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매는 사랑을 싣고.. 이종경-이지훈의 패럴림픽 도전
공격수 이종경(45·강원도청)은 2002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농구, 수영, 요트, 조정 등 스포츠를 좋아했던 그는 언제나처럼 패러글라이딩을 타러 대천으로 갔다. 하지만 추락 사고로 그는 더 이상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됐다. 활달한 성격의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장애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고 후 2년 만에 장애를 얻기 전처럼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아이스하키였다. 이종경은 "시작하자마자 흠뻑 빠져들었다. 남들은 거칠고 힘들다고 하지만 썰매를 타고 얼음을 누비면 내 세상같았다"고 했다. 대표팀 에이스인 '빙판의 메시' 정승환에게 하키를 권한 것도 이종경이었다. 그는 "썰매가 철제인데다 얼음을 찍는 픽이 날카로워 자주 다친다. 그런데 부상이야말로 하키의 매력"이라고 했다.
하키만큼 그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람도 있었다. 바로 여자친구 최민희(31)씨였다. 두 사람은 2012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교제를 시작했다. 하키 대표팀을 소재로 한 영화 '우리는 썰매를 탄다(감독 김경만)'에서도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가감없이 소개됐다. 이종경은 "영화 개봉이 늦어지면서 걱정했다. 헤어질 수도 있으니까… 농담 삼아 '우리는 영화 나올 때까지 헤어지면 안 된다'고도 했다"고 웃었다. 영화는 6년 가까이 지난 2018 평창패럴림픽 개막을 앞두고서야 어렵게 스크린를 통해 볼 수 있게 됐다. 다행히도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6년 간의 열애 끝에 올해 10월 결혼할 예정이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이종경은 "처음엔 아버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장애도 장애지만 14살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라도 장애인 사윗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종경과 최씨는 꾸준히 부모님을 설득했다. 그리고 6년 동안 이어온 사랑의 결실을 드디어 맺게 됐다. 올해 10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종경은 "이제는 장인 어른이 나를 자랑스러워하신다. 패럴림픽에도 와서 열렬히 응원해주셨다"며 "패럴림픽 메달을 여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웃었다.
이지훈 역시 이종경처럼 중도장애를 입었다. 말년병장인 2010년 11월, 장갑차 조종수였던 이지훈은 마지막 훈련에서 정비를 하던 도중 동료의 실수로 장갑차에 깔렸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패혈증 때문에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 한 살 때였다. 요리사를 꿈꾸던 청년은 '국가유공자'가 되어 전역했다. 우울증 치료까지 받으며 버티던 그는 다른 중도장애인처럼 생을 끊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그에게 아이스하키가 다가왔다. "가슴 떨리는 일이 하고 싶었다"던 그는 겨우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운좋게 평창패럴림픽 최종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종경과 이지훈은 17일 낮 12시 열리는 동메달결정전에서 마지막 메달 도전에 나선다. 상대는 이탈리아다. 이종경은 "이탈리아 선수들과 그동안 여러 차례 맞붙었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안다. 4년 전 소치 대회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선 졌지만 최근 캐나다 챌린지 대회에서 두 번이나 이겼다. 작년의 빚을 꼭 갚아주겠다"고 말했다.
강릉=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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