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류현진의 담배와 오타니의 크레페

조회수 2018. 3. 2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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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드디어 안타가 나왔다. 무려 18타석 만이다. 오타니 쇼헤이가 3호 안타를 기록했다. 21일(한국시간) 애리조나 템피에서 열린 D백스전에서 친 중전안타였다. 이로써 시범경기 통산 28타수 3안타가 됐다. 비로서 ‘8푼이’에서 탈출하며 1할대(.107)로 올라갔다.

좌완 투수를 상대로 친 것이어서 더 가치가 있다고 포장됐다. 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도 나왔다. 오히려 상대 투수(코린 포체)가 마이너리그 싱글A 출신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그럴수록 천사들의 변론은 처절하다.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이날 타격을 보더니 화색이 돌았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좌타자는 가끔 좌투수를 상대하면서 좋아질 때가 있다.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차분하게 공을 보면서, 좋은 스윙을 했다.”

캠프에 임시 코치로 참가했던 데이빗 엑스타인도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칭찬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도류가) 야구의 정석 아닌가. 그는 후대의 선구자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기대치는 이미 바닥까지 추락했다. 타격에서는 물론 투구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주류를 이룬다. 야구 좀 안다는 사람들은 현미경과 돋보기, 핀셋, 줄자, 모든 것을 동원해 해부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왼쪽 팔꿈치가 벌어졌다 ▶상체가 일찍 열린다 ▶하체가 따로 논다 ▶계속된 몸쪽 승부에 자기 스윙을 잃었다 ▶딱딱한 마운드가 문제다 ▶ML 공인구에 적응하지 못한다 ▶애리조나의 건조한 날씨에 애를 먹고 있다 ▶팔 스윙이 현저히 무뎌졌다. 기타 원인 수두룩.

다 맞는 말이다. 조목조목 핵심을 짚었으리라. 전문가들이 허투루 얘기할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론적이고, 복잡한 건 골치 아프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뭐가 예전하고 다르다는 건 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구라다>는 대신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도대체 왜 저 지경이냐’는 의문은 ‘본래 저 정도 선수는 아니었는데’라는 가설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평생 처음 마주한 정서 - ‘반감(反感)’

우리도 경험이 있다. 그와 상대해봐서 어느 수준인 지 겪어봤다. 물론 리그의 레벨 차이라는 주장도 옳다. 메이저리그는 분명 KBO나 NPB보다 위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거품을 감안해도 그렇다. 정상급 선수라면 저렇게 처참할 정도로 격차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시작은 작은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틈은 점차 벌어졌고, 결국 전반적인 붕괴가 일어났다. 그건 기술이나 체력적인 요소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멘탈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자신감 상실과 정서적 혼란이 급격한 망가짐의 원인일 것이다. 그건 바로 ‘반감(反感)’이라는 낯선 정서와의 마주침이다. 그가 평생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반감’은 몇가지 키워드와 함께 등장했다. 최초는 ‘거대한 시간낭비’라는 워딩이었다. 커쇼는 그와 첫 대결에서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지난 겨울에 있었던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그렇게 표현했다. 사실 유포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오타니를 겨냥한 말도 아니었다. 그냥 아메리칸 리그를 생각하고 있으면서, 굳이 다저스 같은 NL팀을 만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커쇼의 말 중에는 ‘시간낭비’라는 부분만 부각됐다. 마치 실력도 없는 선수를 스카우트 하려 괜한 공을 들였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그게 여론의 저변에 깔려있던 언짢음을 폭발시켰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야? 뭔데 구단들을 상대로 설명해라/마라야?’

이후로 다양한 단어들이 유통됐다. ‘고등학생 수준’ ‘이도류가 아닌 이류’ ‘팀동료 푸홀스에 대한 민폐’ 같은 말들이다. 급기야 “메이저리그는 무슨…. 개막은 싱글 A에서 맞는 게 적당할 것 같다”는 어느 스카우트의 제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거대한 프로젝트처럼 보호받던 이도류의 주인공

굳이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이라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또는 동양 야구에 대한 폄하라는 주장도 적절치 않다. 그냥 배타적일 뿐이다. 그곳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출신들이 어울려 있지만, 처음 본 대상에게 선뜻 관대하지는 않다. 특히 상대가 잘 나가는 존재라면 더 그럴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늘 있던 일이다. 이치로조차 마찬가지였다. 첫 캠프 때는 ‘땅볼만 치는 타자’라는 업신여김이 따라다녔다.

그런데 왜 유독 24살짜리는 저렇게 혹독한 과정을 거치며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선수로서의 성장 과정과 개인 캐릭터와 연관이 있는 지 살펴봐야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지극히 엘리트 코스만 밟은 야구 선수다. 선수 출신 아버지의 지도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을 시작했다. 고교 1년 때부터 4번타자였다. 160㎞를 던진 3학년 때는 이미 웬만한 프로선수 못지않은 전국구 스타였다. 만다라트 계획표에 ‘8개 구단으로부터 1번 지명을 받을 것’이라고 적어놓은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뛰어난 재목이었다.

프로에 가서도 마찬가지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홋카이도로 향했다. 이도류란 입단 조건이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그리고 숙명이 됐다. 두 자루의 칼은 2배의 찬사를 얻게 했다. 그러나 책임과 비난도 2배로 따라다니는 게 인생의 섭리다.

그런 부담을 이기기 위해 오로지 야구 밖에 없는 사생활이 계속 됐다. (적어도 외부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졌다.) 프로의 길을 걸으면서 숙소 생활을 고집했다. 신입 때야 그렇다 쳐도, MVP(2016년)와 대표팀 에이스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2군 선수들과 함께 먹고/자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외출, 외박? 기껏해야 근처 편의점에 가는 정도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구리야마 감독에게 허락을 받았다. 그러지 말라는 데도 한사코 불편함을 감수했다. 자동차는 물론 운전면허도 따지 않았다. MVP 부상으로 받은 중형차도 시큰둥했다. “난 택시면 된다. 주변에 필요한 사람에게 주겠다.” 스스로 선언한 무취미도 화제였다. “난 취미가 없다. 방에서 독서나 DVD 관람이 기껏이다.”

담배 사건 때의 반응 “내가 뭐 죄지었어요?”

2012년 겨울에도 동양인 투수 한 명 때문에 미국이 떠들썩했다. 거액의 포스팅 비용을 대전의 소속팀에게 안겨주며 LA 이주가 결정됐다.

첫번째 캠프 초반이었다. 동료 투수들과 장거리 달리기에서 맨 뒤에 처졌다. 헐떡이는 그 모습에 미국 기자 한 명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켄 거닉이라는 그쪽 업계에서 이름깨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짤막한 SNS 한 줄을 날렸다. ‘햄버거를 끊으며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담배를 끊는 것도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난리가 났다. 운동 선수가 무슨 담배냐며 댓글창이 터져나갔다. 본인이 모를 리 없다. 반응이 특별했다. 현장에 있던 한국 취재진들을 향해 이렇게 반문했다. “내가 뭐 죄 지었어요? 신경 안 써요.” 그러면서 한 마디를 보탰다. “후배 안승민한테 카톡이 왔더라구요. 담배 좀 끊으라고.” 오히려 웃음으로 넘겨버렸다.

물론 얘기의 본질은 담배를 피느냐, 끊느냐가 아니다. 또 자기 관리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될 수 없다. 반감에 대해 어떻게, 얼마나 맞서며 자신의 멘탈을 지키느냐 하는 부분이다.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오타니가 술, 담배를 즐긴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크레페를 꼽는다. 또는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기호품이다. 스트레스는 달달한 것으로 푼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크레페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다.

지난 해 일본에서 연봉은 2.7억엔(약 28억원)이었다. 그 중 자기가 쓰는 돈은 한 달에 10만엔(약 100만원) 남짓이다. 그나마도 아버지에게 용돈으로 받는다. 주변에서는 왜 그러고 사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돈이야 뭐…. 야구를 즐겁게 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지.” 그런데 걱정이다. 지금도 여전히 야구가 그렇게 즐거운 지 말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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