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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추신수의 경이로운 49도짜리 홈런

조회수 2018. 6. 20. 11: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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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 추신수가 리드오프 홈런을 포함해 5번의 출루를 기록했던 어제(한국시간 6월 19일) 경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혼란 없으시길 바랍니다.


5-3이던 5회였다. 뒤지던 홈 팀의 선두 타자가 살아나갔다. 유격수 쪽 내야 안타였다.

수비는 골치 아프게 됐다. 1루 주자(휘트 메리필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작년 도루가 34개, 올해도 벌써 15개를 성공시킨 달리기 선수다. 호시탐탐. 2루를 향해 리드 폭을 늘려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마운드 위에서 섬광이 번쩍한 것이다. 화려한 턴과 함께 쏜살같은 저격이 날아왔다. 화들짝. 메리필드가 기겁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1루심 브루스 드렉먼은 용서하지 않았다. 픽 오프(견제 아웃). 원정 팀 선발 투수는 고비였던 5회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말이 좋아 ‘빅 섹시(Big Sexy))’다. 유니폼 벗으면 그냥 동네 아저씨다. 그것도 45년 세월과 정면으로 맞서 투쟁한 흔적이 역력한 외관이다. 얼굴은 물론이고, 101마일짜리 타구를 맞고도 끄떡없는 뱃살도 마찬가지다. 5피트 11인치에 285파운드. 그러니까 180cm의 키에 129kg의 엄청난 몸무게다. 도대체 ‘운동’ 하고는 절대 친할 것 같지 않다. 거기서 어떻게 그런 면도날 같은 견제구가 나올 수 있을까. 보고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콜옹’에게는 기념비적인 경기였다. 6이닝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날이다. 그로 인해 커리어 통산 244승을 올렸다. 자신의 조국 도미니카 출신 최다승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샌디 쿠팩스 시대를 살았던 후안 마리샬과 나란해진 순간이었다. 1승만 보태면 데니스 마르티네스(니카라과 출신)와 동등해진다. 히스패닉 투수 최다승 기록이 눈 앞에 있는 셈이다.

                                                                                                                        사진 제공 = 게티 이미지

도미니칸 최다승 경기의 도우미들

빅 섹시의 역사적인 게임은 몇몇 후원자들 덕분에 가능했다. 우선은 애드리안 벨트레(39)다. 같은 도미니카 출신의 3루수는 3회 3점 홈런을 터트렸다. 2-0을 5-0의 안정권으로 만들어준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중요한 서포터가 있었다. 요즘 엄청난 위세를 떨치는 한국산 기관차다. 이 경기에서만 무려 5번의 출루를 성공시키며 무수한 득점 기회를 제공했다.

1년에 한 번은 해낸다는 5출루 경기의 내역서를 보자. 2개의 장타와 3개의 볼넷으로 구성됐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볼넷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도대체 저 공을 어떻게 골랐을까. 감탄스러운 감별 능력이 속출했다.

3회 얻은 첫번째 4구다. 카운트 2-0에서 바깥쪽 공에 연달아 파울을 낸다. 그러면서 구심(알폰소 마케스)에게 체크하는 세심함을 잊지 않는다. 방금 전 공이 존에 들어온 것인 지, 아닌 지를 말이다.

외곽으로 통하는 투구에는 철저하게 반응한다. 파울로 걷어내며 생명 연장 작업을 계속한 것이다. 문제의 7구째. ‘아차’ 싶은 공이 왔다. 안쪽으로 낮게 떨어진 너클 커브(80마일)였다. 그런데 마케스 구심은 눈을 질끈 감고 외면했다.

어쩌면 이 대목이 힌트였을 지 모른다. ‘이 심판, 왼쪽 타자 몸쪽에 짜구나.’ 그런 합리적인 의심을 가질 법했다. 8구째 또 한 번의 실랑이 후에 9구째, 포수 사인은 바깥쪽이었다. 아마 수비 쪽도 눈치챈 것 같다. 게다가 첫 타석에서 몸쪽에 줬다가 홈런도 맞지 않았나.

그런데 실투가 나왔다. 사인과 반대로 투구는 안쪽으로 몰렸다. 외곽으로 빠져 앉았던 포수의 포구 자세가 좋을 리 없다. 상체가 쑥 빠지면서 공을 잡았다. 게다가 가뜩이나 몸쪽에 인색한 구심 아닌가. 투구 궤적은 존을 통과한 것으로 보였지만, 심판의 판정을 얻지는 못했다.

3회 볼넷으로 영점이 잡혔다. 심판의 존을 파악한 것이다. 문제는 그걸 실전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요즘 그는 자리를 깔았다. <생활의 달인>에 출연해도 될만큼의 면밀한 감별 능력을 보이고 있다. 경기 후반에는 이걸 철저하게 이용하는 모습이었다.

7회 두번째 볼넷 때 까다로운 7구째를 구별해냈다. 8회도 마찬가지다. 6구째는 스트라이크를 들어줘도 할 말 없는 공이었다. 그런데 그걸 골라냈고, 심판은 번번이 타자 편을 들어줬다. 운의 소관으로만 돌릴 수 없는 문제였다.

당사자도 얼떨떨했던 고각도 홈런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날 타격의 백미는 리드 오프 홈런이었다. 1회 카운트 2-1에서 4구째였다. 92.4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한 가운데로 몰렸다. 타석에서 약간 떨어져 있던 그가 강력한 어퍼컷 스윙을 날렸다.

첫 느낌은 별로였다. 공의 너무 아랫 부분에 타격된 느낌이었다. 너무 높이 뜨고 말았다. 투/포수, 야수들, 관중들까지.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타자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탐탁치 않은 표정이었다. 그냥 평범한 플라이볼이라는 감이었다. 그래서인가, 치고 나서 출발도 한 템포 늦었다. 배트를 놓고, 잠시 멈칫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1루쪽으로 향했다. 굳이 열심히 달릴 필요가 없을 것 같은 타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였다. 떠오름이 계속 됐다.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우익수의 발걸음도 점점 심상치 않아졌다. 레인저스 중계팀의 멘트도 점점 샤우팅으로 변해갔다. “뒤로 갑니다. 뒤로 가네요. 네. 아직도 멈추지 않습니다. 맙소사. 가버렸습니다.”

타구가 우측 담장 너머 홈 팀 불펜 지역에서 크게 튀어올랐다. 놀란 캐스터는 “처음에는 우측 깊은 플라이 정도라고 보였습니다. 카우프먼 스타디움이 홈런 치기 어려운 구장이어서 넘어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캔자스시티의 어제(한국시간 19일) 기온은 후텁지근했다. 기온은 화씨 91도(섭씨 32.8도)였지만 체감 온도는 96도(섭씨 35.6도)나 됐다. 습도가 60%나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측에서 좌측으로 시속 14마일(약 23㎞)의 바람마저 불고 있었다. 그러니까 축축한 습기와 약간의 역풍이라는 마이너스 요소를 뚫어낸 타구였다. 그래서 더욱 기이하다. 높이 뜬, 비행 거리가 긴 타구는 바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도 감안돼야 함은 물론이다.

홈런을 친 타자는 출발 때부터 반신반의했다. 의아함은 베이스를 돌면서도 해소되지 않았다. 2루를 돌면서 뒤를 돌아 우익수 쪽을 두 번이나 쳐다봤다. 진짜 넘어간 게 맞는 지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투수도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추신수 홈런

▶ 출구속도 = 106.8마일

▶ 발사각도 = 49도

▶ 비행시간 = 6.9초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진기록 2개

홈런 타구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발사각도다. 아무리 강한 타구라도 낮게 날아서는 라인드라이브로 끝나기 십상이다. 반대로 너무 가파르면 거리를 내는 데 불리하다. 통계적으로는 24~33도 정도가 이상적이다.

그런데 이날 1회 초 첫 타구의 발사각도는 무려 49도였다. 이게 홈런이 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넘어가기는 커녕 십중팔구 아웃으로 끝나야 정상이다. MLB는 타구의 각도에 따른 안타 확률에 대한 통계도 갖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49도로 떠오른 공이 인플레이 지역으로 갈 경우 아웃될 위험성은 무려 89%에 달한다.

메이저리그에 <스탯캐스트>가 도입된 것이 2015년이다. 이후로 그 정도의 고각으로 발사돼 홈런이 된 것은 딱 하나 뿐이다. 3년전 JD 마르티네스의 50도짜리 타구였다. 습도, 바람, 구장, 발사각도까지. 수많은 데이터 상의 불리함을 이겨낸 역설적인 홈런이었다. 49도짜리 홈런은 당연히 레인저스 구단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라는 진기록을 쓰게 된 셈이다.

이 경기에서 수립된 특이한 기록은 또 하나 있다. 역사적인 244승째를 올린 바톨로 콜론이 세운 것이다.

그는 이날 6회까지 90개의 공을 던졌다. 이 중 55개가 스트라이크였다. 볼넷은 1개 밖에 주지 않았다. 2개 이하의 볼넷으로 버틴 것이 벌써 22게임째 이어지고 있다. 이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경력 중 최장 기록이기도 하다. 노장의 숨겨진 진면목일 지 모른다.

그러면서 그런 상상도 해본다. 만약 그가 17번 같은 출루 머신이 있는 팀을 상대했다면 어땠을까. 내리 22번이나 2개 이하의 볼넷으로 꾸려가는 게 가능했을까. 궁금한 일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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