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김태륭의 원사이드컷] 한국 축구는 4년마다 모래성을 쌓는다.

김태륭 입력 2018.06.24. 12:55 수정 2018.06.2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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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2차전
한국 v 멕시코 매치 리뷰

후반전 30분 무렵, 두 골 앞선 멕시코는 간결하게 패스를 주고 받으며 공을 돌렸다. 로스토프 아레나를 가든 채운 멕시코 팬들은 패스가 한 차례 연결될 때 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선수들은 공을 따라 열심히 달렸다. 숨은 이미 턱 밑까지 차오른 듯 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어렵게 공을 따내면 전방을 향해 또 뛰어야했다. 하지만 수비 상황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았기에 공격마저 세밀하고 빠르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한국 선수들은 처절하게 뛰었다. 


# 전략의 무게

지난 스웨덴과의 첫 경기와 달리 한국은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나섰다. 수비 상황에 따라 4-1-4-1 형태로 전환되었는데, 중원의 기성용과 주세종이 무게추를 잡고 전방에 이재성이 많이 움직이며 전체적인 밸런스를 형성했다. 멕시코는 미드필드를 거쳐가는 플레이를 선호했다. 중원에서 2대1 등 콤비네이션을 통해 전방으로 공을 연결했다. 이것을 막기 위해 두 줄 수비는 늘 거리를 유지해야 했고, 줄 사이에서 주세종, 이재성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뛰어야 했다. 이재성은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10.5 km 를 활동했다. 스프린트 역시 황희찬(47회)에 이어 팀 내 2위인 41회를 기록했다. 멕시코 전,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될 때 몇 차례 아쉬운 터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재성은 전체 이동거리 중 절반에 가까운 4.8 km 를 수비 상황에서 기록했다. 이미 호흡이 올라온 상태로 공을 받는 상황이 많았을 것이다.

이재성이 손흥민의 파트너로 전방에 배치되면서 한국의 4-4-2 는 예전에 활용했던 것과 다른 성격의 4-4-2 로 운영되었다. 이재성은 중앙 2선, 때로는 3선까지 내려와 기성용과 주세종이 버틴 중원에 힘을 보탰다. 멕시코 전은 두세명에게 많은 역할이 주어진 전략이었다. 물론 수행 능력이 우수한 선수들이 보다 많은 역할을 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클럽팀이 아닌 대표팀이라면, 그리고 조직이 잘 갖춰진 팀일수록 한 선수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어주지 않는다. 멕시코가 바로 그랬다. 그들은 1차전에서 독일을 꺾을때도 마찬가지었다.

한국의 지역별 공 점유율, 공격방향, 선수별 이동거리 (이재성은 10.5 km 를 소화하며 팀내 가장 많은 활동량을 기록했다.)

아이러니지만 한국에게는 그 방법이 최선일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한국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평가전에서 4-4-2 를 통해 힌트를 얻었지만 권창훈, 이근호, 염기훈, 김진수, 김민재는 러시아에 동행 하지 못했다. 사실 '완전체'일 때도 월드컵 레벨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갖고 있던 몇 개의 날카로운 창은 전투 직전 부러져버렸다. 돌이켜보면 월드컵 개막을 앞둔 5월 평가전에서도 대표팀은 계속해서 경기 컨셉을 바꿨다. 기본틀이 완성된 상태에서 색다른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것은 실험이지만, 미완성된 상황에서 이것저것 해보는 것은 스스로에게 거든 트릭이 될 수 있다. 지난 평가전에서 보여준 몇 가지 변화는 결국 제한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표출된 대표팀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3년을 준비한 멕시코. 그리고 감독을 교체하며 10개월 만에 월드컵에 나선 한국. 첫번째 차이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 개인의 수비, 조직의 수비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될 때, 몇 차례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황희찬이 위치한 왼쪽이 핵심 루트가 되어 약속된 패턴이 만들어졌다. 손흥민은 최대한 중앙에 머물며 모레노와 살세도 두 센터백의 시선을 끌었다. 그로인해 멕시코의 측면 커버가 몇 차례 늦어지기도 했다. 전반 30분 이후에는 이재성과 황희찬이 일시적으로 위치를 변경했다. 손흥민을 향한 다이렉트 패턴이 효과를 보자, 아이에 손흥민과 황희찬의 거리를 가깝게 하여 단순한 패턴의 위력을 극대화 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수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개인'의 수비, '조직'의 수비 모든 부분에서 아쉬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화면상 한국의 두줄 수비는 전후 간격을 좁게 유지한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멕시코는 공격 지역(어태킹서드)에서 82% 의 전진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수비의 좌-우 간격이 벌어진 탓도 있지만 그에 앞서 압박 타이밍에 대한 설정이 선수들 사이에 잘 공유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같이 압박을 시작할 것이고, 상대 패스가 나갈 각도를 차단할 것인가?

모두가 의욕은 앞섰으나 여기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 심지어 4-4-2 형태로 내려선 상황에서 최전방에 몇몇 선수들이 끌려나가 멕시코의 빌드업에 '각개격파' 당하는 장면도 여러번 있었다. 귀한 체력을 불필요하게 낭비한 반면, 멕시코의 흥은 올라갔다. 

'개인'의 수비에서도 아쉬운 장면이 있었다. 전반전 페널티킥을 내준 상황과 후반전 추가 실점 장면에서 이영표, 안정환 두 해설위원은 장현수의 '가벼운' 수비 동작을 지적했다. 수비 상황에서 태클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다. 현대 축구의 수비 스탯에서 '태클'은 물론 중요한 기록이지만 가장 완벽한 수비는 태클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수비의 중요한 요소에는 '지연'과 '협업'이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 선수들은 유럽이나 남미 선수에 비해 지연을 잘한다. 공격수의 속임 동작에 한번에 넘어가거나, 시원한 태클 한방으로 화면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드물다. 참을성을 갖고 스텝으로 따라가며 각도를 차단하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멕시코 전 두번의 실점 장면에서는 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도전'이 아닌 '지연'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지난 칼럼에서 대표팀에 심리 전문 코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멕시코의 오소리오 감독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에서 영감을 받아 이미 심리 코치를 활용하고 있고 선수들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감독마다 성향에 차이는 있겠지만 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들은 해당 국가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다. 비교적 짧은 소집 기간동안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코칭스텝의 역할이며 '심리'는 '체력'만큼 중요하다. 피지컬 코치는 두면서 왜 멘털 코치는 두지 않는 것인가? 

장현수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4년 전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A대표팀의 슈틸리케와 신태용 감독도 장현수를 중용했고 그는 그동안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소속팀에서 보여주는 경기력과 대표팀 훈련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다. 하지만 과거 2000년대 초반 조병국이 대표팀에서 자책골과 반복적으로 연관된것처럼, 장현수 역시 반복된 실수에 의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본인도 노력하고 있지만 팀에서 도와야 한다. 지금은 데미지가 꽤 커진 것 같다.

한국 v 멕시코 경기 기록

# 묘수를 두려 하니 악수가 나온다

한국은 후반전 이승우, 정우영, 홍철을 차례로 교체 투입했다. 하지만 교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손흥민과 황희찬을 투톱에 두었지만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라인을 올리기에는 포메이션의 형태도 좋지 않았고 체력도 충분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지난 스웨덴 전이 두고두고 아쉽다.당시 대표팀은 공격 강화를 위해 기어 변속을 준비하던 상황에서 실점했다. 가장 치명적인 시간대의 실점이었기에 다음 상황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으로 할 수 있는것은 많지 않았다. 

멕시코 전도 비슷했다. 먼저 실점하다보니 능동적이 아닌 수동적인 교체가 반복되었고, 벤치 싸움의 흐름 역시 주도하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러움이 아닌 만화 같은 한방의 묘수를 두려했다. 신태용 감독에게 '난놈'이라는 특별한 별명이 붙은 이유 중 하나는 승부처에서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는 결단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들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나오는 악수가 종종 느껴진다. 이는 신태용 감독의 스타일이 아니다. 어쩌면 A 대표팀이라는 곳이,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지금의 팀 상황이 모든 것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전반전과 후반전, 상황은 달랐지만 한국의 전체적인 형태는 큰 차이가 없었다. 

후반 19분 이승우가 교체 투입된지 2분 만에 에르난데스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기성용이 넘어진 상황에서 반칙이 선언되지 않은 것이 옳은 판정으로 보이지 않지만, 대표팀은 선수 교체를 통해 전략을 수정하는 어수선한 과정에서 실점했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선수를 바꾸려 할때, 혹은 바꾼 직후에 또다시 실점이 발생한 것이다. 교체를 통해 전략이 바뀌며 누군가의 위치가 변경되는 순간에 발생하는 틈을 최소화 시키는 것도 훌륭한 팀의 조건이다. 한국은 지난 보스니아 전의 세번째 실점, 멕시코 전, 그리고 이번에도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실점했다.

# 세트 피스

사실 세트 피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대표팀은 지난 2경기에서 13번의 코너킥을 만들었으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트 피스는 사전에 준비한대로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실전에서의 임기응변도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트 피스는 애매하면 상대를 속이기 힘들다. 모든 타이밍과 움직임, 패스의 강약 조절까지 정해진대로 딱딱 들어맞던가, 아니면 그 과정에서 개인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지난 13번의 코너킥에서 단 한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분명 준비한 것은 많다고 들었다. 남은 독일 전에서는 세트 피스를 앞두고 조금 더 인터벌을 길게 갖으면 좋겠다. 충분히 호흡을 내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모든 동작에 정성을 들인다면 가능성 역시 높아질 것이다. 대표팀은 세트 피스를 보다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


F조 현재 상황

2패를 기록했지만 산술적으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3차전에서 멕시코가 스웨덴을 잡고 한국이 독일에 승리한다면 골 득실과 다득점을 따져보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오늘 새벽 스웨덴을 꺾은 독일의 뢰브 감독은 "우리는 오로지 한국 전에 집중하겠다." 라며 메세지를 던졌다. 

확률적으로 한국은 다시 다음 4년을 준비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데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라는 시계는 4년 주기로 반복되는 것 같다.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기성용은 부상 당한 다리를 끌면서 경기를 마쳤고, 손흥민과 장현수는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 4년 동안 쌓아온 모래성이 늘 그랬던 것처럼 무너졌다. 그럼 이제 다시 모래를 모아야 하는걸까?

사막에 꽃이 한 송이 피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그 꽃이 예쁘지 않다고 말한다.

사막에 꽃이 피었음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