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기억은 '철거'되지 말았으면..

평창·강릉/이태동 기자 2018. 4. 2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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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올림픽·패럴림픽 폐막 한달
대회 시설물 해체 작업 한창.. 주민들 삶도 일상으로 돌아가
"올림픽 유산이라 할만한게 없어.. 관광객에게 뭘 보라 해야할지.."

봄기운이 완연한 18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은 분주했다. 근로자 70~80명이 경기장 좌석과 본부석 지붕 해체 작업에 한창이었다. 드릴을 단 포클레인이 내는 '딱딱딱' 소리, 대형 크레인이 움직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3만5000개 가변석 의자는 이미 스타디움과 완전히 분리돼 뭉텅이로 곳곳에 쌓여 있었다. 중앙 무대도 나무 바닥이 사라지고 격자 모양의 철근만 드러난 상태였다. 대관령 칼바람을 막아줬던 오각형 스타디움의 외부 방풍막(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은 이미 제거되고 없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평창올림픽·패럴림픽 축제가 끝난 지 한 달 만에 개·폐회식장은 거대한 철골 구조물만 남아 가시만 드러난 생선 같았다.

철거 중인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 -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난 지 한 달 만에 평창에선 올림픽 도시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8일 철거 중인 평창올림픽 스타디움 안팎에 철근이 드러난 모습. 사진 정면의 본부석만 3층짜리 기념관으로 남게 되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진다. 이 자리엔 원래 있었던 육상 트랙과 인조 잔디 축구장이 복원된다. /고운호 기자

올림픽 시상식이 열렸던 메달 플라자와 각종 경기장, 대형 텐트 등 시설물 근처는 어디나 공사 장비와 인부들로 시끌벅적했다.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이 열린 알펜시아 센터, 스키점프 센터도 방송용 간이 타워, 임시 관중석 등을 철거하고 있었다. 빙상 경기가 열린 강릉 각 경기장의 외벽 가림막, 천막과 장식물도 모두 제거됐다. 조직위 손창환 시설국장은 "18일까지 올림픽 공정률은 개·폐회식장이 93.5%, 나머지 시설은 9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올림픽 공정률은 개막 전 준비 때부터 폐막 후 철거, 복원하는 과정까지 다 합쳐서 100%로 계산한다. 개·폐회식장은 올림픽 개막 때 진행률이 91.4%였으니 철거팀의 올림픽은 대회가 폐막한 이후 시작한 셈이다. 개·폐회식장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건 6월 정도로 예상된다. 원래 있었던 육상 트랙·인조 잔디 축구장까지 복원되는 11월에 공정률이 100%에 도달하고 올림픽이 완전히 마무리된다.

주민들 삶은 올림픽 이전으로 돌아갔다. 평창 횡계 주민 심지한(24)씨는 "올림픽 때와 비교하면 사람이 크게 줄어들긴 했는데, 올림픽 전 비수기와 비슷한 정도다. 이게 평소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18일 평창 횡계 시내에선 '비수기'란 걸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인도 위를 걷는 사람보다 도로를 오가는 공사용 대형 트럭 수가 더 많았다. 올림픽 때 없어서 못 탔던 택시는 정류장에 4~5대씩 늘어서 대기 중이었다. 버스 정류장 벤치의 수호랑 인형, 영어가 병기된 간판 등이 아니면 한 달 전 올림픽이 열렸던 장소라고 느끼기 어려웠다.

올림픽 때 북적이던 평창 횡계는 평소의 한적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고운호 기자

'올림픽 개최 도시'란 자부심을 가졌던 주민들은 한 달이 지나면서 불안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김건호 대관령면상인연합회장은 "올림픽을 개최했는데 전과 다른 게 없다. 올림픽 도시라고 하지만 올림픽 유산으로 남은 게 하나도 없다"며 "관광객들이 오면 뭘 보라고 해야 하나. 올림픽 이후를 위한 대비가 부족했다고 느끼는 주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철거되는 스타디움의 본부석이 3층짜리 기념관으로 남지만 주민들은 공허함을 느끼는 듯했다.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란 이유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종종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실망한 채 횡계를 떠난다고 한다. 토리노(2006)·소치(2014) 올림픽 개·폐회식장은 리모델링해 축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은 사후 활용도가 낮고 비용이 많이 드는 등 여러 면에서 철거가 최선"이라고 말했다.

철거 대신 보존이 결정된 올림픽 시설물도 대부분 구체적인 사후 활용 방안과 운영 주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각종 국제 대회와 콘퍼런스 유치 등 올림픽 도시로서의 브랜드를 활용하는 방안도 계획만 무성할 뿐이다. 강릉과 정선도 그렇다. 평창올림픽 때 스키 활강 경기용으로 건설된 정선 알파인 경기장(가리왕산)은 복원 계획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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