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인 축구' 한국 대표팀에 어울리는 철학인가

김정용 기자 입력 2018. 7. 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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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대표팀부터 풀뿌리 축구까지 `능동적인 축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철학을 정립했다. 유소년 육성의 경우 능동적인 축구를 강조하는 건 상식적이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철학이다. 그러나 대표팀에도 어울리는지는 의문이 따른다.

5일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소위원회 위원장은 차기 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1차 위원회를 가진 뒤 결과를 브리핑했다. 신태용 현 감독을 비롯해 10여 명의 후보자를 검토해 축구협회가 원하는 우선순위를 앞으로 정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실질적인 감독 선임보다 중요하게 언급한 건 한국 축구의 철학을 정립하는 일이었다. 김 위원장은 수 개월 동안 지도자, 기술 스태프 등 축구협회 전반과 소통하며 만들었다며 한국 축구의 철학으로 `능동적인 축구`를 제시했다.

이번 대표 감독 선임부터 유소년 축구에 이르기까지 한국 축구는 능동적인 축구를 추구한다는 공통의 전제를 갖고 나아가게 된다. 일관성 있는 축구 스타일을 갖는 건 오랫동안 한국 축구의 숙원이었다. 가까운 성공 사례로 오래 전부터 기술 축구를 추구해 온 일본 축구계의 방침이 있다. 한국 축구계는 일본의 경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국식 축구가 뭔지 답을 찾기 힘들어 했다.

능동적인 축구의 구체적인 내용은 네 가지다. `능동적인 축구 스타일`은 능동적인 공격 전개, 지속적인 공격 상황을 창조하는 전진 패스와 전진 드리블을 의미한다. `주도적 수비 리딩`은 상대 실수를 유발하는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의미한다. `하이브리드 공격 전환`은 매우 강한 카운터 어택이 우선이고 그 다음 완전한 볼 소유로 전환한다는 공격 방침이다. `치명적인 수비 전환`은 절대 역습을 허용하지 않고, 오히려 공을 빼앗아 재역습을 만들 수 있는 수비 전환이 되는 축구를 뜻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선수들의 덕목도 제시됐다. 체력, 강력한 위닝 멘털리티다. 특히 위닝 멘털리티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며 강한 압박 속에서도 침착하고 쿨한 결단을 내리는, 실수에 좌절하지 않고 실수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심판에게 절대 항의하지 않고 상대에게 보복하지 않는, 신속하게 경기를 진행하고 상대와 심판과 우리 동료를 존중하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자세"라고 세부적으로 소개됐다.

축구협회 새 철학, 유소년 육성의 `모범답안`

김 위원장이 밝힌 철학은 유소년 육성을 위한 방법으로 상식적이고 깔끔하다. 어려서부터 능동적인 축구를 하게 유도하면서 기술, 신체 통제 능력, 경기 지능을 강화하는 건 더 좋은 선수를 길러내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이다. 최근 유소년 육성에 성공한 독일, 벨기에와 전통적 유소년 육성 강국 네덜란드의 공통점이다.

어차피 유소년 선수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기술과 지능이지, 체격과 신체능력은 아니다. 체격과 신체능력은 선천적인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육성할 수 없다. 오히려 체격이 작지만 기술과 지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있다면 어린 시절 도태되지 않도록 집중 관찰하고 지속적으로 기회를 부여하는 등 `체격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벨기에가 유망주를 육성할 때 쓴 방법이다. 이날 기자 간담회를 가진 홍명보 전무이사도 유소년 팀을 운영할 때 신체조건이 약하고 기술만 뛰어난 선수들을 별도로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벨기에 등의 성공 사례를 잘 벤치마킹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유소년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잘 지적했다는 점에서도 축구협회의 철학은 의미가 있다. 한국의 많은 유소년 팀은 김 위원장이 부정적으로 거론한 "리액티브(수동적)"한 축구를 한다. 압도적인 개인 기량을 가진 공격수 한두 명을 스카우트한 초등학교 팀이 있다면, 그 공격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에게는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학교가 흔하다.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휩쓰는 명문 축구부도 이런 전술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유소년 육성에 가장 나쁜 축구 스타일이다. 능동적인 축구를 한국 유소년 축구에 전반적으로 심을 수 있다면 선수들의 지능과 기술이 고르게 향상될 수 있다.

나중에 국가대표가 됐을 때 수비적인 축구를 하게 되더라도 어려서부터 능동적인 축구를 배우는 편이 더 낫다. 능동적인 축구를 해야 선수의 전반적인 전술 지능과 기술이 향상되고, 이는 수비적인 축구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경기 중 최선의 판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는 지능은 수비 축구에도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김 위원장이 수비적인 팀의 대명사로 언급했던 아틀레티코마드리드 역시 수비력뿐 아니라 기술과 전술 지능이 뛰어난 선수들을 중시한다.

김 위원장은 "이것은 보편적인 철학이고 현대축구 트렌드다"라고 말했다. 특이하고 과격한 철학이 아니라 더 뛰어난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일반적인 철학이므로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바 자체를 문제시삼기는 힘들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 선임 기준이라면?

반면 대표팀 감독의 선발 기준으로 `능동적인 축구를 하는 감독`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 위원장은 "개인기술만 사용하고 네거티브한 축구를 하는 감독도 성적을 낼 수 있다. (그러나) 프로액티브(능동적), 포지티브(긍정적)한 스타일로 성적을 내는 감독이 우선 순위다. 그런 감독이 많다. 스타일이 다른데 굳이 (철학에 맞지 않는 감독을 선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철학에 맞는 인물을 고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타국 사례를 보면 유소년 육성은 능동적인 축구 중심으로 하면서도 막상 대표팀은 수동적인 전술을 쓰는 감독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벨기에는 황금 세대를 이끌 첫 지도자로 마르크 빌모츠 전 감독을 골랐다. 빌모츠 감독은 주도적인 축구를 하는 전술가라기보다 카리스마를 중시하는 리더였다. 네덜란드는 21세기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했을 때(2010년)와 4강에 진출했을 때(2014년) 모두 전통과 맞지 않는 수비적인 축구로 성적을 냈다. 오히려 전통적인 토털풋볼을 부활시키려 했던 어설픈 시도는 예선 탈락으로 돌아왔다. 일본 역시 철저한 수비를 우선시한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이런 사례는 평소 철학이 능동적인 축구라도 실전에서는 때때로 수동적인 축구를 접목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주도적인 축구를 무리하게 고집하다가 화를 입은 사례는 최근 한국이 꺾은 독일에서 볼 수 있다. 독일의 요아힘 뢰브 감독은 주도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감독이지만 뜻밖에 공격 루트를 희생해가며 제공권을 중시하는 실리주의로 무장한 `2014 독일월드컵`에서 우승했다. 반면 주도적인 축구를 고집했던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수비적인 팀들에 거푸 당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대표팀 감독은 현재 주어진 자원을 갖고 최대한 성적을 뽑아내야 하는 팀이다. 유소년 육성이 결실을 맺어 주도적인 축구를 익힌 선수들이 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했을 때 순차적으로 대표팀까지 이식해도 늦지 않는다. 네덜란드는 토털풋볼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멤버가 갖춰졌던 1970년대에 세계 축구에 족적을 남겼다. 벨기에는 선수들이 한층 성장한 러시아월드컵에 와서 더 능동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을 선임했고, 현재까지 순항하며 8강에 진출한 상태다. 현재 멤버들의 깜냥이 경기 주도권을 잡을 정도로 뛰어나지 못하다면 대표팀 감독은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대표팀이 능동적인 축구를 해야 한국 축구 전체에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대표팀 감독은 이런 감독이다, 이게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혹시 수동적인 플레이스타일로 이기는 감독은 성적이 나도 우리는 관심이 없다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유소년 지도자들에게도 이렇게 가르쳐야 대표 선수가 됐을 때 능동적으로 경기하고 경기를 지배하는 한국 대표 선수가 된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면서 대표팀 성적보다 유소년 축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 크게 고려하는 시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김 위원장은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슈틸리케 전 감독 역시 대표팀 운영뿐 아니라 한국 축구 전반을 더 신경 쓰는 듯한 모습으로 한때 호평 받은 바 있다.

논란 없애려면 그만큼 뛰어난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정리한 한국축구의 철학에 대해 매우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며 "철학을 잡고 가려 하는데, 철학이 이러니저러니 말하면 힘들다. 현재 정한 철학이 맞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를 6개월 뒤, 1년 뒤에 얼마든지 업데이트할 수 있다. 일단 정해놓고 가기로 했다"며 "여기까지 내놓는데 힘들었다. 여러분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흔들려서 전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방향성을 정하고 방향에 맞는 지도자를 모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축구의 철학을 유소년 육성이 아닌 A대표팀까지 폭넓게 적용하려 한다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납득할 만한 감독 선임이다. 주도적인 축구로도 한국이 월드컵에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하는 감독이 부임할 필요가 있다. 부임한 뒤에도 자신의 철학을 잘 펼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

"대표 감독 선정의 기준은 월드컵이라는 대회 수준에 맞았으면 좋겠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한 나라의 격에 맞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선 통과 경험, 대륙컵 우승 정도의 경험, 세계적인 수준의 리그에서의 우승 경험 경력을 가진 분이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제시하는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감독이었으면 좋겠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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