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수 향한 과한 비판? 고개 숙일 사람은 '이분들'

이근승 2018. 6. 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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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장현수 논란'의 시작은 어디이며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오마이뉴스 이근승 기자]

시련은 언제나 아프다. '어차피 3패'란 소리를 듣던 월드컵이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씁쓸함이 휘몰아친다. '숙적' 일본과 이란이 잘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지난 4년간 뭐 했나' 자괴감까지 들이닥친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다. 최선을 다한 이들의 눈물이 뭉클함을 전하지만, 속 깊이 자리 잡은 분노의 감정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누구보다 힘든 선수가 있다. 대표팀 주전 수비수 장현수다. 그는 스웨덴전에 이어 멕시코전에서도 뼈아픈 실수를 저질렀다. 자연스럽게 거대한 비판이 그를 향한다. 내면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 일부는 무분별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고, 비난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국가대표지만 26세 청년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일각에선 이야기한다. 축구는 홀로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11명이 그라운드 나서 자웅을 겨룬다. 간혹 팀보다 위대한 개인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흔한 일이 아니다. 보통은 하나로 똘똘 뭉친 팀이 승리를 거머쥔다. 누구 하나 때문에 이기고 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 모두 함께 나누고 책임지는 것이 축구다. 그러니 장현수에 대한 비판보다는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장현수에게 모든 책임 돌리는 건 옳지 않아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지난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장현수가 공을 걷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 [월드컵] 수비하는 장현수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지난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한국 장현수가 공을 걷어내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팀의 모습에선 국민에게 큰 실망을 전한 2014 브라질 월드컵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아직 독일전이 남았지만, 지난 대회보다 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커졌다. 퇴보했다는 소리다. 신화를 이뤘던 2002 한·일월드컵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 아쉬움이 패배 과정에서 유독 눈에 띈 장현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무분별한 비난은 이견의 여지없이 잘못됐다. 근거 있는 비판은 애정에서 출발하고 선수의 발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의 탈을 쓴 폭력은 피해자를 낳을 뿐이다. 장현수가 아쉬운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리고 축구 외적인 부분까지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원색적인 비난에 올바른 비판까지 가려져선 안 된다. 장현수를 향한 비판에는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고, 미래가 들어있다. 우리는 장현수에 대한 비판이 어디서 출발하며,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일전에 완벽에 가까웠던 선수가 월드컵 본선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신태용 감독 부임 이후만 봐도, 장현수는 실수를 반복했다. 지난해 11월 세르비아와 평가전, 12월 일본과 EAFF E-1 챔피언십 3차전, 올해 1월 자메이카와 평가전, 3월 유럽 원정 2연전(북아일랜드-폴란드)에서 장현수는 실점에 영향을 끼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시절인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경기(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마지막 2연전 제외) 10실점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장현수에 대한 비판은 본선 2경기만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 근거는 충분함을 넘어 방대하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슈틸리케와 신태용 감독 모두 근거 있는 비판을 수용하지 않았다. 실수를 반복했지만, 장현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보였다. 심지어 슈틸리케는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는 장현수를 대표팀 주전 수비수로 활용했다.

이들뿐 아니라 다수의 국내 지도자와 전문가도 장현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나같이 말했다. "장현수는 중앙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오갈 수 있는 다재다능함을 지녔고, 수비를 조율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6 리우 올림픽 등 국제경험도 풍부하다. 유독 단점이 부각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는 장현수만 한 선수가 없다"고 말이다.

다시 한 번 떠오르는 물음, '한국 축구는 공정한가'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 [월드컵] 장현수 조현우 김영권, 아쉬움 가득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장현수(20), 조현우(23), 김영권(19)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1대2로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들이 틀렸음이 월드컵 본선 2경기를 통해 확실히 증명됐다. 강점이라던 빌드업 능력은 보이지 않았고, 부정확한 패스만 도드라졌다. 이전에 수차례 반복했던 실수도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실점에는 그가 있었다. 우리는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쌓인 불만이 폭발했다. 지도자들이 장현수의 반복되는 실수를 외면하면서, 누군가는 기회를 잃었다. 지난 시즌 '대들보' 김민재와 함께 K리그1 최소실점에 이바지한 이재성(전북 수비수), K리그1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된 오반석, 손흥민 다음으로 한국 선수 중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권경원 등 수많은 재능들에 부여된 기회는 너무나도 적었다.

안 그래도 학연과 지연이 능력을 뛰어넘는 역사가 뿌리 깊은 대한민국이다.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는 소속팀에서 오랜 시간 빼어난 활약을 보여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반면 누군가는 소속팀 활약이 저조하고, 심지어 뛰지 못해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거다. '한국 축구는 공정한가', '원칙은 존재하는가'란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가 없다. 능력이 부족한 선수가 대표팀 주전이 되고, 뼈아픈 실패로 이어지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거스 히딩크가 아니었다면, 박지성이 2002 한·일월드컵 역사의 중심에 섰을지 의문이 드는 대한민국이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장현수보다 나은 선수가 없어서 그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면, 지도자 스스로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꼴이다. 우선, 선수의 단점을 개선하지 못했다. 슈틸리케든 신태용 감독이든 장현수에 대한 믿음이 그 정도였다면, 한 단계 발전시켜야 했다. 실수를 줄이고, 강점이 빛날 수 있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대표팀을 이끈 지도자는 장현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내세워 선수 발굴 능력 부족을 숨겼다. 슈틸리케는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대학 리그와 내셔널리그까지 챙겨보는 열의로 국민들의 지지도 받았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에겐 선수의 잠재력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실수를 반복해도, 선택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선제골을 내주고 코치진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월드컵] 작전 나누는 신태용 감독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선제골을 내주고 코치진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감독도 아쉽다. 분명 10개월이란 시간은 월드컵 본선을 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기존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K리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 슈틸리케 감독 시절, 대표팀 코치로도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선수 능력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그를 월드컵 사령탑으로 만들었다. 이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문제가 있으면 개선하고, 답이 없으면 만들어내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다. 히딩크 감독이 기존 한국 축구 자원에 만족했다면, 2002 한·일 월드컵 신화는 없었다. K리그를 쉴 새 없이 누볐고, 끝까지 객관성을 유지하며 선수를 발굴하고 또 발굴했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선수로 거듭나게 했다. 3-4-3 포메이션의 윙백을 담당했던 박지성을 한 위치 끌어올려 공격수로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축구팬들이 장현수에 대한 엄청난 비판을 쏟아내는 데는 한국 축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담겨있다. 사실 장현수는 큰 잘못이 없다. 지도자들이 너무 막대한 부담을 안겼고, 능력이 감당하지 못했을 뿐이다. 경쟁을 통해 그를 좀 더 강하게 만들었다면, 최소한 이 정도의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안타깝다.

똑바로 봐야 한다. 한국 축구의 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무분별한 비난에 올바른 비판까지 가리지 말아야 한다. 장현수 논란의 시작은 어디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파악해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축구인이라면, 26세 청년에게 2018 러시아 월드컵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 언제 어디서나 책임은 권한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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