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비교적 정확했던 구명환 심판..어떻게 '괴물'이 됐나

최민규 2018. 4. 26.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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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최민규 전문위원] 구명환(32) 한국야구위원회(KBO) 심판위원은 올해로 프로야구 심판 경력 8년째를 맞는다.

지난해까지 1군 8경기, 2군 702경기에 심판으로 판정을 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름은 ‘오심’의 대명사가 됐다. 공정하지 않은 평가다.

구 위원은 지난 19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SK-kt전에서 주심을 맡았다. 경기 중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에 놀라거나 불만을 나타내는 장면이 몇 차례 TV 화면에 잡혔다.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팬들이 판정에 항의하는 글들을 올렸다.
KBO리그의 심판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다. 사진=MK스포츠 DB

여기까지는 야구에서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음날 포털사이트 네이버 야구페이지 메인 화면에 “KBO 구명환 구심 판정, 팬들 비판 이어져”라는 기사가 걸리면서 일이 커졌다. 관련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졌고, 심지어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구 위원을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왔다.

그런데, 19일 수원에서 구 위원은 정말 엉터리 판정을 했던 것일까.

홈 플레이트 근처가 아니라면 심판의 판정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대부분 TV 중계 화면이다. 하지만 화면에서 스트라이크존은 카메라 각도 때문에 왜곡되기 쉽다. 홈플레이트 가장자리를 걸치는 공은 TV 화면으로는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다른 방법은 투수와 포수, 타자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선수가 판정에 화를 내거나 불만을 나타내면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 여기게 된다. 감독들도 그렇게 한다. 더그아웃에서는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절대 구분할 수 없다.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케이티위즈파크에는 현재 두 종류의 투구궤적추적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이 분야 전문가에게 두 시스템이 측정한 19일 구 위원의 판정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 시스템이 설정하는 존을 벗어났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공이 세 개 있었다.

SK가 4-1로 앞선 4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 나주환 타석에서 3구째가 처음이다. 볼카운트 0-2에서 바깥쪽 낮은 코스로 던진 공을 나주환은 지켜봤고 구 위원은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

두 번째는 같은 스코어에서 6회초 선두 타자 제이미 로맥 타석에서 4구째였다. 몸쪽으로 쏠린 듯한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왔고, 볼카운트 1-2였기 때문에 로맥은 삼진 아웃됐다.

세 번째는 kt가 5-6으로 뒤진 9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유한준 타석이다. 볼카운트 1-0에서 2구째 바깥쪽 높은 공이 스트라이크가 됐다.

세 공 모두에서 타자들은 반응을 보였다. 판정 직후 나주환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고, 로맥은 두 팔을 벌리며 혼잣말을 했다. 유한준도 주심 콜이 나오자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이 공 세 개를 제외하면 투구궤적추적시스템에서 특별히 이상한 공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기 상황으로 볼 때 이 판정 세 개가 승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이 정도 개수의 판정 오류는 거의 모든 야구장에서 일어난다. 특히 KBO가 존을 넓히기로 방침을 정한 지난해부터 과거라면 볼로 판정될 공이 자주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고 있다.

분석을 의뢰한 전문가는 “kt 공격 때는 낮은 쪽이 좀 넓었고, SK 공격 때는 바깥쪽이 약간 후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투수에 따른 심판의 성향 차이다. 오히려 같은 날 다른 구장에서 존이 오락가락했던 판정이 있었다. 구명환 위원의 판정은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기준이 비교적 일정했고, 팀에 따른 차이도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대체로 1군 경험이 많은 심판들의 판정이 더 정확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구 위원의 판정 실력은 오히려 준수한 편이다.

가상의 입체를 기준으로 하는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은 본래 어느 정도 오류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 하기에 상황에 따라 판정 기준이 무의식 중에 달라지기도 한다. 가령 2스트라이크라면 존이 좁아지고, 3볼이라면 존이 넓어진다. 야구 뿐 아니라 축구, 농구 등 다른 종목에서도 홈 팀은 다소 유리한 판정을 받는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견된다.

기계를 이용했다고 해서 꼭 정확하지만은 않다. 방송사들이 내보내는 스트라이크존 그래픽은 홈플레이트 위 특정 지점을 기준으로 한다. 기준이 홈플레이트 앞 직선이라면 존을 옆으로 통과하는 백도어성 공은 그래픽에서 볼로 표시된다. 떨어지는 스플리터나 커브볼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볼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공은 포수가 원바운드에 가깝게 잡는다. 심판들은 이런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면 관중이 야유를 보낸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선수들이 몸으로 알고 있는 스트라이크존은 야구규칙의 스트라이크존보다 조금 더 높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더라도,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선수나 팬이 화를 내는 것 역시 매우 당연하다. 19일 경기에서라면 판정이 애매한 공에 삼진아웃이 두 번 기록된 SK 쪽이 더 화를 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야구 경기에서의 일상적인 오류와 일상적인 분노가 사회적인 이슈가 돼버린 방식이다.

20일 네이버 메인에 걸린 기사는 한 매체의 ‘온라인이슈팀’에서 작성됐다. 실제 경기를 취재했거나, 구체적으로 판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판정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는 전형적인 리드문으로 시작한 뒤 온라인에서 취합한 팬 의견 두 개를 큰따옴표로 묶어 처리했을 뿐이다. 포털사이트와의 기사 공급 계약에 따라 기사량을 채우기 위해 출고하는 전형적인 어뷰징 기사다. 정상적인 뉴스 편집자라면 이런 기사에 가치를 거의 두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네이버는 페이지 편집에서 편집자의 판단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편집 알고리즘이 과거 사람이 했던 일을 대신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해외야구면의 경우 100% 알고리즘에 의존한다. 국내야구 면은 편집자 판단이 일부 반영되지만,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기사는 당일 실시간 검색 랭킹 상위에 랭크됐고, 독자들의 메인 페이지 추천이 1000건을 넘었다. 그래서 메인 페이지에 배치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기사가 메인 페이지에 오른 당일 134건의 어뷰징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은 취재나 분석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오심’을 기정사실화하는 함량 미달의 기사였다. 하지만 함량과는 관계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는 이유만으로 구명환 위원은 무능한 심판이 돼 버렸다.

한 번 만들어진 이슈는 생명력을 얻는다. 판정에 대한 비판은 편파 판정, 나아가 승부조작이라는 억측으로까지 비화됐다. 20일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구명환 심판 및 스포츠토토/뒷거래 조사바랍니다”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는 189명이 참여했다. 한 매체는 심지어 구 위원의 결혼식 사진을 당사자 동의 없이 개제해 가족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게 했다.

하지만 투구궤적추적시스템으로 검증해 본 19일 구명환 위원의 판정은 상대적으로 정확했다. 왜곡된 언론 환경과 온라인 ‘여론’ 형성 과정은 구명환이라는 심판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여기에 대해 아무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 didofidom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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