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사타구니 부상과 우리의 저렴한 상상력

조회수 2018. 5. 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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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게티이미지

벌써 며칠째다. 일련의 검색어가 포털과 SNS를 강력하게 점유하고 있다. JYP, 배용준, 구원파 같은 (고유)명사들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이 이의를 제기했다. ‘박진영과 배용준이 유병언과 같은 구원파 신도란는 게 왜 비난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가 ‘남북 정상회담 열리지 않게 해주십시요’라고 하면 입을 모아 ‘아멘’을 외치는 사람들도 비난받지 않는 나라에서…’라는 멘션을 날렸다.

더 강력한 반론을 제기한 사람도 있다. 김어준이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렇게 얘기했다. “구원파든 아니든 우리 사회가 박진영 개인의 종교관을 왜 알아야 하는거냐. 디스패치는 무슨 자격으로 개인의 종교관을 따지고 기사화 하는거냐. 박진영 개인의 교리해석이 어떤 이유로 사회적 의제가 되는거냐.”

그의 반론은 이어진다. “기사 후반은 청해진 해운의 이상한 자금 운영에 대해 말한다. 그 자금 운영이 세월호 침몰 원인과 직접 관계가 있다는 증언, 증거가 하나라도 있냐. 그럼 그걸 제시하라. 더 황당한건 박진영의 종교관과 청해진 자금운영을 왜 한 기사에서 쓰고 있는거냐. 박진영이 그 자금 운영에 개입했냐. 아니면 청해진, 혹은 청해지의 주주냐. 이런 기사 하나 던져주면 시민들이 구원파가 세월호를 침몰시켰고 구원파 신도인 박진영에게도 연대책임이 있다며 떠들어댈거라 기대하는거냐. 사람들을 바보로 보는거냐.”

참 뜬금 없다. 하지만 <…구라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역삼동의 기도모임과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생긴 사타구니 부상은 어쩌면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 어떤 키워드가 등장하고, 거기에 얽힌 상상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프레임 말이다.

하필이면 또 애리조나에서 생긴 불행

사실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2회 첫 타자 때였다. 케텔 마르테의 타구가 1루쪽으로 굴렀다. 투수는 반사적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비록 몇 걸음 가다가 멈췄지만 베이스 커버를 위해 급히 몸을 돌리는 과정이 미심쩍었다.

그래서 그렇게 보였나. 이 때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다음 타자(데븐 마레로)에게 초구를 느린 커브(72마일)로 간 것도 그래서인 지 모르겠다. 그리고 문제의 2구째. 힘을 실은 커터(87.7마일)를 몸쪽에 꽂으면서 사달이 났다.

당시에도 심각해 보였다. 덕아웃으로 향하는 걸음마저도 불편해 보일 정도였다. 경기 후 당사자나 감독의 멘트에서도 만만치 않은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하루 뒤에 나온 MRI 진단 결과는 참담했다. 전반기가 통째로 날아갔다.

3일(현지시간) 경기를 앞둔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브리핑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염좌가 발견됐지만 정도 자체는 심하지 않았다. 문제는 근육이 찢어졌다는 점이다. (MRI 상으로) 뼈가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하필이면 일생일대의 시즌 아닌가. 지긋지긋한 재활 과정을 이겨냈다. 비로서 기지개를 켰다. 모처럼 신바람을 내고 있는 이 타이밍에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 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투수들이 직업적으로 잘 다치는 부위가 있다. 어깨와 팔꿈치다. 선수 생명과도 연관된 치명적인 부위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만만치 않게 자주 애를 먹이는 곳이 있다. 허리, 무릎 등이다. 그리고 사타구니도 그 중 한 부분이다.

공을 던지기 위해서는 강하게 몸을 앞으로 밀어내야 한다. 좌완 투수에게는 그런 작용을 해주는 부분이 왼쪽 허벅지 안쪽의 근육이다. 영어로는 groin, 곧 사타구니 부근이다.

실제 많은 투수가 이 부분에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99번 투수도 2년 전에 한 차례 고생한 적이 있다. 당시도 하필이면 애리조나였다. 스프링캠프 막판에 통증이 생겨 부랴부랴 LA로 이동해야 했다. 주치의 닐 엘라트라체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시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동안 (어깨) 부상 회복을 위해 모든 걸 참고 견디면서 애리조나 생활을 버텨왔는데, LA로 왔다가 (검진 결과가 나빴으면) 다시 애리조나로 향한다는 건 심리적인 면에서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때는 다행스럽게 가벼운 정도였다. 회복 기간이 한 달이면 됐다. 로버츠 감독도 “사막 탈출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흔히 유명세라고 부른다. 유명하니까 내야하는 세금이라는 뜻이리라. 그에게는 여러가지 항목으로 붙었다. 햄버거, 담배, 런닝맨 같은 것들이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특히 결혼 이후에는) 가족에 대한 얘기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훈련장,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모습이 자주 보도되면서 이런 저런, 쓸데 없는 말들이 보태졌다.

팬이라는 자격에 모든 권리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상의 기호는 간섭의 대상이 아니다. 술/담배를 즐기던 말던,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던 말던, 가타부타를 논할 필요는 없다. 그게 싫으면 팬 안하면 그만이다. 야구장 밖에서는 누구나 자연인으로 살 권리가 있다. 도리와 규범, 품위를 어긋나지 않으면 그걸로 다행이다.

마찬가지로 부상에 대한 아쉬움도 그렇다. 평소 훈련이나 몸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걸 유추하기 위해 저렴한 상상력을 동원하는 일은 별로 즐겁지 않다. 댓글창과 SNS를 통해서 유통시킨 비아냥들은 전혀 논리적이지도, 기발하지도 않다. 그냥 저급할 뿐이다.

‘혀 아래 도끼 들었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얘기다.

그 두려움을 아는 옛 어른들의 슬기로움도 전해진다. 경북 예천에 가면 말무덤(言塚)이라는 게 있다. 의미 그대로 말을 묻어두는 무덤이다. 마을에 하도 시비거리가 많아지자, 비방과 헐뜯음을 사발에 담아 넣어뒀다는 고사가 함께 전해진다.

남의 일에, 그것도 청천벽력 같은 불행에 발휘된 싸구려 상상력이야 말로 사발에 넣어 꽁꽁 싸매둬야 할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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