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세계 1위 박인비, "'리오'는 나의 힘"

김영성 기자 입력 2018. 4. 25. 14:06 수정 2018. 4. 2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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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견 '리오'와 매일 영상통화…피로 풀리고 긍정 에너지 얻어
- 세계랭킹 1위, 상금-올해의 선수 등 주요부문 선두…'제2의 전성기'
- 국내 대회 '무관' 숙제 풀기 위해 올 상반기에만 KLPGA 투어 2개 대회 출전

'골프 여제' 박인비의 보물 1호는 '리오'입니다. '리오'는 박인비가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귀국할 때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반려견입니다. 박인비는 손가락 통증 때문에 출전조차 어려울 것이라던 주변의 예상을 깨고 116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여자골프에서 금메달을 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그 성취감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이어가기 위해 이 반려견의 이름을 '리오'라고 지었습니다.

박인비에게 '리오'는 단순한 반려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자식처럼 사랑스러운 존재이자 긍정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도전과 성취'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지치거나 나태해지려 할 때 '리오'를 보면서, '리오'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떠올리게 되고 자부심과 긍지로 자신을 더 채찍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박인비의 리오 사랑은 상상 이상입니다. 국내에서 여행할 때도, 심지어 대회장에도 '리오'를 데려옵니다. 미국에서 투어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의 휴대전화로 '리오'와 매일 저녁 영상 통화를 하면서 하루의 피로감을 털어냅니다.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남편보다 '리오'를 더 사랑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박인비 선수와 리오

부상을 털고 다시 일어선 박인비의 최근 상승세는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4대 메이저대회 우승과 리우올림픽 금메달로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고 7개월간 대회에 나서지 않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은퇴 수순을 밟는 거라고 예단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HSBC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LPGA 투어 복귀 두 번째 대회 만에 우승하자 '골프여제의 귀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잠깐뿐이었습니다. 이후 부침을 거듭하던 그녀가 그 해 8월 브리티시여자오픈 이후 허리 통증 때문에 또 일찍 시즌을 접고 오랜 휴식에 들어가자, 다시는 그녀가 우승을 못 할 것처럼 수군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결혼도 했고 나이도 서른이 넘은 데다 결정적으로 더는 이룰 것이 없어서 동기 부여가 잘 안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박인비는 이런 세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달 파운더스컵에서 통산 19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최근 3개 대회에서는 모두 우승 경쟁을 펼치며(준우승 2회, 3위 1회) 2년 6개월 만에 다시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현재 상금과 올해의 선수, CME 글로브 포인트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라 있고 평균 타수는 2위입니다. 한 마디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녀가 제일 어려워하는 미국 서부의 울퉁불퉁한 '포아 애뉴아' 잔디의 그린에서 이룬 성과이기에 앞으로 기대가 더 큽니다.

포아 애뉴아(poa annua) 그린은 더운 날씨에, 씨가 날아와 그린 위로 싹이 자라 올라오기 때문에 공이 약하게 굴러가면 싹에 걸려 방향이 꺾이게 됩니다. 박인비가 긴 거리 퍼트보다 짧은 거리 퍼트에 더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입니다. 공을 똑바로 보내려고 짧은 퍼트를 강하게 치다 보니 성공률이 떨어진 것입니다.   

박인비는 이번 주에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LPGA 투어 메디힐 챔피언십에 출전해 시즌 2승이자 통산 20승에 다시 도전합니다. 대회 장소인 레이크 머세드 골프클럽 그린의 잔디는 다행히 포어 애뉴아와 밴트 그라스가 섞여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녀는 이번에도 일자형 퍼터 대신 원래 쓰던 반달 모양의 말렛형 퍼터를 들고 나옵니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연습라운드를 마치고 자식 같은 애견 '리오'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좋은 기운을 받았다고 합니다. 

박인비, 그녀는 LPGA 투어의 다른 정상급 선수들과 많이 다릅니다. 우선 스윙 자세부터 다르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외조를 받는 것도 다르고, 골프를 대하는 스타일도 다릅니다. 그녀는 샷이 안될 때는 될 때까지 연습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연습 대신 골프채를 놓고 충분한 휴식을 취합니다. 가족 여행을 가고 개인 생활을 즐기다 스스로 골프가 다시 하고 싶어지면 복귀 시점을 정해서 몸을 만들고 필드로 돌아오는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한번 마음먹은 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신기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딱 한 가지, 그녀가 목표로 밝힌 것 가운데 아직 이루지 못한 게 있습니다. 바로 국내 대회 우승입니다. 박인비는 지금까지 국내 대회 KLPGA 투어에 19번 나와서 준우승을 6차례나 했지만 우승컵은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지난해 공식 기자회견에서 "국내 대회 우승은 꼭 해내야 할 숙제"라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올 상반기에만 KLPGA 투어 2개 대회에 출전합니다.

5월 16일부터 20일까지 강원도 춘천 라데나 골프장에서 열리는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이 첫 번째 무대입니다. 지난해 결승까지 진출했다가 김자영에게 패해 준우승을 기록했던 바로 그 대회입니다. 그리고 6월에는 14일부터 나흘간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장에서 열리는 내셔널타이틀이 걸린 제32회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 나옵니다. 그녀가 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2005년 아마추어 때 이후 13년 만입니다. 박인비는 17세였던 2005년 이 대회에 처음 나와 공동 13위로 '베스트 아마추어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박인비는 또 지난달 파운더스컵에서 시즌 첫 우승을 신고한 뒤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첫 승이 빨리 나왔으니 이젠 메이저대회 우승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새 목표가 생기면 반드시 이루어내고야 마는 그녀가 올 시즌 남은 4개 메이저(US오픈, KPMG, 브리티시오픈, 에비앙) 가운데 어떤 대회를 '약속의 땅'으로 만들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영성 기자ys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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