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흉터요? 괜찮아요, 두 다리가 더 소중해요

박소영 2018. 2. 2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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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긍정 아이콘 김아랑 선수
작년 스케이트날에 왼쪽 눈밑 부상
4위에도 미소로 후배 축하해 인기
올림픽일기 쓰며 2022 베이징 준비
김아랑이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딴 금메달을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그는 쇼트트랙 1500m에서 4위로 골인한 뒤에도 밝은 미소를 지어 박수를 받았다. [우상조 기자]
“얼굴 흉터요? 괜찮아요. 얼굴보다 다리가 더 소중해요.”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우승한 김아랑(23·고양시청)이 금빛 스마일을 뽐내며 이렇게 말했다. 평창올림픽에서 아름다운 미소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다. 25일 강릉 선수촌 근처 카페에서 만나 올림픽을 마친 소감을 들어봤다. 선수촌 정문에서 카페까지 10분 정도 걷는 동안 옆을 지나던 시민들이 그를 알아보고 수차례 사진 촬영요청을 했다. 올림픽 자원봉사자부터 길을 가던 시민들까지 김아랑을 알아보고 달려왔다. 그때마다 김아랑은 생글생글 웃으며 촬영에 응했다.

김아랑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는 건 처음”이라면서 “2014년 소치올림픽 이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무척 감사하다”고 했다.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 17일 여자 1500m 경기에서였다. 스타트 라인에서 김아랑이 밝게 웃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포착됐다. 경기를 앞두고 보통 선수들은 긴장이 돼 표정이 경직되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코치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져서 웃음이 나왔다.”

평창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을 앞두고 경기를 준비하는 김아랑. [사진 MBC 캡처]
김아랑의 ‘스마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날 1500m 결승에서 4위에 골인했지만 금메달을 딴 후배 최민정(20·성남시청)에게 달려가 활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김아랑은 “많은 사람들이 4등을 아쉬워하는데, 전 만족스러웠다. 민정이가 금메달을 따 정말 기뻤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의 스포츠맨십에 박수를 보냈다.

김아랑이라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간절히 개인전 메달을 꿈꿨다. 하지만 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소치올림픽에서 컨디션 관리에 실패했다. 1500m 경기를 앞두고 급체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채로 레이스를 했다. 결국 실격을 당했다. 김아랑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생 당근을 많이 먹었다. 더구나 많이 긴장해서 인지 계속 구토를 한 탓에 힘이 없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지난 4년동안 당근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선 강릉선수촌에 들어가자마자 식단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 그는 “뜨거운 국물과 쌀밥, 기본 반찬 위주로 식사를 했다. 찬 음식이나 날 것은 절대 먹지 않았다. 같은 메뉴로 3주 동안 버텼다”고 했다.

금메달이 담긴 보관함. [우상조 기자]
날씨로 인해 감기 걱정도 컸다. 김아랑은 숙소에 들어오면 수건을 전부 꺼내 물을 적셔 방 여기저기에 걸어놨다. 경기를 치른 날은 너무 힘들어 방바닥에 물만 뿌리고 잔 적도 있다. 그는 “그 덕분인지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렀다”며 “그럼에도 개인전 메달을 따지 못한 건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도 나가라’는 뜻인 것 같다”며 웃었다.

김아랑은 벌써부터 4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올림픽 일기’를 쓰고 있다. 그날 뭘 먹었는지, 운동량은 어느 정도였는지, 경기 당일 준비는 어떻게 했는지 등을 꼼꼼히 적어놨다. 그는 “4년이 지나면서 소치올림픽 기억이 흐릿해졌다.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꼼꼼하게 적고 있다”고 했다. ‘책으로 만들라’고 하자 그는 “안 된다. 모두 보고 따라하면 안 되지 않나. 우리 선수들끼리만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쇼트트랙 여자계주 금메달리스트 김아랑 선수가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이 열리는 25일 선수촌 부근 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강릉=우상조 기자
베이징올림픽에선 중국의 홈 텃세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중국 선수들이 실격 판정을 받아 중국 팬들이 뿔이 났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선 “4년 후 베이징에서 보자”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김아랑은 “어쩔 수 없다. 중국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실력을 키우겠다. 몸싸움에 밀리지 않게 근육도 키우겠다”고 했다.

김아랑은 지난해 1월 전국겨울체육대회 쇼트트랙 여자대학부 3000m 경기 도중 스케이트 날에 왼쪽 눈밑 뺨이 6㎝ 정도 베였다. 빙판 위에 피가 뚝뚝 떨어졌고, 얼굴 뼈가 드러날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수술 후에도 흉터가 깊어 지금도 밴드로 가리고 있다. 어머니는 속상한 표정을 짓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나 다행이에요. 얼굴은 경기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거든요. 저는 얼굴보다는 두 다리가 중요하답니다. 하하.”

강릉=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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