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는 사랑을 싣고.. 이종경-이지훈의 패럴림픽 도전

김효경 2018. 3. 16. 0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일 오후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훈련에서 아이스하키 패럴림픽 대표팀 이종경이 슛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애인 아이스하키는 지난해까지 '아이스 슬레지하키'로 불렸다. 비장애인들은 스케이트를 신지만 장애인 선수들은 두 개의 날이 달린 썰매를 타고 경기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의 썰매엔 선수들은 물론 가족들의 사랑과 꿈도 함께 실려 있다.

공격수 이종경(45·강원도청)은 2002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농구, 수영, 요트, 조정 등 스포츠를 좋아했던 그는 언제나처럼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대천으로 갔다. 하지만 추락 사고로 그는 더 이상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활달한 성격의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장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고 후 2년 만에 장애를 얻기 전처럼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스하키였다. 이종경은 "시작하자마자 흠뻑 빠져들었다. 남들은 거칠고 힘들다고 하지만 썰매를 타고 얼음을 누비면 내 세상같았다"고 했다. 대표팀 에이스인 '빙판의 메시' 정승환에게 하키를 권한 것도 이종경이었다. 그는 "썰매가 철제인데다 얼음을 찍는 픽이 날카로워 자주 다친다. 그런데 부상이야말로 하키의 매력"이라고 했다.

하키만큼 그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람도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 최민희(31)씨였다. 두 사람은 2012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교제를 시작했다. 하키 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감독 김경만)'에서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가감없이 소개됐다. 이종경은 "영화 개봉이 늦어지면서 걱정했다. 헤어질 수도 있으니까… 농담 삼아 '우리는 영화 나올 때까지 헤어지면 안 된다'고도 했다"고 웃었다. 영화는 6년 가까이 지난 2018 평창패럴림픽 개막을 앞두고서야 어렵게 스크린를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다행히도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6년 간의 열애 끝에 올해 10월 결혼할 예정이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이종경은 "처음엔 아버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장애도 장애지만 14살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라도 장애인 사윗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종경과 최씨는 꾸준히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리고 6년 동안 이어온 사랑의 결실을 드디어 맺게 됐다. 올해 10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종경은 "이제는 장인 어른이 나를 자랑스러워하신다. 패럴림픽에도 와서 열렬히 응원해주셨다"며 "패럴림픽 메달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웃었다.

4일 오후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훈련에서 아이스하키 패럴림픽 대표팀 이지훈이 슛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팀의 젊은 피인 이지훈(30)은 새 신랑이다. 이지훈도 비장애인인 황선혜(31)씨와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두 사람이 만난 건 결혼하기 꼭 1년 전인 2016년 10월이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비활동기간에 상체 근력을 키우려고 조정을 시작했는데 당시 코치가 황씨였다. 겨우 일주일 동안의 훈련이었지만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겼다. 이지훈은 "무조건 만나고 싶었다. '코치님이 만나줄 때까지 따라다니겠다'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웃었다. 황씨는 이지훈의 고백을 받고 다음날 전화했고, 그렇게 연인이 된 뒤 부부의 연까지 맺었다.

이지훈 역시 이종경처럼 중도장애를 입었다. 말년병장인 2010년 11월, 장갑차 조종수였던 이지훈은 마지막 훈련에서 정비를 하던 도중 동료의 실수로 장갑차에 깔렸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패혈증 때문에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 한 살 때였다. 요리사를 꿈꾸던 청년은 '국가유공자'가 되어 전역했다. 우울증 치료까지 받으며 버티던 그는 다른 중도장애인처럼 생을 끊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그에게 아이스하키가 다가왔다. "가슴 떨리는 일이 하고 싶었다"던 그는 겨우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운좋게 평창패럴림픽 최종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결혼한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 이지훈-황선혜 부부 [이지훈 SNS]
하지만 그렇게도 원했던 패럴림픽 탓에 두 사람의 신혼 생활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어졌다. 대표팀이 계속해서 해외전지 훈련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이지훈은 "집안 사정도 있어 결혼을 서두르게 됐다. 신혼여행도 못 가서 패럴림픽 이후에 하와이에 가기로 했다. 그 점이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그래도 아내가 운동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잘 이해해준다. 꼭 좋은 성적을 거둬서 아내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이지훈은 "아내에게 '정말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종경과 이지훈은 17일 낮 12시 열리는 동메달결정전에서 마지막 메달 도전에 나선다. 상대는 이탈리아다. 이종경은 "이탈리아 선수들과 그동안 여러 차례 맞붙었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안다. 4년 전 소치 대회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선 졌지만 최근 캐나다 챌린지 대회에서 두 번이나 이겼다. 작년의 빚을 꼭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