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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여제' 세리나가 491위? 애 낳고 왔다고 랭킹포인트 다 깠다

박소영 입력 2018.03.21. 11:42 수정 2018.03.2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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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대회에서 23회나 우승한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37·미국)는 19일 발표한 여자프로테니스(WTA) 세계랭킹에서 491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5월 1위였던 윌리엄스는 10개월 만에 이제 막 프로 무대에 데뷔한 선수들보다 낮은 순위까지 밀려났다. WTA 세계랭킹은 최근 1년 동안 출전한 대회에서 획득한 랭킹 포인트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다. 윌리엄스는 지난 1월 호주오픈 이후 임신과 출산으로 1년 넘게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 사이 랭킹 포인트가 소멸되면서 랭킹도 곤두박질쳤다.

BNP 파리바오픈에 출전한 세리나 윌리엄스. [AP=연합뉴스]
그래서 윌리엄스는 지난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언 웰스에서 개막한 BNP 파리바오픈에서 시드(우수한 선수끼리 맞붙지 않도록 랭킹 순위대로 부여)를 받지 못했다. 1~32시드를 선수들이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했는데, 윌리엄스는 그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현재 세계 1위 시모나 할레프(27·루마니아)는 지난 14일 BBC와 인터뷰에서 "윌리엄스가 코트를 잠시 떠나기 전의 랭킹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만약 윌리엄스가 계속해서 대회에 출전했다면 줄곧 1위를 지켜 톱시드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할레프를 지도하는 대런 카힐 코치도 "출산한 엄마 선수들이 경력을 다시 '0'에서 시작하는 건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윌리엄스는 1회전에서 자리나 디아스(25·카자흐스탄·56위), 2회전에서 키키 베르텐스(27·네덜란드·29위)를 차례로 제압했지만 3회전에선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38·미국·8위)에게 0-2로 졌다. 윌리엄스는 시드 없이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비교적 순위가 높은 선수들과 연달아 맞대결했다. 출산으로 인해 랭킹이 확 떨어진 선수는 윌리엄스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1위 빅토리아 아자렌카(29·벨로루시)도 2016년 출산으로 코트를 떠난 사이 900위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7월 복귀해 현재 186위까지 회복했다.

세리나 윌리엄스(오른쪽)와 딸 알렉시스 올림피아. [사진 윌리엄스 SNS]
출산 후에 복귀하는 선수가 늘어나면서 여자 테니스계에선 '불이익 없는 출산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세리나 윌리엄스가 엄마가 되면서 벌을 받았다"며 "부상으로 공백이 있었던 선수들과 출산으로 인한 공백은 다르다. WTA는 출산한 선수들을 위한 새 랭킹 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WTA도 이런 의견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출산한 선수들이 코트에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매우 지지한다. 출산 선수들을 고려해 내년에 랭킹 규정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했다.

여자 선수들에게 복귀가 보장되는 출산휴가, 육아휴직은 꿈같은 이야기다. 보통 여자 선수들은 임신을 하면 은퇴하는 게 대부분이다. 임신과 출산 이후 원래의 몸 상태로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결혼을 했어도 은퇴할 때까지 임신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1980~90년대 한국 여자 배구를 이끈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28세에 결혼하면서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박 감독은 "당시엔 결혼하면 은퇴하는 게 당연했다"고 전했다. 1990~2000년대 초반 여자농구를 호령했던 전주원(46) 우리은행 코치는 지난 2004년 출산으로 불가피하게 은퇴를 선택했다. 당시 소속팀이었던 신한은행이 2005년 꼴찌까지 처지면서 다시 코트에 돌아왔는데, 이는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남현희. [중앙포토]
하지만 최근에는 '임신=은퇴' 공식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임신과 출산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37·성남시청)는 2013년 딸을 낳은 뒤 4개월 만에 복귀해 하루에 8~9시간씩 훈련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금1·동1), 2016년 리우올림픽에 출전했다. IOC 인증 스포츠 전문의 이상훈 CM병원장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체형 변화가 이뤄지면서 몸이 쇠약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자 선수들에겐 임신과 출산은 큰 장벽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재활 기술이 발달하면서 출산 이후에도 운동을 계속하는 선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2014년 GS칼텍스에서 뛰었던 정대영이 딸과 함께 우승을 만끽하고 있다. [중앙포토]
팀에서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여자 프로배구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37)은 지난 2009년 GS칼텍스에서 뛸 때 한국 최초로 출산 휴가를 얻어 한 시즌(2009~10년)을 통째로 쉬었다. 김용희 GS칼텍스 사무국장은 "당시 정대영은 블로킹 2위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다. 출산 후에도 관리를 잘하면 이전처럼 활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유급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보장해줬다"고 했다.

서울시청 산하 직장운동경기부는 근로기준법에 의거해 90일의 출산휴가와 최대 1년 6개월의 육아휴직을 유급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해 출산과 육아로 7~8개월 정도 쉬고 복귀한 사례가 종종 있다. 서울시청 산하 직장운동경기부에는 양궁·사격·펜싱·태권도·축구 등 22개 종목의 실업팀이 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