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필리핀도 귀화 제안했지만, 내 팬은 한국에 있다며 거절했죠"

박돈규 기자 2018. 3.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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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첫 농구 국가대표 라틀리프
코리안 드림 이뤘다
美버지니아 빈민가 출신.. 대학 졸업 후 KBL로 직행
"딸 얻은 한국이 제2의 집, 대표팀서 뛰며 보답할 것"
농구보다 어려운 택시 잡기
흑인을 낯설어하는지.. 겨울엔 춥고 더 힘들어

농구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29·삼성썬더스)는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대한민국 여권이었다. 법무부는 지난 1월 말 체육 분야 우수인재로 그의 특별귀화를 승인했다. 라틀리프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지 1년 만이다. 농구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축구·야구·농구 같은 인기 종목에서 흑인이 'Korea' 유니폼을 입기는 처음이다.

"한국 여권을 손에 넣어 뿌듯하다. 흑인이 귀화해 국가대표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이 빚을 코트에서 갚아나가겠다."

그는 미국 미주리대를 졸업한 2012년 한국프로농구(KBL)로 직행했다. 이곳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았다. 199㎝로 센터로서 큰 키는 아니지만 득점과 리바운드가 빼어나 외국인선수상도 두 번 받았다. '라건아(健兒)'로 개명 절차도 진행 중이다. 국가대표 라틀리프는 2월 26일 열린 2019 중국농구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에서 뉴질랜드를 상대로 맹활약(29점 11리바운드 4블록)했다. 경기 용인 삼성썬더스 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귀화 과정에 대해 "기복이 심한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고 했다.

특별 귀화로 국가대표가 된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최근 경기 용인 삼성썬더스 농구 코트에서 대한민국 여권과 농구공을 들고 있다. 그는 “한국에 큰 빚을 졌다”며 “대표팀에서 뛰며 갚겠다”고 했다. / 이진한 기자

―롤러코스터라니?

"내 농구 실력을 입증해야 했다. 매일 잘할 순 없지 않은가. 돈 때문에 귀화를 바란다는 의혹도 받았다(한국 국적을 얻으면 외국인 연봉총액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딸 레아(3)를 얻은 이 나라가 내겐 제2의 집이다. 한국 대표팀을 더 강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는데 귀화 절차가 길고 복잡했다. 롤러코스터처럼 다음 구간이 어떨지 알 수 없었다."

―귀화가 확정된 날 처음 한 일은.

"특별한 날이라 가족과 외식으로 자축했다. 난 스테이크를 썰었다. (좋아하는 한식을 묻자) 한우 숯불구이다. 오늘 저녁에도 먹는다."

―농구 대표팀 허재 감독은 뭐라 하던가.

"'다 잘 풀릴 테니 걱정 마라' 했다. 결정된 날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정말 그를 '형'이라 부르나?

"아니다. '형님'이다(웃음)."

―2012년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에 실패한 뒤 한국으로 건너왔다. 다른 나라는 안중에 없었나?

"이스라엘, 독일, 일본 리그도 검토했다. 먼저 KBL 드래프트에 뽑혀 '좋아, 그럼 한국에서부터 뛰어보자' 했다. 계속 재계약이 성사돼 한국에서 뛰고 있다. 은퇴도 여기서 하고 싶다."

―필리핀에서도 귀화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다.

"한국 시즌을 마치고 몇 달 뛴 적이 있다. 실력을 호평하며 그런 제의를 해왔다. 난 필리핀을 잘 모른다. '나를 응원하는 팬들은 한국에 있다'며 거절했다."

그는 버지니아 빈민가 '셸 로드'에서 태어났다. '헬(hell·지옥) 로드'로도 불리는 그 동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궁핍하고 험난했다. 집세를 못 내 쫓겨나곤 했다. 싸우는 게 일상이었고 도둑질을 했으며 마약에 손대는 친구도 있었다. 그는 "그들을 피하려고 육상을 시작해 농구로 옮겨갔다"며 "홀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농구 선수로 성공해 집을 사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당신에게 농구란 뭔가?

"10대 시절엔 가난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다. 지금은 가장 잘하는 것, 내 전부다."

라틀리프 가족. 왼쪽이 아내 휘트니 호지, 오른쪽은 딸 레아. / 이진한 기자

―딸 레아는 한국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 틈에서 한글을 배워 그런지 미국인을 외국인처럼 대한다. 내가 한국 국적을 갖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다. GPS에 새로운 위치 정보를 입력하듯이 2012년부턴 이 나라가 집이었다. 1년에 9개월 가까이 여기서 보낸다."

―우리말은 누가 더 잘하는지.

"내 생각엔 나다. '안녕하세요' '주세요' '딸바보'…. (당신도 '딸바보'인가 물으니) 그렇다. 많이(웃음)."

―한국에서 여전히 불편한 게 있다면.

"택시 잡기다. 어떤 땐 두 시간 걸린다. 택시 기사들이 흑인을 낯설어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겨울엔 밖에서 택시 기다리는 게 춥고 더 힘들다."

―한국 귀화에 대한 어머니 반응은.

"소식 전했더니 기뻐하셨다. '한국 국가대표로 뛰게 돼 자랑스럽다' 하셨다."

―한국 여권을 갈망한 다른 이유도 있나?

"2014년에 현대모비스 소속으로 존스컵에 출전해 우승했다. 한국 팬들의 축하 메시지가 소셜미디어로 몰려왔다. '이겨줘서 고맙다' '귀화해 국가대표가 돼달라'…. 그 말들에 감동했다. 내가 지금 사는 나라를 대표해 농구 코트에 선다는 것, 언젠가 이루고 싶은 멋진 꿈이 됐다."

―'건아'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나. 왜 20번(등번호)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하다.

"이상민 감독과 함께 궁리했다. '튼튼한 아이'라는 뜻이다. 생일이 2월 20일이라 20번으로 정했다. 미국에서는 내 우상인 마이클 조던의 23번을 단 적도 있다."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고맙다. 귀화라는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지지해줬으니까."

어느새 농구 코트에선 레아가 뛰어놀고 있었다. 공을 굴리며 노는 것인지 공이 그녀를 데리고 다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무표정한 편인 아빠도 '딸바보'답게 헤벌쭉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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