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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커쇼에게 캐치볼 파트너란

조회수 2018. 2. 26. 08: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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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이었다. 다저 스타디움에 특별한 손님이 방문했다. 일본인 투수 구로다 히로키였다. 구장에 도착한 그는 한때 4년간(2008~2011년)이나 머물렀던 클럽하우스로 갔다. 누군가를 찾아서다. 자신의 표현을 빌면 “은퇴 보고를 직접 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였다. 커쇼였다.

물론 보고받을 사람이 은퇴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고 얘기를 전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상대편의 반응이 의외였다. 다 듣고 나더니 대뜸 이런 제안을 했다. “캐치볼이나 좀 하죠.” 깜짝 놀랐다. 선발로 던진 바로 다음 날이었다. 무조건 어깨를 쉬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한 보고자에게 다시 한번 재촉이 날아왔다. “빨리요.”

길지는 않았다. 잠시였지만 추억을 더듬는 시간을 가졌다. 이윽고 금발의 투수는 글러브를 벗었다. 그리고 그걸 “선물”이라며 건넸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To Hiro : You will always be my favorite catch partner.’ (히로에게. 당신은 영원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치볼 파트너입니다.) ‘히로’는 커쇼가 구로다(히로키)를 부르던 애칭이다.

               커쇼가 구로다에게 선물한 글러브.                  사진 = 스포니치 캡처

커쇼급이라고 해도 메이커가 무료로 제공하는 글러브는 연간 1개 정도다. 그나마 그는 5년째 같은 것을 쓰고 있다. 그 정도로 아끼는 걸 선뜻 내준 것이다.

구로다는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리 얘기하고 간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불쑥 찾아갔는데 그러더라구요. 전날 선발로 던져서 어깨도 욱신거리고, 온 몸이 말이 아닐텐데. 캐치볼을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글러브 선물까지…. 그 친구 미국 사람 같지가 않아요. 뭐랄까, 마음이 참….”

날카로운 캐치볼의 추억

갑작스런 캐치볼은 은퇴한 투수의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 2008년이었다. 자신이 처음 태평양을 건넜을 때다. 당시는 다저스의 스프링캠프가 플로리다에 있었다(지금은 애리조나). 베로비치 다저 타운에서 20살짜리 풋내기 투수를 처음 만났다.

“어느 날 오픈전(시범경기)이었죠. 조 토리 감독이 선발로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내 다음에 나올 두번째 투수가 그 친구였어요. 그래서 게임을 앞두고 같이 캐치볼을 하게 됐죠.”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생생한 기억을 이렇게 전했다. “처음으로 공을 주고 받았죠. 그런데 공의 (회전의) 질이나 (타점의) 높이가 충격적이었어요. 특히 커브에 깜짝 놀랐어요. 마치 잠깐 동안 멈추는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뚝 떨어지는 거예요. ‘우와, 대단한 공이다’라고 느꼈죠.”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그게 시작이었다. 둘의 파트너십은 계속 이어졌다. “얼마 뒤에 (커쇼가) 슬라이더를 배워서 던지겠다는 거예요. 나는 반대했죠. 그렇게 좋은 커브가 있는데 왜 그러냐. 잘못하면 투구 패턴이 모두 바뀐다고 말렸어요. 그런데 내 말이 틀렸어요. 새로 익힌 슬라이더로 삼진을 팡팡 잡아내는 거예요. 다시 한번 느꼈죠. 역시 보통과는 다른 친구구나. 아마 웬만한 어린 투수라면 거기서 만족했을텐데 말이예요.”

둘의 친분은 유명하다. 13살 차이지만 각별한 사이였다. 커쇼의 복잡한 루틴과 철저한 준비 과정도 구로다에게 받은 영향이 크다는 얘기가 많다. 구로다가 다저스를 떠날 때도 단짝은 몇 차례 만류했다. 섭섭함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야구는 구라다 : 커쇼가 존경한 투수 구로다 히로키 http://v.sports.media.daum.net/v/20140922123607544) 

결국 일본인 투수는 뉴욕으로 이사갔다. 몇 년 뒤 둘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커쇼가 8이닝, 구로다는 7이닝을 던졌다. 둘 다 무실점이었다. 0-0이던 9회 양키스가 3점을 뽑아 3-0으로 끝났다. 경기후 커쇼는 이렇게 말했다. “히로는 내가 많은 존경심을 갖고 있는 투수다(I have a lot of respect for Hiro). 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새신랑을 가장 먼저 반긴 캐치볼 파트너

스프링캠프 첫 날(2월 15일) 커쇼는 새신랑에게 다가갔다. 같이 캐치볼 하자는 제의였다. 와중에 잠시 혼선이 있었다. 본래 예정된 파트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에이스 중의 에이스 아닌가. 어딜 감히 딴지를…. 결국 그의 뜻대로 됐다. 두 왼손 투수가 공을 주고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배팅 훈련 때도 한 조가 돼서 알콩달콩한 모습이 취재진의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캐치볼은 여러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간단한 몸풀기로 끝날 때도 있다. 그러나 먼 거리를 두고 짙은 농도로 펼쳐질 때도 있다. 외야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족히 100미터는 될 법한 거리를 뿌려대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른바 ‘롱토스’다.

2012년 커쇼와 캐치볼했던 카푸아노는 이렇게 묘사했다. “먼 거리에서 할 때 내 공은 커다란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의 공은 거의 직선으로 날아왔다. 곧 땅에 닿을 것 같았지만, 그 공은 결코 바운드 되지 않았다.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느낌이었다. 커쇼의 이런 롱토스는 일본 투수들이 팔과 어깨의 근력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나마 투수들은 좀 낫다. AJ 엘리스 같은 포수는 고역이었다. 커쇼는 한 방에 던지는 거리였지만, 그에게는 아니다. 한 번 땅에 튀긴 뒤 다다를 정도다. 괜히 무리했다가는 몸이 고생한다.

마주 서서 나누는 ‘교감’

서로 마주선다. 그리고 힘껏 공을 보내고, 다시 돌려받는다. 많은 준비 과정 중의 하나다. 그러나 어쩌면 그럴 수 있다. 그에게는 단순히 던지고 받는 작업 이상의 것일 지 모른다. ‘결혼했다며. 축하해.’ ‘겨울에 훈련 많이 했구나. 공이 살아오는데?’ ‘요즘 투심 던진다며. 어디 보자. 오, 나쁘지 않은데.’

교감(交感)? 그런 것인가? 오가는 것은 공 뿐만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일 지도 모른다.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그런 메시지 말이다.

2010년 다이아몬드백스 클럽하우스에서의 모습.       출처 = 존 수 후의 LA 다저스 사진 블로그.

2011년 시즌 막판이었다. 구로다는 이미 LA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다저 스타디움에서 고별 등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헐레벌떡. 누군가 글러브를 들고 외야로 달려왔다. 22번 투수였다.

캐치볼 파트너는 그 해 233이닝이나 던졌다. 때문에 구단에서는 특별 보호대상자로 지정했다. 남은 시즌에 절대 공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금지령까지 내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한사코 말리던 코치들과 구단 스태프들도 이 한마디에는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소리냐. 괜찮다. 히로가 선발인데, 내가 캐치볼을 해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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