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오승환, 3번 타자에게 능욕을 선사하다

조회수 2018. 5. 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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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였다. 원정 팀은 2점을 보태 4-0의 여유를 만들었다. 이제 땀도 좀 닦으며, 한숨 돌리던 찰라였다.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선발 제이 햅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1사 후 4연속 안타를 맞았다. 3명의 주자가 홈을 밟았다. 4-0은 금세 4-3으로 쫄아붙었다.

이 부분에서 꼭 기억해야 할 대목이 있다. 4연속 안타의 리스트다. 바로 홈 팀의 중심 타선인 3번 마이켈 프랑코, 4번 카를로스 산타나, 5번 애런 알테어, 6번 닉 윌리엄스였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수비쪽은 타임을 불렀다. 마운드 미팅이 마련됐다. 누가 봐도 교체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블루제이스 벤치는 인내력을 발휘했다. 아직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제이 햅은 나머지 2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고 무사히 6회를 마쳤다.

참을성은 7회까지 이어졌다. 2사 후. 다시 한번 타임이 불렸다. 제이 햅의 투구수가 정확히 '100'을 찍은 시점이었다. 존 기븐스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 공을 건네 받았다. 멀리 불펜에서 2명이 함께 달려나온다. 보스와 유진(통역)이었다.

첫 타자는 2번 리스 호스킨스였다. 2구째 바깥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에 속았다. 타격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스윙이 나왔다. 속칭 '삑사리'가 난 타구는 1루쪽으로 힘없이 굴렀다. 단거리 경주가 시작됐다. 간발의 차이로 보스가 이겼다. 7회가 간단히 사라졌다.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8회 클린업트리오에게 삼진 2개

문제는 다음 이닝이었다. 8회 말, 스코어는 여전히 4-3으로 간당간당이다. 어제(한국시간 27일) 생각이 난다. 1-1에서 닉 윌리엄스에게 솔로홈런 한 방을 맞고 게임을 놓쳤다. 그 때도 8회였다.

하필이면 타순도 께름칙하다. 3번부터 시작이다. 6회말 선발 제이 햅에게 연속 안타를 뽑아냈던 타자들이다. 줄줄이 대기표를 끊고, 기분 나쁜 눈빛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럴 때는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승부처는 첫 타자 마이켈 프랑코다. 초구는 투심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몸쪽 가장 낮은 코스로 통과했다. 도저히 배트가 나올 수 없는 자리였다.

문제의 2구째다. 이번에는 포심 패스트볼이다. 93.3마일짜리가 약간 몸쪽 높은 코스를 뚫고 지나갔다. 프랑코의 반응이 격렬했다. 노리고 있던 공이었나 보다. 풀 파워를 작동시켰다. 엄청난 스윙이 폭발했다. 그러나 공과 배트의 차이는 상당했다.

                                                                                                                                                 mlb.tv 화면

사심이 잔뜩 들어간 스윙은 크게 헛돌았다. 배트만 춤을 춘 게 아니다. 프랑코도 중심을 잃었다. 한 바퀴를 빙그르 돌더니 밸런스를 잃고 타석에서 나뒹굴었다. 덕아웃에서, 관중석에서 키득거림이 들렸다. 누군가는 폭소를 터트렸다. 마운드의 투수는 애써 웃음을 참는다. 고개를 돌린 채 어금니를 꽉 깨물어본다.

타자는 민망함에 힘들어한다. 재빨리 일어났지만 온통 더럽혀진 유니폼은 잠시 전의 능욕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혀를 길게 빼물고 투수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어색함, 창피함은 어쩔 수 없다.

가장 먼쪽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

화려한 몸 개그에 마음이 짠해졌나? 볼배합이 달라졌다. 연속된 슬라이더가 바깥쪽을 향했다. 하긴 투수가 누군가. 자애로운 돌부처 아닌가. 아무래도 또다시 몸쪽 빠른 볼은 잔인한 일이다. 그런 측은지심이 발동했는 지 모른다.

자비의 끝은 5구째다. 84마일짜리 슬라이더가 가장 먼쪽 낮은 코스를 통과했다. 아니, 존을 스쳤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보더 라인에 걸쳤다. 구심은 용케 그걸 식별해냈다. 세번째 스크라이크 콜이 울려퍼졌다.

타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게 어떻게 스트라이크냐는 불만이다. 구심이 째려본다. 그 기세에 눌려 대놓고 항의는 못한다. 꼬리 내린 채 덕아웃으로 향한다. 그래도 끝까지 수긍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때인가. 그래픽의 시대 아닌가. 중계 방송화면에 조금 전 장면이 리플레이된다. 그리고 5구째의 궤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완벽한 스트라이크 맞다. (mlb.com은 오승환의 슬라이더를 커터로 분류하기도 했다.)

                                                                                                     출처  mlb.com


                                                                                                                                                                          mlb.tv 화면

1점차 리드 8회를 책임지다

역시 '선빵'이 중요하다. 8회 선두 타자 프랑코(3번)가 무참히 당하자 홈 팀의 위세등등함은 완전히 꺾였다. 다음 타자들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한다. 카를로스 산타나(4번) 역시 2구째 몸쪽 하이 패스트볼에 유격수 팝 플라이로 물러났다. 그나마 애런 알테어는 6구까지 저항했다. 하지만 또다시 높은 공에 배트가 헛돌고 말았다.

오늘(28일) 보스의 등판은 여러 면에서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등판 시기다. 1점 차이로 리드한 상태였다. 그것도 7회 2사부터 8회까지 4개의 아웃 카운트를 책임졌다. 이제까지 출근 시간은 주로 빠르면 5회, 주로 6회였다. 선발이 일찍 내려간 경우였으니, 지고 있는 상황이 많았다. 그러니까 주연, 주조연, 조연 등으로 불펜의 배역을 나눈다면 단역 정도였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점점 출근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급기야 8회까지 가게 된 것이다. 물론 풀타임 마무리 로베르토 오수나가 행정 휴직 상태인 영향이 크다.

둘째는 벤치가 맡기는 업무의 난이도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상대의 가장 강한 타순을 처리했다. 2번~5번까지였다. 이번 시리즈 내내 그들을 괴롭혔고, 이날 경기에서도 연속 안타를 몰아치면서 3점을 뽑아낸 정예 부대다.

이들을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의 캐스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알려진대로 피트 워커 투수코치는 며칠 전 <토론토 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오승환과 테페라는 모두 마무리를 할 수 있는 투수들이다. 특히 오승환은 이전에 (마무리로) 많은 성공을 거둔 투수다. 경기 후반 상황이나 매치업에 따라 기용이 결정될 것이다."

오승환을 염두에 둔 감독의 게임 플랜

아시다시피 블루제이스는 고민하고 있다. 오수나 공백의 첫번째 대안이었던 타일러 클리파드는 제 일을 못했다. 존 액스포드도 비슷했다. 9회만 되면 후달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오늘 마무리는 라이언 테페라의 몫이었다. 볼넷 1개만 주고 승리를 지켰다. 그러나 고과 점수를 따지면 보스와 비교할 수 없다. 일단은 아웃카운트도 1개가 적었다. 그리고 테페라가 올라간 9회는 스코어가 5-3으로 한층 여유로운 상태였다. 무엇보다 그가 처리한 타자들은 주력 부대가 아닌 하위 타선에 불과했다.

글 초반에 서술했던 부분이다. 6회 선발이 3실점했을 때 분명한 교체 시기였다. 그러나 존 기븐스 감독은 타이밍을 늦췄다. 그리고 7회 2사가 된 후에 돌부처를 마운드에 올렸다. 물론 이번 시리즈에서 불펜의 소모가 컸다는 점도 고려할 요인이었다. 하지만 중심타선을 맡아줄 사람이 누군가를 깊이 고민한 게임 플랜에 따른 교체였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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