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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트라웃의 짧게 잡기 신공도 소용없었다

조회수 2018. 3. 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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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2013년은 추신수에게 잊을 수 없는 시즌이었다. 몸에 맞는 볼이 무려 26개였다. 리그에서 단연 1위였다. 하다못해 포스트시즌에서도 1개를 더 맞았다. 그 덕분일까? 그 겨울에 엄청난 딜을 성사시켰다. 레인저스가 1억 3,000만 달러짜리 계약서를 내민 것이다. 몸 맞는 공 덕택에 탁월한 출루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본인은 다른 요인 하나를 더 꼽았다.

“그때는 대부분 1번 타자로 나갔죠. 출루가 필요한 타순이잖아요. 문득 미국 처음 갔을 때 기억이 떠오르는 거예요. 시애틀 시절이죠.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꼭 지켜야 하는 룰이 하나 있었어요. 투 스트라이크가 되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타격 자세였어요. 배트를 짧게 잡고, 양 발도 넓게 벌려야해요. 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기 위해서였죠. 덕분에 2013년에는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적응력이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불안불안하던 시범경기 끝에 나온 눈부신 호투

내색은 못해도, 사실 불안불안했다. 아무리 시범 경기지만 번번이 죽을 쒔기 때문이다. 나가면 배팅볼이었다. ‘진짜 저래도 괜찮은 건가?’ 그런 의구심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물론 감독이나 코치는 ‘걱정말라’며 립서비스를 계속했다. 하지만 새겨 들어야한다. ‘개막 로테이션 확정’이라는 말은 100% 믿기 어렵다.

당사자의 태연함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라고? 그래서 큰 걱정 안해도 된다고? 그런데 커쇼랑 마에다는 왜 그렇게 열심히 던지지? 그들이라고 새로 테스트하고 싶은 게 없겠나? (커쇼 9.2이닝 무실점, 마에다 12.1이닝 3실점)

어쨌든 로테이션의 맨 끄트머리, 5선발 아닌가. 여차하면 언제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자리다. 왼손으로 가득 채워진 구성도 불안 요소다. 싱싱한 젊은 피들이 마이너리그에서 호시탐탐 중이다. 조그만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올 기세다. 그렇다고 불펜으로 갈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뒤가 따가운 상황이었다. 개막 일주일 앞둔 경기에서 드디어 터졌다. 5이닝 1실점, 부끄럽던 ERA는 14.29→8.44로 꽤 진정됐다.

무엇보다 반짝이는 장면이 있었다. ML 최고 타자인 마이크 트라웃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순간이었다. 카운트 0-2에서 3구째 커브로 헛스윙을 끌어냈다. ‘Wow, Aawesome, Tremendous…’. 사방에서 영어로 된 감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mlb.tv 화면

하필이면 트라웃의 영험한 능력에 대한 찬양이 나온 지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다. 불과 하루 전이었다. 천사들의 동네를 커버하는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의 보도였다. ‘마이크 트라웃이 이번 시범경기 들어 벌써 44타석째 삼진 없는 경기를 펼치고 있다. 올해 신기록이다. 그 다음은 캔자스시티의 초청선수 움베르토 아르테아가인데, 그는 겨우 28타석이다. 2등과도 한참 차이나는 뛰어난 기록이다.’

정작 기록 파괴의 가해자(?)는 아무 생각 없었다. 이닝을 마친 뒤 키케 (에르난데스)가 말해줘서 알았다고 했다. 당연히 기분은 남달랐을 것이다. <조미예의 MLB현장>은 이렇게 묘사했다. ‘본인도 흡족했는지, 기자들의 공식 질문이 끝나고 카메라가 꺼지자 류현진은 씨~익 웃으며 한 마디 합니다. “커브 이대로만 던지면 끝나! 다 잡을 수 있어~”라고.’

대단한 타자를 KO시켰다. 캠프 내내 갈고 다듬었던 공이었기에 의미도 크다. 얼마든 지 여흥을 즐겨도 괜찮다. 따라서 한발짝 더 들어가는 심화 학습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삼진의 속사정에 대해서 말이다.

앞에 거론했던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의 찬양 중에는 주인공의 코멘트도 들어있다.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특별한 것은 없다. 그냥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싸우려고 노력할 뿐이다. 인플레이 타구를 위해 애쓰는 것 뿐이다.”

하지만 천만에. 진실이 아니다. 뭔가 감추는 것이 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싸우기 위해서 구사하는 특별한 전략이 숨어있다.

2구째, 가운데 몰린 실투가 파울이 됐다

문제의 첫번째 타석을 재구성해보자. 1사 후, 자신만만하게 타석에 들어온다. 초구는 먼 쪽의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구심의 손이 올라갔다. 타자는 잠시 빠져나와 뭔가 생각에 잠긴다.

2구째. 여기가 중요하다. 초구와 같은 코스를 의도한 것 같다. 하지만 딜리버리는 완벽하지 못했다. 실투성 직구가 거의 한가운데로 몰렸다. ML 최고타자가 놓칠 리 없다. 반사적으로 배트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반 포인트 쯤 뒤에서 맞았다. 흔히 ‘타이밍이 늦었다, 또는 배트가 밀렸다’라고 표현하는 식이 됐다. 뒤쪽으로 가는 파울이 됐다.

이건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무슨 뜻이냐. 타자의 컨디션이 정상적이라고 상정하면, 투수의 공이 그만큼 좋다는 반증이다. 생각한 것보다 빠르고 위력적이기 때문에 타이밍이 밀린 것이다. 카운트는 0-2가 됐다. 타자에게는 비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공격자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럴 때는 타자의 성향에 따라 반응이 나뉜다.

첫째는 그냥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본래 스윙과 폼을 그대로 유지한다. 위축되면 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반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반면 두번째는 스스로 스윙이나 폼을 조정한다. 배트를 조금 짧게 잡거나, 스탠스ㆍ스윙 폭을 줄여서 ‘현실’에 맞추려 한다.

후자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양권 선수들이 많이 취하는 방식이다. 반면 메이저리거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힘에는 힘으로 대응하겠다는 정신이다.

흥미로운 것은 트라웃이다. 엄청난 덩치(188.9cm, 106kg)를 가졌지만, 지극히 전략적이다. 어제(한국시간 23일)도 마찬가지다. 두번째 스트라이크를 먹은 뒤 타석에서 빠져나간다. 그리고 몇 번의 빈 스윙을 돌리더니 배트를 고쳐잡았다. 손가락 한 마디 쯤 짧게 올려쥔 것이다.

류현진의 가운데 몰린 실투가 파울이 되고 있다. 그만큼 위력이 좋았다는 반증이다.           mlb.tv 화면 캡처

투 스트라이크 이후 트라웃의 변화

메이저리그에서 투 스트라이크 이후 대응력을 꼽으라면 조이 보토(신시내티 레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불리한 볼카운트가 되면 으레 ‘짧게 잡기’ 타법으로 전환한다. 그리고는 투수가 아무리 어려운 변화구를 떨어트려도 참아내고, 걷어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확한 인플레이 타구를 생산하는 신공을 발휘한다. 용큐놀이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러면서도 파워가 실린 타구를 날린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투수들의 원흉이 되기 충분했다. 그런데 어느날 중대한 변신을 시도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만 시도하던 ‘짧게 잡기’를 모든 볼 카운트에 적용하겠다는 결심이었다. “자꾸 하다보니까, 짧게 잡고도 멀리 칠 수 있겠더라구.” 그 소리에 투수들은 질색했다. “아니, 자기가 무슨 배리 본즈냐고. 짧게 잡고 홈런까지 치겠다니. 우리는 다 죽으라는 얘기잖아.”

2014년 시즌이 끝났다. 23세의 마이크 트라웃은 드디어 MVP에 선정됐다. 하지만 무서울 게 없었던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그 해에 무려 184개로 폭증한 삼진 숫자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130개 언저리였다. 그러던 게 한꺼번에 50개 이상 늘어난 것이다. 상대의 현미경 분석으로 하이 패스트볼에 대한 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필요했다. 조이 보토식의 개선책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184개였던 삼진 숫자는 158개(2015년)→137개(2016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 해에는 90개 밖에 당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시범 경기에서 44타석 무삼진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왼쪽이 길게 잡는 평소 그립. 오른쪽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 짧아진 모습.      mlb.tv 화면 캡처

물론 한 번 잘 던진 게 대수는 아니다. 그렇다고 고회전 커브를 마스터했다고 속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의미있는 진전을 이룬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강조돼야 할 부분은 자신감이다. 최고의 타자를 잡아냈다. 그것도 투 스트라이크 이후를 철저히 대비하고 있던 ‘신공’을 무력화시키며 얻은 특별함이었다.

따라서 다저스 5선발의 어제 승전보에는 몇가지 추가돼야 할 팩트들이 있다. ▶ 몰리는 실투였지만 타이밍이 늦을 정도로 위력있는 직구의 힘 ▶ 삼진을 피하려 짧게 잡은 트라웃도 어쩔 수 없는 커브의 날카로운 브레이크가 그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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