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재우의 메이저? 메이저! ] 류현진과 그의 천장

조회수 2018. 4. 26. 12: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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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인 2010년 겨울로 기억한다. 일본에서 야구 관련 일을 하는 관계자와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대화의 주제는 KBO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던 두 명의 좌완 투수 류현진과 김광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국내 최고의 투수인지라 그 관계자는 향후 두 선수 중 누가 더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물었다. 어려운 질문이었다. 2006년 데뷔와 동시에 18승을 거두며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한 류현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투수였고 국제 대회에서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및 2010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주역등 자타가 인정하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김광현도 만만치 않았다. 류현진보다 1년 늦은 2007년 데뷔해 2년차일 때 16승을 거두며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고 2009년 2회 WBC에서 ‘일본 킬러’로 자리 잡으며 각광을 받았으니 답을 주는 것이 쉬운 것이 이상하다.

당시 필자의 답은 김광현이었다. 그렇게 답한 이유는 단순했다. 필자의 눈에는 당시 류현진이 모든 것을 갖춘 투수였다. 구위, 컨트롤, 경기 운영 능력, 스태미너, 강약조절, 두둑한 배짱 등 감독이 꿈꾸는 모든 요소를 가진 선수인 것이다. 메이저 리그에서 사용하는 단어 중에 ‘Ceiling(천장)’이란 말이 있다. 주로 젊은 선수들에게 사용하는 단어로 이 선수의 성장 한계치를 말하는 것이다. 즉 ‘천장’이 높다는 말은 미래 이 선수의 성장의 소지가 크다란 뜻이며 천장이 낮다는 것은 그 반대 경우를 의미한다. 천장이 낮다는 말을 같이 활용해도 어떤 선수는 주어진 재능의 한계가 낮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선수는 지금 갖춘 것이 많아서 더 이상 늘게 한정적이란 뜻이 될 수도 있다. 그 당시 필자가 바라보는 류현진이 바로 후자의 경우였다. 현재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앞으로 더 좋아질 게 얼마나 남아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이다.

반면 김광현도 뛰어난 투수였지만 거친 면이 분명히 있었다. 다이내믹한 투구폼에 150km를 쉽게 상회하는 빠른 볼과 명품 슬라이더까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컨디션에 따른 기복이나 선발로서 제한된 구종, 정교함이 결여된 커맨드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향후 성장 가능성, 즉 천장이 더 높게 보이는 측면이 있었다. 20대 초반의 아직은 어린 선수가 이런 면을 더 다듬고 갖춘다면 그 가능성은 더 높게 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한 선수는 미국에서 또 다른 선수는 국내 야구를 지키며 부상도 극복하면서 30대에 접어든 현재에 이르렀다.

그런데 8년여 전의 류현진을 바라본 시각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것을 올 시즌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가 등판한 올 시즌 4경기 중 최근 3연승을 거둔 경기를 보면 상대 타자에 대한 분석과 볼배합이 투수에게 제3의 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며 우리가 알던 과거 류현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부상 전 류현진은 메이저 리그에서 파워 투수 유형은 아니었지만 최고 구속 95마일의 속구와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가는 선수였다.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이 두 가지 구종을 받쳐주는 조연이었다. 그래서 빠른 볼의 구속이 떨어지는 날은 주무기 체인지업의 위력이 반감되며 고전의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알던 류현진이 아니다. 최고 구속은 93마일이지만 평균 구속은 91.2마일로 부상 전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 구종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지난해 후반기에 장착한 커터가 새로운 무기로 떠올랐고 과거에는 던지지 않았던 투심의 활용도도 나쁘지 않다.

데뷔 당시 볼배합을 살펴보자. 2013년 류현진의 포심 비율은 54.4%였고 체인지업은 22.2%로 두 구종 비율이 76.6%에 달해 투 피치 투수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올 시즌은 포심 25.4%, 투심 14.4%, 커터가 25.4%로 포심과 정확히 사용률이 같았다. 그리고 체인지업은 15.9%로 메이저 리그 데뷔 후 가장 낮다. 커브는 17%로 가장 높다. 커터를 장착하며 슬라이더는 10%가 넘는 선에서 1.4%로 뚝 떨어졌다. 이렇게 구종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팀과 타자에 따라 맞춤형 볼배합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삼진율은 역대 최고인 9이닝당 10.72개, 땅볼 유도율은 52.9%로 최고이다.

그 날 상대팀과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팔색조’ 볼배합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4월11일 오클랜드 전의 주인공은 우타자 상대 몸쪽 커터였다. 28%의 활용률을 보이며 그 날 경기 활용 구종 유효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2승 경기였던 샌디에이고 전에는 초반 커터가 연속 장타를 허용하며 흔들리자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며 빠른 볼과 체인지업을 적극 활용하며 타자들의 노림수를 노련하게 피해 나갔다. 이 날은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듯 올해 경기당 가장 높은 비율로 포심을 무려 52.7%를 던지고 체인지업을 살렸다. 그러면서 놀란 점은 5회와 6회 다시 커터를 던져 타자들을 혼란에 빠트린 것이다.

바로 지난 워싱턴 전은 데뷔 이후 가장 다양하게 구종을 활용한 경기였다. 커터가 30%, 빠른 볼이 26%, 체인지업 24%, 커브가 18%, 슬라이더도 2%를 구사했다. 실제로 3회 2사 상황에서 라이언 짐머맨을 상대할 때까지 같은 구종을 연속으로 던진 적이 없었을 정도로 화려한 볼배합을 보여줬다. 그리고 짐머맨을 갑자기 볼배합을 바꾸며 3연속 커터를 구사할 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13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며 7회까지 마운드를 지키고 내려갈 때 상대 타자들은 더 이상 노림수를 가지지 못하고 그저 공을 보고 쳐야 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시즌은 길다. 지금 잘 나가지만 분명히 어려운 경우도 닥칠 것이다. 그 날 따라 이 구종 저 구종 모두 말을 안 듣고 컨트롤이 안 되는 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류현진은 진화했다. 더 이상 컨트롤과 체인지업만 앞세우는 투수가 아닌 것이다.

올 시즌 류현진은 투구 패턴은 매 경기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는 ‘구종 팔색조’가 아니고 화려한 볼배합을 자랑하는 ‘볼배합 팔색조’ 류현진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류현진은 스스로 ‘천장’을 높인 선수로 인정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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