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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바퀴 돌자 외국 코치들 "신의현 왜 저러냐.." 죽을 각오의 금빛 질주

평창=이경원 기자 2018. 3. 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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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현 "'5초 차이 난다'고 해서 내가 5초 지는 줄 알았다"
금메달 기자회견에 나와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신의현.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첫 바퀴를 돈 이후, 코치들이 다들 '신의현이 왜 저러냐(What's wrong with Mr. Shin)'고 했다. 내가 보니 눈이 이만큼 튀어 나와 집중한 모습이었다. 그의 움직임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전혀 없었다.”

카스파 위르츠 한국 장애인 노르딕스키 감독은 17일 신의현의 금빛 질주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미국,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코치들과 함께 평창패럴림픽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7.5㎞ 좌식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의현은 전에 없이 더욱 집중한 모습이었고, 단 하나의 허튼 동작이 없었다고 했다. 2바퀴째부터는 상위그룹 선수들이 신의현의 기록을 위협하며 각축전을 벌였다. 신의현은 기어코 선두를 허용하지 않았다.

“‘5초 차이가 난다’고 해서 제가 5초 뒤지는 줄 알았습니다. 5초를 따라잡으려고 주행을 열심히 했습니다.” 코칭스태프와 관중은 환호하고 있었지만, 정작 신의현은 자신이 선두인 사실을 골인하는 순간까지 몰랐다. 신의현은 “들어올 때에도 1위인 줄 몰랐고, 2위인 줄 알고 들어왔다”며 “그런데 전광판을 보니 맨 위에 태극기가 있더라”고 말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신의현에게 배동현 선수단장이 달려왔다. 신의현이 보니 배 단장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노르딕스키에 입문한 지 채 3년이 지나기 전에 패럴림픽 금메달을 따낸 신의현의 성과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카스파 감독은 “신의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스키 위에서 보냈는지, 얼마나 많이 훈련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번 성공의 비결은 그의 가슴에서 나온 열정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감독의 말대로 신의현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러시아에 대회를 나가 잘 하는 선수들과 붙어 보니 ‘쉽지 않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신의현은 “그래서 잘 하는 선수들처럼 앉아 보고 연구하고 따라하려 했다”고 말했다. 연구는 지옥훈련과 함께 계속됐다. 완주를 거듭하는 그에게 일각에서는 체력의 우려를 표했지만, 정작 신의현은 끄떡없었다. 신의현은 “하루에도 5시간씩 50~60㎞를 타곤 했다”며 “이틀에 한 번 있는 시합은 충분히 체력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력이 진실했던 만큼 승부욕은 커졌다. 신의현은 바이애슬론에서 사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아깝게 메달권에 계속 들지 못했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가 이내 ‘올림픽 초보에게는 메달이 힘들구나’ 하는 체념이 찾아왔다. 금메달의 역사를 쓰는 전날에도 마음고생은 계속된 모양이다. 신의현은 “어제 좀 이를 갈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 크로스컨트리에서는 못 하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더니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했다. 이제는 베이징패럴림픽이 새로운 목표다.

신의현은 가족을 돌아봤다. 어머니 이회갑씨를 향해서는 “제가 사고가 나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이렇게 금메달을 땄다”며 “어머니께서 여생을 행복하게 사시도록 하고, 저도 이제 열심히 효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아내 김희선씨에 대해서는 “응원을 열심히 해 주고 부담 안 주려고 하고, 맛있는 것 많이 해 주려 하고, 제가 여자 복은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틈틈이 도운 농사일이 기초체력을 이뤘다고 유쾌하게 설명했다. “저희가 밤 농사를 지어요. 한 푸대에 40㎏거든요. 많이 쌓을 때에는 몇백 짝씩 쌓아서, 허리힘이 길러진 것 같고요….” 신의현은 “예전에는 칡즙 장사도 했는데, 서너시간이면 200~300㎏씩 캤다”고도 말했다. 그는 “괭이질, 삽질을 하면서 당기는 힘이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기자회견 장내에 그 웃음이 퍼졌다.

신의현은 장애인들에 대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그답게 투박하지만 진솔한 메시지였다. 그는 “일단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며 “저는 ‘팔자’려니 생각하고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라 생각하시고 빨리 사회에 나오시면,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파이팅 하자고요.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신의현을 향해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던 배 단장은 “포상금을 줄 상황이 생겨 기쁘고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정작 신의현은 “포상금은 생각도 안 하고 경기에만 집중했다”며 “애기엄마(아내)와 의논해 좋은 데 써야겠다”고 말했다. 한국 패럴림픽 사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얼떨떨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신의현은 “막상 금메달을 따게 되니 실감이 안 난다. 목에 걸어놔야 할 것 같다”며 기분 좋게 웃었다.

평창=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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