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 슬라이더에 감탄 "공이 사라져버리는 느낌.."

조회수 2018. 7. 2. 10: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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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일주일도 안 됐다. 현지 날짜로 6월 25일이었다. 한 더위하는 텍사스(휴스턴) 원정 때였다.

6-3이던 9회, 끝판왕이 공을 받았다. 오랜만의 세이브 상황이었다. 그런데 영 신통치 않다. 나오자마자 볼넷과 안타로 1, 2루를 자초했다. 스트라이크를 못 넣고,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긴장감이 고조됐다. 마운드에서 진땀을 줄줄 흘렸다. 꼭 날씨 탓만은 아니리라.

그걸 보는 덕아웃의 존 기븐스 감독은 오죽했겠나. 잔뜩 찌푸린 얼굴이 됐다. ‘3점 차이잖아. 도대체 왜 저래?.’ 어쩌면 ‘속 터져서 원~.’ 그런 심정이었는 지도 모른다.

위기는 어찌어찌 넘어갔다. 조지 스프링어의 홈런성 타구를 우익수 랜달 그리척이 펜스 위에서 잡아낸 ‘슈퍼 캐치’ 덕분이다. 경기 후 미스터 기븐스는 못마땅한 멘트를 남겼다. “3연투라 그런 지 피곤한 모습이었다. 첫 타자에게 볼넷을 주는 건 그답지 못했다.” 얘기를 전해들은 당사자도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그리고 꼭 일주일 뒤다. 어제(한국시간 1일) 다시 9회에 공을 받았다. 라이언 테페라가 병가를 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이번에는 괜찮았다. 게다가 9회말 공격에서 끝내기 홈런(저스틴 스모크)으로 짜릿한 피날레까지 얻었다.

기븐스 감독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일주일 전 못 마땅함은 언제 그랬냐 싶다. 칭찬이 쏟아진다. “오승환은 지난 주부터 잘해내고 있다. 언제나 믿을 수 있는 투수다. 이유는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알기 때문이다. 그건 불펜 투수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사람 그렇게 안봤는데 참….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최근 12게임서 ERA 0.79…하지만 시큰둥한 반응

원하는 세이브는 없다. 대신 자꾸 승리투수가 된다. 일주일 새 2승이나 올렸다. 아마 선발 투수였으면 이 주일의 선수가 됐을 지도 모른다. 다승 순위로 따지면 팀내 (공동) 세번째다.

별로 달갑지 않은 승리다. 개중에는 블론 세이브 뒤에 얻은 것도 있다. 대중들의 관심도 시큰둥하다. 특히 6월 초 두 차례 참사가 결정적이다. 2일 디트로이트전, 5일 양키스전에서 연달아 3실점씩하면서 폭망했다. 1~2점대로 관리중이던 ERA는 4.00까지 치솟았다.

이후로는 싸늘한 급랭 모드다. 웬만큼 잘 던져도 팬들의 호응이 없다. 1이닝 3K 경기를 몇번씩 해냈지만 별무신통이다. ‘저러다가 또 한번 왕창 털리겠지 뭐.’ 왜 아니겠나. 알뜰살뜰 잔돈 부스러기 모아두면 뭐하나, 허탈한 그 심정이야 모를 리 없다.

때문에 최근의 각성 모드에도 대중들의 감흥은 별로다. 벌써 몇 주째다. 꽤 괜찮은 투구가 지속된다. 날짜로 따지면 거의 한달 가까이 계속됐다. 그럼에도 썰렁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한 번 따져보자. 양키스전에서 3점 홈런(6월 6일)을 맞은 이후다. 그 뒤로 12경기에서 1점 밖에 잃지 않았다. 24일 애너하임 원정 때 루이스 발부에나(에인절스)에게 맞은 솔로 홈런이 유일했다. 11.1이닝 동안이었으니, ERA는 0.79로 뛰어났다.

뭔가 달라졌나? 여름이니까? 더위에 강해서? 굳이 설득력을 부인하지 않겠다. 대프리카에서 몇 년을 단련했나. 토론토의 여름 쯤이야 거뜬할 것이다. 하긴 조금 걸리는 대목은 있다. 그 보다 훨씬 뜨거운 텍사스, 애리조나 출신들은 어떨까. 땡볕의 강렬함이라면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 어쨌거나 감성적인 기대감도 나쁘지 않다.

하이 패스트볼로 버티는 것도 한계

사실 파워는 감소 추세다. 부정할 수 없는 노화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매년 평균을 따지면 1마일 정도씩 감소하고 있다. ▶2016년 = 93.6마일 ▶2017년 = 92.8마일 ▶ 2018년 = 91.6마일. 그럼에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보완책이 필요하다. 올 시즌 같은 경우는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타자 가슴 높이의 빠른 볼로 아웃 카운트를 벌어들였다.

적어도 6월 중순까지는 꽤 유효한 해결책이었다. 애너하임 시리즈 때 트라웃을 2번이나 삼진으로 돌려세운 것도 이 공이었다. 91~92마일 밖에 안되지만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가 헛스윙할만큼 날카로웠다.

하지만 계속 당할 리는 없다. 처음 이틀 동안은 괜찮았다. 특히 23일 경기서는 3연속 탈삼진으로 침묵시켰다. 그 다음날이 문제였다. 에인절스전 세번째 등판, 그러니까 24일이었다. 8회말(1-0 리드)에 나가 첫 타자 트라웃을 삼진시켰다. 91.6마일짜리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다음 저스틴 업튼도 마찬가지였다. 90.9마일짜리 같은 공으로 퇴근시켰다.

그런데 루이스 발부에나에게 덜미가 잡혔다. 그는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노리고 있던 91.5마일짜리를 우측 담장 너머로 보냈다. 물론 준비한다고 다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특히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나왔을 때 더욱 위험하다.

이틀 뒤. 간담이 서늘했던 조지 스프링어(휴스턴)의 타구도 마찬가지다. 역시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다가 3점 홈런을 얻어맞을 뻔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바야흐로 발사 각도의 시대가 됐다. 너도 나도 타구를 띄워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투수들은 살아남는 법을 찾아나섰다. 그 답은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어중간하면 위험하다. 아예 스윙의 각도를 비껴가는 높은 코스를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하이 패스트볼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컴비네이션이 필요하다. 커브볼이 적당한 파트너로 떠올랐다. 또는 낙차가 큰 체인지업이 대체재로 쓰인다. 비슷한 높이 공격으로 시각적 혼란을 주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보스는 변화구와 별로 안 친하다. 특히나 커브, 체인지업이랑 서먹하다. 몇 년째 사귀려고 애쓰고 있지만 안된다. 그나마 낯가림이 덜한 게 슬라이더다.

문제는 이 친구가 변덕을 부린다는 점이다. 첫해(2016년)에는 알콩달콩했다. 피안타율 .164로 직구(.208)보다 훨씬 친했다. 하지만 작년에 서먹해졌다. 장타를 맞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2루타 5개, 홈런 3개). 피안타율도 .283으로 높아졌다. 특히 좌타자에게는 4할대가 넘어갔다.

이유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릴리스 포인트가 내려갔다는둥, 변화 각도가 밋밋해졌다는둥…이런 저런 구설에 휘말렸다.

다시 소환된 슬라이더

결국 슬라이더는 다시 소환됐다. 하이 패스트볼에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상대를 혼란시키는 무기로 쓰이기 시작했다. 물론 문제점을 수정ㆍ보완한 상태로 실전 배치됐다.

4승째를 올린 어제도 쓸만했다. 첫 타자 존 힉스의 밸런스를 무너트렸다. 힘없는 유격수 땅볼을 유도해 첫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게 해줬다. 빗맞은 중전안타였지만, 그레이슨 그라이너의 방망이를 부러트린 것도 이 공이었다.

보스는 <엠스플뉴스>와 문답에서 이렇게 밝혔다. “(슬라이더) 궤적에 변화를 줬는데, 그게 잘 먹혀들고 있다. 좋지 않았을 때는 옆으로만 돌아나갔다. 요즘은 위에서 아래로 빠져나가는 궤적으로 던지려한다. 그게 헛스윙을 많이 유도한다. 결정구로 잘 통한다.” (2일 현재 슬라이더 피안타율 .259, 피홈런 1개.)

특히나 위력적이었던 게 이보다 하루전인 30일 게임이었다. 8회 3명의 타자를 만났다. 자코비 존스, 호세 이글레시아스, 대타 니코 구드럼까지 3명 연속 K 퍼레이드를 펼쳤다. 놀랍게도 결정구 3개가 모두 슬라이더였다.

                                                              구드럼을 헛스윙시키는 슬라이더.                              mlb.tv 화면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있었다. 좌타자 구드럼을 상대할 때였다. 3구째 몸쪽에서 날카롭게 떨어지는 83마일짜리에 방망이가 헛돌았다. 전혀 대응이 안되는 모습이었다. 그러자 보스는 또다시 같은 공을 택했다. 바로 그 코스로 84마일짜리를 떨궜다. 역시 공과 배트는 한참 차이가 벌어졌다.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타자는 어이 없다는듯 웃었다.

fox 스포츠의 해설자 로드 앨런은 이렇게 감탄했다.

저 슬라이더는 마치 패스트볼 같아요. 타자가 볼 때는 빠른 직구로 보일 거예요. 그러다가 갑자기 공이 사라져버리는 느낌이겠죠. 아주 잘 코디네이트 된 공이군요.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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