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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1만호 특집]차범근 감독 "스포츠서울에 쓴 칼럼 '슈팅메시지', 내겐 사명감이었다"

김현기 입력 2018.03.14.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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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스포츠서울 1만호 인터뷰를 한 뒤 자신이 1면에 등장한 1986년 1월1일 신문을 들어올리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차범근 전 감독이 현역 시절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1976년 FC상파울루전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나는 현 소속팀과 계약이 끝나는 87년 6월이면 34살이 된다. 체력이 가능할 때만 할 수 있는 이 축구, 나는 오래하고 싶다. 굳이 젖산검사에서 19살 먹은 아이들보다 체력이 좋다는 주책없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축구가 너무 좋다. 십수년동안 잘 뛰기 위해서 술마시지 않고 담배 피우지 않고 잘 자고 잘 먹고…. 그랬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조각 남은 초컬릿을 오래오래 아껴먹기 위해서 ‘절제’를 기꺼이 하리라. 길고 끈질긴 나의 30대를 위해서. <스포츠서울 1985년 11월20일 2면 차범근의 슈팅메시지 1편 중에서>

#결국 감독의 눈에 벗어나지 않고 주전자리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선 오직 축구에만 전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독 진출 초기 솔직히 나는 분데스리가의 이러한 생리를 몰랐다. 그래서 처음엔 교민들과도 자주 어울렸으나 얼마 뒤 다른 일로 시간을 뺏겼다가는 분데스리가에서 배겨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할 수 없이 외부와의 접촉을 삼갔다. 한 때 내가 교민들로부터 괜한 오해를 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서독에서 살만하니까 거만해졌다”는 식으로 오해를 산 것이다. 당시 나로선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교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스포츠서울 1988년 3월7일 5면 차범근의 슈팅메시지 99편 중에서>

#훌륭한 지도자가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오랜 선수 생활에서 얻어진 감독관이다.(중략) 나는 우리의 지도자들을 아꼈으면 한다. 그래서 김정남이나 박종환 뿐 아니라 김호, 이회택, 고재욱… 같은 선배들도 조용한 가운데 실패를 통해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서울 1988년 3월14일 5면 차범근의 슈팅메시지 100편 중에서>

차범근 전 감독이 자신의 스포츠서울 칼럼 ‘차범근의 슈팅메시지’를 종합해 발간된 책을 손에 쥔 채 스포츠서울 1만호 인터뷰하고 있다. 강영조기자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의 1만호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불세출의 스타’, ‘한국 축구의 영웅’, ‘분데스리가의 차붐’ 차범근(65) 전 대표팀 감독이다. 그는 본지가 창간하고 5개월 뒤인 1985년 11월20일부터 한 달에 2~4차례 가량 ‘차범근의 슈팅메시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자신의 독일 선수 생활을 알리고 선진 축구의 흐름을 설명했다. ‘차범근의 슈팅메시지’는 추후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는데 지금 축구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패러다임을 이미 30년 전에 제시한 것이었다. 지도자들이 실패를 통해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달라는 그의 주문은 당시 국내 축구 및 스포츠 풍토에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시대를 앞서가는 조언이었다. 차 감독이 지금까지도 축구는 물론 시대의 고민까지 나누는 명 칼럼니스트로 발돋움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또한 차 감독은 스포츠서울의 1면을 숱하게 장식했다. 창간 뒤 첫 신년호였던 1986년 1월1일자 1면의 주인공도 역시 차 감독이었다. 그와 오은미 여사는 맏딸 하나, 지금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큰 아들 두리와 함께 독일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축구인 차범근’은 스포츠서울의 지난 32년 9개월을 관통한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만호에 차 감독을 초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 전날 해외에서 돌아와 여독이 풀리지 않았음에도 자택에서 취재진을 반갑게 맞은 차 감독은 1986년 1월1일자 1면이 담긴 액자를 받고는 싱긋 웃으며 추억에 젖었다. 이어 스포츠서울과의 인연, 한국 축구의 오늘과 미래, 지난해 대한체육회로부터 스포츠영웅에 헌액된 한국 스포츠계 어른으로서 평창 올림픽 성공 축하 메시지 등을 차례로 전했다.

차범근 전 감독이 독일 레버쿠젠 시절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드리블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차범근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시절이던 1996년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차범근의 슈팅메시지, 내 경험 고국에 전파하는 사명감이었다”

차 감독은 스포츠서울의 전신 격이자 매주 스포츠팬들의 갈증을 풀었던 ‘주간스포츠’와의 인연부터 떠올렸다. “주간스포츠가 내게 10년간 한국 스포츠선수 중 가장 표지에 많이 등장한 선수에 해당되는 ‘10년 최우수선수상’을 줬는데 그 인연이 스포츠서울과도 연결됐다”고 돌이켰다. 그는 “스포츠서울은 내가 독일에 있을 때 창간이 됐고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생생한 모습을 한국에 전하면서 많은 팬들과 행복한 교감을 나눌 수 있게 해다 준 신문이다. 선수로서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함께 한 신문이어서 남다른 애정이 있고 고맙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나와 팬들의 소통 창구가 됐던 신문이 이렇게 오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 후배들을 위해서, 스포츠를 위해서 좋은 장면을 많이 실어주고 선수와 팬을 잘 소통시킬 수 있는 창구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차범근의 슈팅메시지’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우리 축구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펼쳐나간 기록이라고 역설했다. 차 감독은 “한국에서 축구를 하며 느꼈던 우리 축구가 처해 있는 한계, 그런 것을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세계 축구를 경험하면서 너무나 많이 다른, 그런 삶을 나 혼자만 갖고 있기엔 좀 아쉬웠다”며 “일종의 사명감이었다. 내 경험을 팬들, 스포츠를 하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슈팅메시지를)시작했다”고 회상했다. “100번째 칼럼이 인상 깊다. 지도자의 실패를 몰아세우지 말고 더 큰 자양분이 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내용은 지금 우리 축구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대를 앞서갔다”는 본지 취재진의 평가에 “세계 축구를 경험하면서 스포츠 세계에서는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기고 지고, 지고 이기고를 반복하면서 절대 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열매가 맺어지는 것 아닌가. 아무리 좋은 선수와 팀이라도 컨디션에 따라 다른 선수와 팀에 자리내줄 수 있는 게 스포츠라는 것,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승부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여유와 기다림, 땀과 수고의 열매가 확실히 돌아온다는 것도 얘기하고 싶었다”며 한 번 실패하면 ‘죄인’이 되는 국내 스포츠계의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1988년 3월14일 스포츠서울에 게재된 차범근의 슈팅메시지 100편.
차범근 MBC 해설위원과 국가대표팀 공격수 차두리 부자가 2002년 2월27일 서울 한강시민공원에서 러닝을 함께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중심을 잡아달라, 국제적인 공신력을 향해 발전해달라”

스포츠서울은 이제 2만호를 향해 나아간다. 최근 인터넷 언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스포츠뉴스가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시대를 맞았다. 차 감독은 그런 시대일수록 스포츠서울이 한국 축구와 스포츠의 중심을 잡는 등불이 되어주길 소망했다. 아울러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세계적인 스포츠 언론과도 어깨를 나란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신문은 시대의 어떤 목소리를 타고 가는 것도 좋지만 확실한 가치관을 갖고 중심을 잘 잡아주는 것에서 가치가 있다”는 그는 “팬도, 선수도, 다른 스포츠의 구성원도 제 자리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메신저가 지금 필요하다. 한 쪽의 생각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서 끌어주고 알려주고 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신문의 역할이 여러가지로 중요한 시점이다”라고 당부했다. 차 감독은 이어 “선수와 지도자만 공부하고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기자도 공부하고 국내·외 각지를 누비며 세계 축구의 볼륨을 담아내야 한다. 스포츠서울이 그런 몫을 맡아줬으면 한다. 199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을 보러 갔는데 현지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취재했던 스포츠서울 기자의 모습이 기억난다. 한국에만 국한되는 신문이 아니라 세계 축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무대라면 언제든지, 어디라도 달려가야 한다. 국제적으로도 공신력을 인정받는 미디어로 발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차범근 전 감독이 1990년 4월17일 서울 은평구에서 열린 차범근 축구교실 개설행사에서 어린 선수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차범근 전 감독이 수원 사령탑 시절이던 2004년 12월12일 K리그 정상에 등극한 뒤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어올리고 있다. 수원 | 최승섭기자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이 독일 레버쿠젠에서 뛰던 1986년 1월1일 스포츠서울 1면을 가족사진과 함께 장식하고 있다.

◇“평창 올림픽 보며 가슴 뭉클…러시아 월드컵, 결과는 모른다”

차 감독은 지난달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을 누구보다 감격스럽게 지켜본 스포츠인이다. 개막식과 폐막식을 직접 봤고, 폐막식 직전엔 제2의 조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이 남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에서 러시아와 싸우는 장면도 봤다. 성화 주자로 나서기도 하는 등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에 직접 힘도 보탰다. 스피드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 경기 출발 직전 전광판에는 차 감독이 ‘쉿’하는 동작으로 관중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평화의 올림픽이었다. 북한이 참여했고, 우리 땅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면서 세계 모든 국가가 와서 경기를 했다. 정말 자랑스럽고 가슴이 뭉클하더라”는 차 감독은 “내가 독일 갔던 시절엔 한국이 어디 있는지 다들 몰랐다. 은퇴할 때가 되니까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한국이 세계에 처음 알려졌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고, 신발 하나에도 우리 상표를 달 수 없었던 시대에 운동했던 사람 입장에서 보면 한국 땅에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렇게 큰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자부심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그는 “예전엔 금메달, 금메달 그랬는데 이젠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그렇지 않다. 금메달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라며 결과 만큼이나 선수들이 흘린 땀에 주목하는 한국의 스포츠 관전 문화에도 박수를 보냈다.

시선은 이제 오는 6월 러시아 월드컵으로 향한다. 한국과 같은 조에서 경쟁할 독일과 스웨덴, 멕시코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차 감독은 “약팀이 강팀을 이길 가능성이 그 어느 종목보다 높은 게 축구라고 생각한다”며 “상대가 우리보다 잘하는 것은 맞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과한 뒤 선수들이 중압감에서 벗어난 것 같다. 또 새로운 선수들이 보인다. 기성용과 손흥민이 소속팀에서 골을 넣어 대표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뛰는 다른 선수들도 잘 준비하고 있다”며 후배들의 대반전을 기대했다.

한편으론 갈수록 줄어드는 축구 인기를 냉정하게 돌아보면서 자신부터 심기일전할 것을 다짐했다. “축구의 중계서열이 7번째라고 한다”는 그는 “내게도 새로운 책임이 주어졌다. 지금 청소년 대표팀이 아시아에서도 다 탈락했다. 위기를 느끼지 않으면 깊은 늪에 빠질 수 있다. 우리 축구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낡은 틀을 깨고 소통하고 고민하면서 더 나은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