록입니다. 후반기에도 추신수가 현재의 추세를 이어간다고 가정해 단순히 뽑아보면 생애 3번째 4할대 출루율과 함께 개인 통산 최다인 한 시즌 30홈런을 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막 36번째 생일이 지난 추신수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미 아시아권 타자 중에 마쓰이 히데키의 홈런 기록(175홈런-추신수 186홈런)과 이치로의 연속 출루 기록(43경기)을 넘어 두 부문 최다 기록을 쓰고 있는 추신수는 올해 후에도 2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있습니다. 전반기의 빼어난 활약으로 트레이드 시장에서 이름이 계속 오르내릴 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2년간 각각 2100만 달러씩 남은 연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내일 18일(수)에는 추신수가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나섭니다.

코리안 빅리거 중에는 2000년 박찬호, 2001년 김병현 등 두 명의 투수가 올스타전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타자로는 2005년 최희섭이 홈런 더비에 출전한 적이 있지만, 올스타전 출전은 추신수가 처음입니다.


요즘 좀 각광을 받는 듯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저평가돼 있는 추신수지만, 한국 선수라는 점을 떠나서 정말 대단한 메이저리그 타자입니다. 특히 경기 외적으로도 동료로서, 팀 리더로서, 바른 야구를 하는 모범적인 야구 선수라는 점에서 추신수는 당대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존중을 받는 ‘진짜 올스타’입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Wikipedia, yahoo.com, TwxasRangers SNS 등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