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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의 超야구수다] 야구의 묘미는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조회수 2018. 5. 21.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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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토요일 사직 구장은 만원 관중, 동백의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찼다. 롯데는 그 기세에 힘입어 2회말 한 이닝 8득점. 한번 불붙은 롯데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었고, 두산의 장원준-양의지 배터리는 이를 끊어내지 못했다. 경기의 결과는 15-2 롯데의 압승이었다. 롯데는 모처럼 홈팀 만원 관중 앞에서 최상의 경기를 했다.

반면 두산은 경기 초반의 대량 실점, 승부를 넘겨주는 최악의 경기 운영 패턴이었다. 특히 투수와 포수가 이를 충분히 알고 있는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더욱 큰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두산의 장원준-양의지 배터리가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되짚어보면 야구가 정말 어렵고 또 재미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야구는 투수가 던지는 1구 1구마다 쉼이 있고 그 쉼을 두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각에 따라 상황은 수시로 변한다. 주어진 상황이 달라지면 당연히 그에 따른 판단도 달라져야 하는데, 또 생각하고 다시 결단하는 이 과정이 쉽지가 않다. 경험의 무게, 베테랑의 힘이 높게 평가받는 순간이다.

분명히 베테랑들이 가진 경험의 힘은 그 순간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보다 상황을 보다 넓게 볼 수 있는 것은 승부를 유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야구가 어려운 것은 그렇다고 해서 꼭 최선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결과만 놓고 보면 보지 못해서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다.

2회말 롯데의 빅이닝, 모든 결과의 시작은 순간의 욕심에서 시작했다. 

2회말 1사 2,3루 8번 신본기 타석. 4구째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을 헛스윙, 2B-2S가 된다. 여기서 양의지의 생각이 바뀐다. 베테랑 포수 양의지의 눈에는 순간 타자 신본기의 생각이 읽혔고 허점이 크게 보였기 때문이다.  

신본기의 헛스윙 이전에는 어떻게든 낮은 코스에서 땅볼이나 얕은 뜬 공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리드 과정에서 확실하게 나타났다. 투수 장원준의 불안한 제구력 상태와 신본기의 장타를 경계했다. 다음 타자 나종덕까지 계산에 넣었고  경기 초반 1~2점을 내주는 것은 괜찮다는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 신본기가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에 배트가 따라 나와서 헛스윙을 하자 '한 점도 내주지 않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급한 욕심을 순간 다스리지 못하면 시야가 좁아져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은 인생이나 야구나 같았다.

대체로 신본기는 헛스윙한 공을 의식하고 경계하는 경향이 강하다. 포수 양의지는 역으로 밀어붙인다. 볼카운트 2B-2S 5구째, 투수 장원준에게 몸쪽 직구 사인을 내고 삼진을 잡으러 들어간다. 결과는 몸에 맞는 볼이 나오고 롯데의 빅이닝의 시발점이 된다.

사실 몸에 맞는 공이 나오긴 했으나 타자의 반응으로 봤을 때 포수 양의지의 판단은 정확했다. 만약 공이 요구대로 들어왔다면 방망이는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타자의 허점이 커보인 포수 양의지는 욕심이 앞섰고 제구력이 흔들리고 있던 투수 장원준을 그 순간 믿어 버렸다. 점수를 안주겠다는 욕심에 시야가 좁아져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만다.

두산 장원준의 불안한 제구력은 이미 본인의 리듬감을 잃어버린 투구동작에서 알 수 있었다.   

상황을 조금 앞으로 돌려보면 두산 장원준의 제구력은 2개의 볼넷을 허용하는 등 1회말부터 불안했고 흔들렸다. 게다가 마운드 위에서 계속해서 자신 없는 모습을 내보였다.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장면은 2회말 1사 1루 7번 번즈 타석의 초구였다. 초구를 좋아하는 번즈의 경향을 감안, 승부구로 요구한 몸쪽 직구가 포수의 요구와는 달리 스트라이크 존 한 가운데로 높게 몰려 들어왔다. 양의지의 예상대로 번즈는 초구부터 적극적인 스윙을 했고, 결과는 중견수 박건우를 넘어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  

이 장면은 마운드 위의 장원준과 포수 양의지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았고 신본기에 던진 마지막 공에 그대로 투영된다. 번즈 타석과 같이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를 던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배터리 모두에게 있었다. 포수 양의지는 코스를 깊게 벌리라는 제스처를 보였고 장원준의 마음은 몸쪽 더 깊은 코스로 향했다.

물론 장원준이 신뢰받던 이전 모습이라면 공 하나하나에 마음을 두고 연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기술적으로도 지금처럼 제구력이 흔들려서 목표한 곳에서 공이 크게 벗어나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장원준은 투구동작에 안정된 리듬을 잃은 상태다. 보통 투구시 ‘다리를 빨리 들고, 다리를 든 시점에서 앞다리의 착지까지 천천히, 그리고 마지막 팔 스윙은 다시 빠르게’ 라는 퀵-슬로우-퀵의 리듬이 있다. 그런데 지금 장원준은 슬로우-퀵-슬로우의 상태로 공을 던지는 경우가 많고 이마저도 자주 바뀐다.

이 경우 하체보다 상체의 움직임이 급해져 팔 스윙이 일정하지 않다. 대개 얼굴을 기준으로 앞으로 넘어오지 못한고 뒤에서 힘으로 던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릴리스 포인트도 흔들리고 얼굴 앞까지 공을 끌고 나오기가 힘들게 된다. 팔이 넘어오지 않고 머리에서 멀어진 팔 스윙은 인-아웃 코스에 대한 제구력에 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장원준은 어떤 공이 들어올지 신뢰할 수 없다. 특히 긴장도가 높아지는 위기 상황은 더욱 그렇다. 타자의 허점도 허점이지만 투수를 먼저 생각하고 가장 안정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순간의 욕심은 상황을 더 큰 미궁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야구는 행동으로 표현되기 전 서로의 생각과 생각이 먼저 부딪친다. 그 생각 하나는 야구를 바꾼다. 

9번 나종덕과 승부. 이미 자신감을 잃은 장원준에게 몸쪽 직구를 다시 요구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상위타선으로 흐름이 연결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조바심까지 더해졌다. 초구 몸쪽 슬라이더, 다시 가운데로 몰렸고 파울이 나왔다. 변화구에 타자의 스윙과 타이밍이 늦었음에도 몸쪽 빠른 공을 쓰지 못했다.

1B-1S, 볼카운트가 더 나빠지기 전 빠르게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승부를 들어갔다. 결과는 3-유간을 빠르게 빠져나가는 좌전안타. 1할 타자인 9번 나종덕의 1사 만루 상황 2타점 선제 적시타는 롯데 타선에 불을 붙이기에 충분했다. 

야구는 타구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 주루 플레이를 빼고는 모두 미리 생각하고 행동한다. 결과는 행동으로 표현되지만 그에 앞서 서로의 생각과 생각이 먼저 부딪친다. 그리고 그 생각 하나로 야구가 달라진다.

동백 유니폼의 붉은 빛으로 가득 찬 사직 구장을 들끓게 한 롯데의 빅 이닝. 아주 작은 순간의 욕심이 베테랑 포수의 생각을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왜 그랬을까, 게임은 끝났지만 야구는 우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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