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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예의 MLB현장] 자존심 회복한 류현진, 칭찬 안 할 이유가 없다.

조미예 입력 2018.04.22. 18:58 수정 2018.04.2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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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야구 인생에 딱 두 번 있었어요”

지난해 9월 18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5회 2사 1, 2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습니다. 당시 류현진은 실점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 아웃 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5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이 더 던질 수 있다고 강하게 말했음에도 교체를 강행했고, 류현진은 속상한 마음을 쉽사리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사진=2017년 9월 18일. 로버츠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와 교체를 알렸으나, 류현진은 5이닝까지 책임지겠다며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결국 교체.

[2017/9/18 조미예의 MLB현장] '감기 투혼' 류현진, 이른 교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사진=2017년 9월 18일. 워싱턴 원정 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류현진이 5이닝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교체된 후, 더그아웃에서 속상해하는 모습.

며칠이 지난 후, 류현진은 “다음에 또 이런 상황에서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온다면 공을 들고 도망갈 거다. 절대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라며 뼈 있는 농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류현진은 추가 설명을 했습니다. “야구 인생에 정말 화가 났던 적이 두 번 있었다. 한화에서 뛸 때 딱 한 번 있었고, 그리고 이날 경기가 두 번째다”라고.

그때 그 교체는 류현진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린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2018년 4월 22일 류현진은 시작부터 각오가 남달랐습니다. 단단히 벼르고 나왔습니다. 상대 투수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지난해 아픔이 있었던 경기가 데자뷔 된 듯했습니다.

워밍업을 할 때부터 류현진은 심호흡을 수차례 했습니다. 그만큼 긴장되는 경기였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처음부터 긴장이 많이 됐다”라고 말하며, “워싱턴 내셔널스의 강타선과 메이저리그 우완 투수 중 정상급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의 대결도 긴장됐다”라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덕분에 조금 더 집중해서 던질 수 있었다면서 말이죠.

공부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선수가 있겠습니까만은, 요즘 류현진은 더 열심히 하는 모습입니다. 제구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좌우되지만, 타자를 공략하는 볼 배합이라든지 특징 등은 저 수첩 안에 답이 있습니다.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수첩입니다.

전날 클레이튼 커쇼도 4실점을 했을 만큼 만만치 않았던 워싱턴 타선이기에 더 부담됐던 경기. 자칫 정말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류현진은 자신의 투구를 믿고 정면 승부를 했습니다.

하퍼에겐 두 타석 연속 볼넷을 허용했습니다. 이를 두고 현지 기자가 고의사구로 내보내지 않은 이유를 묻자, 류현진은 “결과적으로 볼넷이 나왔지만, 고의사구로 바로 내보내기보단 승부하고 싶었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타자를 잡은 것을 좋게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퍼 볼넷 2개를 허용했다. 첫 번째는 어렵게 가려고 했었던 것 같고, 두 번째는 주자가 있어서 어렵게 됐다. 하지만 하퍼에게 볼넷 준 것보다 그다음 타자를 잡았기 때문에 괜찮다. 평소 볼넷을 가장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이런 볼넷은 괜찮았던 볼넷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습니다. 볼넷을 내주고 순간 얼굴을 찡그렸지만, 다음 타자를 잡은 류현진은 자신감이 넘쳐 흘렀습니다.

3경기 연속 8탈삼진 이상을 잡아내고, 승리를 모두 챙겼습니다. 그런데도 류현진은 마운드에서 ‘티 나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덤덤하게, 약하게 주먹 살짝 쥐며 기쁨을 표출했습니다.

그리고 더그아웃에 들어와서도 환하게 웃음을 보이진 않았지만,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보인 만큼 자신감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7이닝 동안 2피안타 3볼넷 8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는데 필요했던 공은 89개. 8회에 마운드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로버츠 감독이 고민을 좀 많이 했습니다. 보통 류현진이 더그아웃에 들어오면 감독이 곧바로 가서 악수를 청하는데, 로버츠 감독은 계속 벤치에 앉아 생각 중이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로버츠 감독은 “더 던지게 할 수도 있었지만, 완투는 못 할걸 알았기에 교체 시점을 고민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류현진은 잠시 안으로 들어간 상황. 이닝 교대 시간이 거의 다 끝나갈 때쯤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에게 다가가 교체를 전달했습니다. 그때 류현진에게 전한 말은 “1-0 타이트 한 상황이니 대타를 내는 게 좋을 것 같다. 불펜을 믿어보자”

류현진은 “알겠다”고 답했습니다.

이 질문이 나오지 않을 리가 없죠. 기자가 물었습니다. 8이닝까지 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으냐고. 그러자 류현진은 웃으며 답합니다. “투구 수를 조금 더 줄이고, 타순이 걸리지 않아야 한다. 점수를 주지 않으면 가능할 것 같다.”

어쨌든 지난해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해 크게 상심했던 류현진. 이날 경기에선 그 자존심을 회복함은 물론 팀을 승리를 이끈 일등 공신이 됐습니다.

로버츠 감독으로부터 교체 소식을 들은 류현진이 더그아웃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립니다. 7회말 키케 에르난데스가 솔로포를 터트린 것. 이와중에 시선은 역시 아내와 가족들을 향해 있습니다.

1점 앞서는 것보다 2점 앞서니 승리가 눈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모든 임무를 완수한 류현진은 더그아웃을 빠져나가면서 키케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땡큐”라고.

류현진은 “7회말 키케가 홈런 쳤을 때 오늘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 순간 기뻐서 환호했음을 알렸습니다.

류현진만큼이나 이슈가 되는 게 ‘가족’입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때론 열정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가족. 화목함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어 훈훈한 장면이 자주 보입니다.

류현진의 아내 배지현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쁨 그 이상이다. 그 힘든 재활 견뎌서 이런 모습 보인다는 게 정말 대단하고, 대견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강한’ 류현진을 만든 건 형과 아버지였습니다. 이렇게 잘 던진 날도 형과 아버지는 류현진에게 “동산고 4번 타자 출신이 안타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냐. 분발해라”라며 핀잔을 줬습니다. 진짜 속내는 투수로서는 흠잡을게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류현진도 웃으며 “허니컷 코치님도 칭찬했는데…”라며 “투수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타석에 오른 류현진이 상대 투수를 끝까지 괴롭힌 걸 칭찬했다면서 말이죠.

류현진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야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시즌 3승, ERA 1.99라는 ‘아주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