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모의 Respect] '슈퍼 스타 없는' 잉글랜드가 잘 나가는 3가지 이유

조회수 2018. 6. 25. 07: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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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가장 '슈퍼 스타 없는', 그러나 역설적으로 초반 성적은 가장 좋은 잉글랜드
월드컵 시작전부터 주목받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
가장 위협적인 무기 '세트피스'
그리고 조용하지만 분명히 골을 넣어주는 한 명의 확실한 공격수이자 주장
최근 튀니지에 승리를 거둔 후 베이스캠프에서 '유니콘 레이스'를 가진 잉글랜드 선수들. 과거 잉글랜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런 일들이, 결과적으로도 좋은 효과를 내고 있다. 
"잉글랜드 경기를 이렇게 편하게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자 현재는 BBC 등을 통해 축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게리 리네커의 말이다.

잉글랜드가 파나마에 6-1 대승을 거둔 경기가 끝난 직후, BBC 스튜디오에 모여있는 잉글랜드 레전드들(리네커, 앨런 시어러, 프랭크 램파드, 리오 퍼디난드)의 얼굴에는 한마디로 '웃음 꽃'이 피었다. 리네커의 말 그대로, 잉글랜드 축구 관계자들이 이렇게 활짝 웃으며 경기를 분석하는 모습은 잉글랜드에서 생활하며 취재하고 있는 나 역시 본 기억이 드물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는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들의 라인업과 감독 등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들의 이런 순조로운 결과는 사실 대단히 예상외의 결과로 다가온다. 지난 2014년, 2010년은 물론 잉글랜드 대표팀 역사 전체를 뒤져봐도 가장 '스타가 없는' 선수단을 갖고도 가장 인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가 파나마에 6-1 승리를 거둔 경기 잉글랜드의 선발 라인업.

* 잉그랜드의 파나마전 선발 라인업 : 픽포드, 맥과이어, 스톤스, 워커, 영, 린가드, 헨더슨, 로프터스-치크, 트리피어, 케인, 스털링.

물론 이들은 모두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지만, 선수단 전체적으로 과거 베컴, 제라드, 램파드, 루니, 존 테리, 퍼디난드 등이 뛰었던 대표팀과 비교해보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잉글랜드 최고의 스타라고 할만한 케인 역시 과거의 루니 등에 비하면 세계적인 '스타성'에선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잉글랜드가 잘 나가는(지금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세가지 이유를 살펴본다.

1. 관습적인 '무게감' 덜어낸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부드러운 리더십'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 언론과 팬들을 통해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과거 잉글랜드 대표팀의 감독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접근법이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축구 종가'라는 위명 아래, 또 잉글랜드는 물론 영국권 국가들이 문화적으로 갖고 있는 전통과 명예를 중시하는 성향 덕분에 과거로부터 항상 세계의 그 어떤 대표팀보다도 큰 무게감과 책임감을 짊어지고 월드컵에 나서는 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부터 '경험 부족'을 지적받았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잉글랜드 전임 감독들은 물론, 전세계 어떤 축구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소위 '부드러운 리더십'을 들고 나왔다. 

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 대표팀의 월드컵 캠페인 전체를 취재할 영국 미디어들과 여러 자리를 만들어 선수들과 자유롭게 만나게 하는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든데 그치지 않고, 월드컵이 진행중인 러시아 베이스캠프에서 선수단 대 기자단이 다트 시합을 갖게 하는 등 과거의 잉글랜드는 물론 전세계 어느 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조용하지만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또 그는 훈련장 뿐 아니라 경기장에서도 계속해서 선수들이 편하게 훈련에 임하고 월드컵 기간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흡사 감독이라기보다는 '형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고 있다. 

월드컵 캠프에서 기자단과 다트 대결을 벌인 잉글랜드 선수단.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새로운 접근 방식은 팬들과 미디어를 통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혹자는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도대체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그 결과는 이미 경기장 안밖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잉글랜드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새롭고, 자유롭고, 부드러운 리더십 아래 부담과 무게감에 짓눌렸던 과거와는 완전히 새로운 팀으로 거듭나고 있으며 파나마를 상대로 거둔 6대 1 대승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였다.(상대가 파나마였기 때문이라고? 잉글랜드 팬들조차 '빅샘 감독이었다면 1-0으로 이겼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잉글랜드 대표팀은 그들에 대한 소식을 잉글랜드 팬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는 미디어를 통해 계속해서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선수단 전체를 포함해 팬들까지 모두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런던에서 이번 월드컵 전체를 지켜보고 있으면 잉글랜드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선수들의 '웃음'이다. 그들은 정말로 월드컵에서 뛴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감독으로서의 경험도, 역량도 아직 월드컵 같은 큰 무대에서 입증받아본 적이 없는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그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조별리그 2경기 만에 16강행을 확정지었다는 것 자체로도,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미 이번 월드컵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잉글랜드는 이번 월드컵에서 기록한 첫 3골 전부를 세트피스로 뽑아냈다.

2. 피치 위의 가장 위협적인 무기, 세트피스

앞서 소개한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부드럽고 친화적인 리더십이 다소 측량하기 어렵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면 피치 위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한가지 요소는 단연 '세트피스'에서의 성공이다.


잉글랜드는 튀니지전, 파나마전을 포함해 처음 터뜨린 세골을 모두 세트피스로부터 얻어냈다. 이 세골은 모두 잉글랜드의 승점과 직결됐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잉글랜드의 네번째 골에서 펼쳐진 만화같은 세트피스 골)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날 잉글랜드가 기록한 두번째 세트피스골(팀의 네번째 골)에서 선수들 전체의 움직임이다.

트리피어에서 시작해서 헨더슨, 케인, 스털링으로 이어지고 스털링의 슈팅이 막히자 바로 옆에 스톤스가 서있었던 이 장면은 철저히 훈련장에서부터 약속된 플레이에 의해 나온 것으로 현재 잉글랜드 선수단의 조직력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분명히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경기를 현장중계한 BBC의 대니 머피는 이 골에 대해 한마디로 "훈련장에서 연습한 세트피스"라고 평가했고, 스튜디오에서 분석한 앨런 시어러 역시 "잉글랜드의 초반 순조로운 행진은 세트피스 덕분"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확실하게 골을 넣어주는 이 한 명의 공격수이자 주장

3. 조용하지만 분명히 골을 넣어주는 한 명의 확실한 공격수이자 주장

마지막 세번째 요인은 다름 아닌 확실한 찬스에서 분명하게 골을 넣어주는 공격수이자 주장의 존재다. 해리 케인이 그 주인공이다. 

케인은 튀니지 전에서 홀로 두 골을 만들어내며(두번째 골은 경기 종료 직전) 잉글랜드의 월드컵 캠페인 전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만약, 잉글랜드가 그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이 칼럼에서 소개한 사우스게이트 감독 식의 '부드러운 리더십'역시 비판대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케인은 파나마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 이 중 세번째 골은 그의 발뒤꿈치를 맞고 들어간 사실상 '행운의 골'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가 이 경기 전반에서 보여준 완벽한 두 차례의 페널티킥이었다. 그의 페널티킥은 상대 골키퍼가 방향을 예측하고 점프를 한다고 해도 막기가 쉽지 않은, 정확하게 톱코너를 찌르는 과감하고 담대한 슈팅이었다.

이렇듯 묵묵히 그러나 확실하게 골을 넣어주는 공격수의 존재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아주 오랫동안 필요한 부분이었다. 마이클 오웬의 은퇴 후 잉글랜드 대표팀 공격수 자리는 사실상 루니도(루니는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 포지션에서 뛴 적도 많으므로), 그 누구도 확실한 No.1 공격수라고 부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혼선을 겪었다.

이제 케인이 확실하게 최전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잉글랜드 대표팀은 확실한 '킬러'를 보유하고 그에 맞춰 공격 전술을 짜도 되는 전술상의 평이함을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4. '새로운 시도'와 '역발상' 잉글랜드가 세계 축구계에 주는 메시지

잉글랜드는 아직 두 경기만을 치렀을 뿐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좀 더 후에 내리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전통을 중요시하고 가장 권위적인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불고 있는 이런 '새로운 바람'은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국은 물론 전세계 축구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과연 우리가 전통적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들이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어쩌면, 우리 대표팀에 또 세계의 수많은 대표팀에 필요한 것은 선수 개개인의 '투지' 혹은 '투혼'을 기대하는 것만이 아닌 리더십 차원에서의 새로운 시도, '역발상'에 가까운 새로운 접근법 등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이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의 최종성적을 지켜본다면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이번 월드컵을 즐길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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