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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우리집 막내가 결혼을 합니다.

조회수 2018. 4. 23. 10: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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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두리가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세찌가 여자친구가 있다고. 그런데 연예인이라고. 서로 알고 지낸지는 5-6년 됐는데 사귄 지는 일 년쯤 됐다며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정식으로 만나고 싶어 한다고.

워낙 철없는 막내라 결혼은 까마득한 훗날 얘기라 생각하고  아무 부담 없이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연예인이라니 멋을 잔뜩 부린 '배우'가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운동복을 입고 나타났다. 처음이라 그럴만한 사정이 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운동복차림이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넌 배우라면서 그렇게 운동복만 입고 다니냐?" 고 물었다. 우리집이야 말로 운동복 패션의 원조라서 그 스타일은 차고 넘치는데 하고 아쉬워 하자 아내가 옆에서 나한테 눈을 흘겼다. 하하하 진짜다. 나는 예쁜 멋쟁이 세찌 여자친구를 기대했다. 물론 이제는 포기했지만. 그러다 보니 이제는 가끔 촬영을 마치고 왔다며 화장을 하고 나타나면 도리어 이상하고 어색하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울산 문수축구장에 두리네 경기 보러 함께 갔다가, 사람들이 못 알아봐 안심하고 셀카를 찍었다. 하하하

티비에 나오는 서현이(집에서는 이렇게 부른다)를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내는 막상 티비에서 보면 이상할 것 같다고도 한다. 사실 나는 한채아라는 배우는 잘 몰랐다. 뉴스나 다큐를 주로 보는 아내도 한채아라는 배우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이 너를 알아보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화장 안 하고 이렇게 다니면 못 알아본다고 했다. 세찌랑 스키장에 가면서도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며 관광버스를 탄다고 했다. 그런 거 같았다. 함께 축구장에도 가고 영화 '1987'도 보러 가고 강아지 분양받으러 곡성에도 갔었는데, 운동장은 물론이고 식당에서도 휴게소에서도 사람들이 서현이를 선뜻 알아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내가 먼저 눈에 띄니까 흘려지나 가서 그런 것 같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막내가 다니는 조기축구회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빠 한번 모시고 오라고 조르다가 시간이 지나니까 "두리형 한 번 안 오냐?"고 하더니 이제는 “여자친구랑 한 번만 같이 오라!"는 민원이 훨씬 더  많다며 아빠랑 형 둘 다 서현이한테 밀렸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나 역시도  "인터넷에 차범근을 치면 왜 네가 나오냐?"고 물은 적이 있으니 서현이는 우리 가족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사는 것 같다. 세상의 관심을 받고 사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아내나 나는 걱정이 많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이른다. '관심을 받는 만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아무 대가도 이유도 없이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한다'고도 말해준다. 어린 마음에 자칫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두리에게는 물론이고 나 스스로에게도 늘 이르는 이 말을 서현이에게도 틈날 때마다 일러주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밭이 고약하지 않아서 나의 걱정을 잘 알아들어주니 고맙고 다행이다.

참, 진짜 좋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 집 지하 운동실에서 식구들이 모두 운동을 할 때는 웬만한 피트니스 못지않게 북적거리는데, 이제는 서현이가 가끔 나랑 같이 운동을 해줘서 그것도 참 좋다. 서현이는 내가 울산 호랑이 축구단 감독으로 있을 때,  여자선수 테스트에 뽑혀서 축구를 할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같이 운동을 해보면 제법 운동신경이 있기는 한 것 같다. 하하

지난해 가을 온 가족이 함께 모였다.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을 존경한다.

누구보다도 잘 살 거라고 믿었던 두리가 저렇게 되고 나니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서현이에게는 성실한 노동자로 한평생을 땀 흘리며 살아오신 부모님이 계신다. 존경스럽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이제 아이들의 결혼날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서현이도 우리 아들 세찌도 자신들이 흘린 땀의 대가만을 바라며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울산에 계신 서현이의 부모님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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