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한 '레디' 구령..한국인 스타터였단 것 아시나요?

김지한 입력 2018. 2. 25. 01:00 수정 2018. 2. 2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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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유일한 아시아인 스타터 오용석 단국대 감독
2002년부터 스타터 심판, 2회 연속 올림픽 빙속 총성 울려
"내 총성에 모든 사람이 쉿! 최고 스타트 기록에 짜릿해"
25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오용석 단국대 빙상팀 감독. 강릉=김지한 기자
"고 투 더 스타트(Go to the start)! 레디(Ready)! 탕!"

24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예선과 결승에서 낮으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 링크에 울러퍼졌다. 이 목소리에 모두가 숨죽였다. 그리고 스타트 총성이 울리는 순간 선수들은 빠르게 출발선을 박차고 나가고 관중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스타터 심판을 이날 맡은 사람, 오용석(49) 단국대 빙상부 감독이다.

오 감독은 평창올림픽에 나선 스피드스케이팅 스타터 심판 4명 중 한국인으론 유일하게 당당히 뽑혔다. 지난 2014년 소치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겨울올림픽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오 감독은 여자 매스스타트 뿐 아니라 여자 500m, 여자 1500m 경기에서도 스타트 총성을 울렸다. 오 감독은 "두 번이나 올림픽 스타터로 나선 건 가문의 영광이다. 한 번 올림픽을 경험했기 때문에 '설마 한 번 더 할까' 했는데 또 지명돼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스타터 심판으로 나선 4명 중 아시아인으론 유일하게 뽑힌 오용석 단국대 감독(왼쪽). 강릉=김지한 기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스타트는 실격 여부를 통해 레이스가 정당한지를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오 감독은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과 함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스타터 심판으로 한국 빙상을 빛냈다. 2002년 아시아선수권을 통해 스타터 심판에 입문한 오 감독은 아시아선수권, 주니어 세계선수권, 종목별 세계선수권 등 다양한 국제 공인 대회를 맡으면서 얻은 신뢰로 '대쪽 스타터'로 주목받아왔다. 오 감독은 "한국 선수가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세 차례 우승(김유림, 노선영, 서정수)했을 때 모두 내가 스타터를 맡았다. 그러나 한국 선수가 나선다 해서 봐주는 건 없다. 원칙대로 쏘고, 정확하게 보다 보니까 다른 나라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ISU 공인 스타터가 되기 위해선 국내 스타터로 활동하면서 각 국 빙상연맹의 추천을 받아 ISU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인터내셔널 스타터 활동을 해야 한다.이어 각종 국제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평가위원회의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한다. 오 감독은 "스타터는 선수의 기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실수했다가 공항에서도 해당 스타터를 알아보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스타터를 하면서도 매년 엄격한 평가를 거쳐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큰 대회에 쏠 사람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저음의 구령 목소리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장 관람객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도 "녹음한 목소리 아니냐"고 하지만 오 감독이 직접 구령을 외친다. 그는 "의도적으로 더 낮은 목소리로 부른다. 부담갖지 말고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 스타트를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인이 보기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스타트에도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빙판에 들어서 총성을 울려 달리는데까지 약 20초 걸린다. 심호흡하고 출발자세를 기다리는데 15초가 걸리고, 출발선에서 자세를 낮춰 잡는데 4초가 소요된다. 그때 '레디'를 외치고 1초 뒤에 총을 쏜다"고 설명했다. 그 전에 출발하면 부정출발로 다시 뛰거나 누적되는 경우 실격 처리된다.

오용석 단국대 빙상팀 감독. 강릉=김지한 기자
지난 18일 '빙속 여제' 이상화(스포츠토토)가 출전했을 때도 오 감독이 총성을 울렸다. 오 감독은 "상화가 당시 10초20으로 가장 빠른 스타트 기록을 냈을 떄 매우 기뻤다. 스타터로선 자신의 총성에 최고의 스타트 기록을 낼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수많은 관중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 수억명이 내가 내는 총성과 호각소리에 집중한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매우 좋다. 내 구령에 긴장하고 지켜보는 것 아닌가. 그만큼 책임감도 더 생긴다"고 말했다.

오 감독은 공교롭게 이상화와 김보름 등 한국 여자 선수 2명의 메달 경기에 스타터로 나섰다. 24일을 끝으로 평창올림픽 일정을 마친 오 감독은 바람도 드러냈다. 그는 "아무리 준비를 잘 하고 나오려한다 해도 스타터는 전문적인 사람이 해야 한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져 더 많은 한국인 국제 심판이 양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릉=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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