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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륭의 원사이드컷] 프랑스,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

조회수 2018. 7. 16. 12: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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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피날레
#프랑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
'Nos différences nous unissent'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 프랑스 대표팀의 유니폼에는 늘 이 문구가 적혀있다. 인종, 출신, 개성이 다른 선수들이 프랑스라는 깃발 아래서 성장하여 20년 만에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소속팀에서는 누구보다 특별한 선수들이지만, '레블뢰' 속에서는 평범하게 플레이 했다. 개인이 평범해지니, 팀은 특별해졌다. 

'Nos différences nous unissent' , 우리의 다름이 우리를 뭉치게 한다. 프랑스 유니폼에 세겨진 문구.

6승 1무, 14득점-6실점

이상적인 숫자로 보이지만 프랑스는 불안요소가 많았다. 조금 특수한 상황이었던 덴마크와의 조별리그 3차전을 제외하면 매 경기 승패가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처음부터 준결승이나 결승을 바라보지 않고 눈앞에 닥친 경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 칸씩 계단을 밟고 오르다보니 꽤 좋은 상황으로 결승전에 임할 수 있었다.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언젠가부터 프랑스 축구 앞에 '아트싸커'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사실 프랑스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떠오를만큼 예쁘게 축구를 한 적이 없다. 스타 선수들이 많다고 해서 축구를 화려하고 예쁘게 할 의무는 없다. 그것은 감독의 선택이며 월드컵은 국가대항전이자 단기 토너먼트이기 때문이다. 

개인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이 확실한 팀 미션을 부여받고, 공격보다 수비에 우선 순위를 둔 축구를 했다. 프랑스는 벨기에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히 실리를 추구했다. 이는 지난 두 번의 메이저 대회 경험과 프랑스의 장단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데샹 감독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32개국 중 프랑스는 분명 가장 완성도가 높은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팀과 경기해도 지지 않을 팀이었다.

프랑스는 그렇게 자신들의 가슴에 두번째 별을 세겼다.

<결승전 퍼포먼스 분석표> 39% 점유율, 99km 의 활동량만으로 프랑스는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 프랑스는 느긋했다

이번 대회 프랑스의 키워드는 '느긋함'이다. 개인 능력을 갖춘 팀이 수비에 우선 순위를 두니 팀은 제법 튼튼했다. 프랑스는 지공 상황에서 전개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견고하게 기다렸다가 빠르게 반격하는 것을 선호했다. 사실 데샹 감독 체재의 프랑스는 점유율을 기반으로 지공 상황을 즐기는 팀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 콜롬비아와 러시아를 상대한 평가전에서 곪았던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지공 상황에서 세밀함이 떨어졌고 이는 집중력 저하와 역습 허용으로 이어졌다. 데샹 감독은 5월부터 치러진 세번의 평가전에서 각기 색다른 컨셉을 시도했다. 아일랜드 전에는 투톱 밑에 페키르를 자유롭게 둔 4-3-1-2 를 실험했고, 이탈리아 전은 그리즈만 제로톱 형태의 4-3-3 을 시도했다. 그리고 마지막 평가전인 미국 전에서 이번 월드컵 포진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상대보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한 경기는 세 번에 불과했다. 뛴 거리가 많았던 경기 역시 세 번 뿐이었다. 경기 자체를 압도하진 못했다는 뜻이다. 대신 27개의 유효 슈팅에서 14골을 성공시켰다. 크로아티아를 상대한 결승전에서도 그런 특징이 잘 나타났다. 39%의 공 점유율, 99km 의 평범한 뛴 거리를 기록했지만 전체 8번의 슈팅 중 6번을 유효슈팅으로 연결했고 그중 4골을 성공시켰다.

지난 월드컵 이후 데샹 감독의 프랑스는 단계별로 진화했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 때는 다이나믹했고, 2년 전 유로를 준비하던 과정 당시에는 화려했다.  누구보다 타이틀이 절박했던 데샹 감독은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팀을 바라봤고, 색다른 방법을 그의 선수들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월드컵 우승으로 연결됐다.

# 디디에 데샹

프랑스의 우승으로 데샹 감독은 베켄바우어와 자갈로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트로피를 차지하는 역사상 세번째 인물이 됐다. 훌륭한 세대에 대표팀 감독을 맡아 브라질 월드컵 8강, 유로 2016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프랑스와 데샹에게는 메이저 타이틀이 필요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2020년까지 재계약을 완료했으나 월드컵 지역예선의 부진한 경기력 때문에 프랑스는 정체된 팀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데샹은 선수 시절만큼 훌륭하게 팀을 이끌었다. 대회 기간 내내 프랑스 선수단에는 어떠한 이상 기류도, 루머도 발생하지 않았다. 과거 도메네크 감독의 2006년과 2010년 월드컵을 기억하는 축구팬들이라면 플레이 스타일에 상관없이 데샹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릴 것이다. 과거 플라티니, 지단과 같은 확실한 리더는 없지만 대신 데샹 감독이 누구보다 강력한 구심점이 되었다. 졸전, 비매너, 다인종 등 프랑스 대표팀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외부에서 다루어졌으나 그럴수록 프랑스는 오히려 견고해졌다.

결승전 직후 진행된 데샹 감독의 공식 기자회견에 프랑스 선수들이 난입하며 '디디에 데샹' 응원가를 소리높여 불렀다. 그들에게 데샹은 자신들의 감독이자 월드컵에 대한 꿈을 갖게 해준 영웅이었을 것이다. 프랑스는 젊다. 23인 엔트리의 평균 나이가 26살에 불과하다. 레블뢰는 미완성된 상황에서 월드컵 트로피를 차지했다. 분명 운과 흐름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팀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에매 자케 감독이 이끈 프랑스도 완성된 팀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익은 상태로 달성한 월드컵 우승이 2년 뒤 잘익은 유로의 우승으로 연결되었다. 이번 우승이 프랑스에게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으로 연결된다면 향후 몇 년간 프랑스는 세계 축구의 트렌드 리더가 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v 크로아티아, 결승전 프랑스의 패스맵 - 전진을 자제한 에르난데스, 그를 도와준 마튀이디. 지루와 포그바의 영향력

# 팀 스타일

대회를 앞두고 대다수 사람들은 우승후보로 독일, 스페인, 브라질을 생각했다. 프랑스는 이들보다 조금 낮게 평가받았다. 지역 예선의 성적이 압도적이지 않았고 새해 들어 치른 평가전의 내용도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첫번째 고민은 풀백에 있었다. 장기 부상에서 갓 돌아온 멘디는 좀처럼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았고, 그동안 주전 자리를 지키던 시디베는 지쳐보였다. 데샹 감독은 고민 끝에 22살의 젊은 에르난데스와 파바르를 선택했다.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세밀함은 부족했지만 두 선수는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뛰면서 빠르게 발전했다. 

중원의 구성과 조합도 팀을 단단하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 포그바와 캉테의 하모니는 적절한 공수 밸런스를 만들어냈다. 데샹은 포그바를 공격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대신 캉테를 적극적으로 돕게하여 프랑스의  밸런스 유지에 큰 역할을 해냈다. 포그바는 하프라인 밑에서 역습의 시작점이 되는 키패스를 전방으로 보냈고, 결승전에서 기록한 자신의 골에서는 스스로 그 기점이 되기도 했다. 포그바 역시 조별리그 초반에는 그리 좋지 않았다. 호주 전에서는 불필요한 볼 터치가 경기 리듬을 만드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좋지 않은 상황에 관여되어 여러차례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가 거듭될수록 포그바는 간결해지며 카메라에 적게 잡혔다. 포그바는 팀 속에서, 팀 플레이어로 월드컵 챔피언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원의 핵심 키워드는 마튀이디의 활용이었다. 데샹 감독은 마튀이디를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중용했다. 마튀이디는 '수비형 윙어' 역할을 맡아 수비에 깊게 관여하며 프랑스의 '비대칭 전술'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마튀이디의 포지셔닝은 풀백 에르난데스를 포함한 수비 포지션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었고, 반대편에 위치한 음바페가 언제든 공격적으로 나갈 수 있도록 균형을 만들어줬다. 

최전방 지루 역시 훌륭한 타겟 역할을 수행했다. 지루는 이번 대회 전 경기에 출전하여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부지런한 활동과 적극적인 경합으로 상대 센터백들을 묶어놓았다. 그리즈만과 음바페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지루가 있었기에 넓어질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지루는 전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선수였다.

피날레는 음바페다. 20년 전 프랑스의 첫 우승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4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티에리 앙리만큼 빠르지만 앙리보다 더한 폭발력이 느껴진다. 특히 공 없이 침투 할 때의 방향 전환 속도와 공을 빠른 속도로 치고 가면서 연속 동작을 능숙하게 하는 모습은 경이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프랑스 역습의 피날레는 음바페였다. 음바페는 수비 상황에서도 수시로 고개를 돌려 전방 상황을 확인했고, 프랑스가 후방에서 공을 뺏는 순간 누구보다 빠르고 영리하게 스타팅 포인트를 끊었다. 프랑스 진영에서 전방으로 패스를 보낼수 있는 각도가 열리면, 거기에는 늘 음바페가 뛰고 있었다. 세계 축구팬들은 2006년 독일에서 18살의 메시를 확인했고 2018년 러시아에서는 19살의 음바페를 확인했다.

# 미래

이번 월드컵에서는 절대 강팀이 보이지 않았다. 우승 후보로 예상된 팀들이 조기 탈락했고, 8강에 오른 팀들도 모두 하나씩 불안요소를 갖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약점을 가장 덜 드러낸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월드컵은 끝났고 8월부터 새로운 유럽 시즌이 시작된다.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메이저 대회는 축구인들에게 늘 과제를 남긴다. 새 시즌 유럽 축구는 어떤 트렌드가 유행할까?

현대 축구에 스포츠 과학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분석의 개념이 강화됐다. 그리고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정보는 강팀보다 약팀에게 많은 힌트를 제공한다. 이번 대회에서 눈물을 흘린 기존의 강호들은 다시 정상에 도전하기 위해 보다 치밀하고 세밀하게 접근할 것이다. 어차피 축구에서 나올 전술은 이미 다 나왔다. 돌고 도는 발상과 역발상을 통해 트렌드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결승전에서 더 나은 팀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더 잘한 팀이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모드리치의 인터뷰처럼 축구를 더 잘해도 그것이 반드시 승리로 연결되진 않는다. 크로아티아의 황금 세대는 마지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당장 2년 후 유로 대회 때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월드컵은 강팀과 약팀 모두에게 과제를 남겼다. 이제 모든 팀들은 발전하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할 것이다. 

프랑스 역시 우승했지만 이 스타일에 머물진 않을 것이다. 마치 4년 전,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주기적으로 계속해서 작은 컨셉들에 변화를 주면서 발전을 꾀할 것이다. 2년 전, 콘테가 첼시에서 장농 속에 박혀있던 스리백을 꺼내든것처럼 월드컵의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클럽팀의 시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자, 그럼 다음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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