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 대표팀의 패배가 점점 무덤덤해진다.

조회수 2018. 6. 19. 15: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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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F조 1차전
한국 - 스웨덴 매치 리뷰

0-1, 대표팀은 스웨덴에게 조용히 패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광적인 분위기를 이끈 젊은 세대들이 이제는 삼사십대가 된 탓인지, 모든 것이 점점 차분하고 잔잔하게 느껴진다. 06' 독일 월드컵 스위스 전의 분함이나 10'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 전에서  느낀 허탈함도 없었다. 조금 과장하면 마치 평가전을 마치고 리뷰를 쓰는 기분이다.

전국 곳곳에서 거리 응원이 진행됐다. 하지만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생각이 너무 건조해졌나?" 혹시라도 나만 그런 것인지 걱정되어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냥 나처럼 애써 웃음 짓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어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다. 월드컵 본선까지 나가서 열심히 안 뛸 선수가 어딨겠는가? 장현수의 잘못 맞은 킥과 김민우의 태클, 황희찬의 빗맞은 헤딩까지 모두 잘하려는 마음에서 발생한 동작이다. 실수하기 위해 플레이하는 선수는 없다. 우리 선수들 모두 잘하고 싶어했고, 이기고 싶어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내 마음은 무덤덤했다. 경기에 대한 예상을 잘하는 편은 아니나 스웨덴 전은 불행하게도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물론 그 예상이 틀리길 바랬다. 선수 중 누군가 한 명이 미치길 바랬고, 벤치에서 신출귀몰한 전략이 나와 경기의 판세를 바꾸길 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 순간까지 신태용 감독의 '트릭'을 기다렸지만 아길라르 주심은 칼 같이 종료 휘슬을 불었다.마음이 무덤덤한 이유는 경기의 결과와 내용이 놀랍지 않기 때문이다. 필드 위의 선수들은 분명 열심히, 아주 열심히 했음에도 말이다. 

'통괘한 반란' 은 쉽지 않을 것 같다.

F조 현재 순위표


# 무기력감

지난 6월 초, 대표팀의 출정식이자 국내 마지막 평가전인 보스니아와의 경기를 전주 현장에서 관전했다.후반전은 실망스러웠지만 전반전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공을 소유했을 때 좌우 폭을 넓게 활용한 공격 패턴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수없는 무기력감이 들었다. 보스니아를 상대한 전반전 경기력이 이번 대표팀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리백 또는 포백, 원톱 혹은 투톱에 대한 고민은 어쩌면 그저 작은 옵션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이것보다 더 나아지긴 어렵겠다." 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 대 스웨덴의 경기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의 12번째 경기로 진행됐다. 앞선 경기에서 아이슬랜드와 멕시코가 놀라운 모습을 보였기에 내심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제 양 팀의 대결은 한국과 스웨덴 뿐 아니라 제 3자 에게도 관전하기 그리 훌륭한 경기는 아니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평가전 결과가 말해주듯이 두 팀 모두 공격력에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수비만큼은 스웨덴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양 팀 모두 낮은 위치에서 수비를 시작했다. 수비 상황에서 한국은 4-5-1, 스웨덴은 4-4-2 형태로 수비 블록을 형성했다. 한국은 윙어로 나선 황희찬과 손흥민이 수비에 깊게 가담하여 중앙 미드필더와 풀백에게 도움을 줬다. 

양 팀의 테크니컬 포메이션 (한국은 4-3-3 포메이션에 기반을 두고 플레이 했다.)
한국의 공격은 이용이 위치한 오른쪽에 집중됐다. 이용은 팀 내 두번째로 많은 거리(10.496km)를 활동했다.

경기 시작 이후 첫 15분은 꽤 훌륭했다. 대표팀은 스웨덴을 자신의 지역으로 밀어넣은 채 조금씩 페널티 에어리어 쪽으로 접근했다. 조금 더 냉정하게 슈팅까지 만들었다면 좋은 흐름의 지속 시간을 보다 길게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반 중반 이후부터 스웨덴도 경기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흐름은 스웨덴 쪽으로 넘어갔고, 전반전 예민한 시간에 한국은 중요한 자원인 풀백 박주호를 햄스트링 부상으로 잃었다. 김민우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그는 아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후반 20분, 매우 좋지 않은 시간대에 불쾌하지만 정당한 판정에 의한 페널티킥으로 실점했다. 상대의 압박 강도가 비교적 약한 1차 빌드업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는 대부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동일한 흐름 속에서 작은 실수들이 반복되면 그 흐름을 끊기 위해 누군가 무리한 동작을 하게 되는데, 김민우의 태클이 바로 그러했다. 아쉬운 점은 그의 무리한 동작이 앞선 몇 차례 과정에서 예방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스웨덴의 얼리 크로스를 활용한 높이 있는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김영권은 수차례 경합에서 우위를 점했고 헌신적인 블로킹을 보여줬다. 전체적인 수비에 두세차례 문제가 발생했지만 조현우의 놀라운 선방 덕분에 전반전 스코어 보드는 유지될 수 있었다.


#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다

전반전  한국과 스웨덴은 지공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은 공격 지역에서 공이 발 밑으로 들어갈 때 세밀함이 부족했고, 풀백과 윙어들이 공격에 관여하면 직전 수비 서포트 때문에 호흡이 올라온 상태로 스웨덴 수비를 상대해야 했다. 실제로 손흥민과 황희찬은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스프린트 (손흥민 46회, 황희찬 37회)를 기록했다. 최전방 김신욱을 투입한 효과는 전반전까지 유효했다. 두 명의 스웨덴 센터백을 지속적으로 견제했고 높이 싸움에서 경쟁력을 보였다. 다만 김신욱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발 밑으로 투입된 공은 많지 않았다. 두 명의 미드필더 이재성과 구자철, 양쪽 윙어 황희찬과 손흥민은 우선적으로 수비를 생각해야 했다. 수비와 미드필드 간격은 비교적 좁게 유지되었으나 미드필드와 최전방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역습 상황도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하필 이틀 전 독일을 상대로 멕시코가 보여준 역습이 축구팬들의 '역습에 대한 기준'을 향상시켰다.

① 멕시코는 최전방 공격수 발 밑으로 빠르고 정확한 패스를 보냈고

② 공격수는 그 공을 어떻게든 지켜내어 연결했다.

③ 최전방에서 공을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미드필더들은 전속력으로 침투 했고

④ 덕분에 역습의 선택지가 많아졌고 위력은 배가 되었다.

황희찬과 손흥민 두 명의 윙어는 전반전 몇 차례 역습 상황에서 위협적인 개인 돌파를 선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비에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에 공격으로 전환 시 폭발력이 약화되었다. 역습 상황에서 한 명이 마음 먹고 공을 운반해도, 뒤에 있는 동료가 그만큼 따라 올라가지 못하는 장면이 있었다. 여기에는 체력이 아닌 심리적인 원인도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료 공격수가 위에서 버텨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밑에 있는 미드필더는 '주고 빠르게 전진' 할 수 있지만, 확신이 부족하면 '주고 천천히 전진' 한다. 공을 빼앗겨 다시 내려와 수비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료와의 신뢰 부족이 아닌 상황의 불확실성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은 몇 차례 역습 기회를 맞이했으나 공격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는 부족했다. 라인 자체가 낮았기에 미드필더들이 이동해야 하는 거리 역시 멀었다.

# 공격과 수비, 선택의 기로

스웨덴 전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현재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레벨에서 두 가지 요소를 균형있게 운영할 능력이 없다. 대표팀 코칭스텝 역시 이 부분을 알고 있는 듯 하다. 수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전반전을 0-0 으로 마친 것 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후반전 변화를 줄 타이밍에 실점한 것은 회복하기 어려운 데미지였다. 안타깝지만 현재 대표팀은 멕시코가 독일을 상대로 보여준 것처럼 수비와 역습을 동시에 잘 수행할 수 없다. 수비에 집중하면 어떻게든 1실점 이하로 막아낼 수 있겠지만, 공격에 사용할 힘은 그만큼 적어진다. 스웨덴 전에서 대표팀은 단 한개의 유효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경기 후 기성용의 인터뷰처럼 스웨덴의 수비는 역시 견고했다. 이제 다음 상대인 멕시코와 독일은 다른 스타일로 한국을 상대할 것이다. 멕시코는 독일 전과 다른 전략을 내세울 것이고, 각성된 독일은 공격에 모든 힘을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1차전 패배로 가뜩이나 좁았던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모든 에너지를 총동원한 스웨덴 전에서 승점을 얻지 못했다. 그에 앞서 멕시코는 엄청난 경기력으로 독일을 꺾었다. 상황이 대단히 어려워졌다. 남은 두 경기에서 수비에 더 무게감을 두면 최소 승점이라도 딸 수 있을까? 아니면 공격에 집중하여 무게 중심을 전방에 두면 득점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아직 두 경기가 남았다. 우리는 F조에서 생존 확률이 가장 낮은 팀이고 앞으로 스웨덴보다 더 강한 팀을 상대해야 한다. 월드컵 무대에서 우리가 약자인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경기 후에 스스로 무덤덤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 대표팀인데, 분명 한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여 이 악물고 전력을 다했는데, 심지어 유효 슈팅 하나 조차 기록하지 못했는데 왜 별로 화가 나지 않는 것일까.

김민우의 눈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결국 선수만 눈물을 흘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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