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가 한다면 나도 할 거야..라이벌의 힘

박소영 2018. 2.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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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화, 네가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나간다면, 나도 나갈거야."
18일 오후 강원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이상화가 레이스를 마친 뒤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서로를 축하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세기의 라이벌전을 벌인 고다이라 나오(32·일본)가 이상화(29·스포츠토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상화는 18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37초33으로 은메달을 땄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2014년 소치올림픽에 이어 3연속 금메달에 도전했던 이상화의 도전은 아쉽게 마무리 됐다. 고다이라는 36초95의 올림픽 기록으로 금메달을 가져갔다.

한 명은 1등, 다른 한 명은 2등. 그래도 둘은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이상화는 3연속 금메달을 따야한다는 압박감에 벗어난 안도의 눈물을, 고다이라는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마치 한 팀에서 나란히 금, 은메달을 딴 것처럼 서로를 토닥여줬다.

18일 강릉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화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화와 고다이라. 둘은 서로가 있었기에 평창올림픽에서 멋진 승부를 보여줄 수 있었다. 소치올림픽이 끝나고 은퇴를 고민했던 이상화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20대 중반 전성기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30대의 나이에 활짝 핀 고다이라를 보며 위기를 극복하고 이 무대에 섰다.

고다이라는 이상화의 뒤를 쫓아왔다. 평창올림픽 전까지 개인종목에선 올림픽 메달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이상화를 존경한다"며 이상화를 닮고 싶어했다. 고다이라는 소치올림픽이 끝난 뒤 네덜란드에서 환골탈태했다. 등을 구부리고 머리를 세우는 쪽으로 주법을 바꾸고 기록이 점점 좋아졌다. 만약 '이상화'라는 거대한 산이 없었다면 고다이라는 30대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라이벌 효과다. 항상 주시해야 하는 라이벌이 있으면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크다. 하지만 스스로를 빠르게 성장시키는데는 이만한 도구가 없다. 라이벌로 인해 목표의식이 뚜렷해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 더욱 애착을 느끼게 된다. 이상화의 평창올림픽 도전도, 고다이라의 뒤늦은 주법 변화도 서로의 성장에 자극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상화는 2010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왼쪽부터)에서 첫 금메달을 딴 뒤 2014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은메달이라는 큰 기록을 세웠다.[연합뉴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치열한 승부를 끝내고 서로에게 "잘했다"고 말했다. 고다이라는 "(이)상화가 얼마나 큰 압박에 시달렸을지 알았기 때문에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상화는 여전히 내가 존경하는 선수"라고 했다. 이상화는 "나도 (고다이라) 나오에게 '존경한다'고 말했다. 500·1000·1500m 등을 다 뛰는 나오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 출전에도 서로의 힘이 필요하다. 이상화와 고다이라는 향후 계획에 대해 한국어로 "아직 몰라요"라고 답했다. 그리고선 "아직 섣불리 은퇴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장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화는 "작년에 나오에게 평창올림픽 끝나고 베이징올림픽까지 할 거냐고 물었는데 '네가 한다면 나도 할 거야'라고 말하더라"며 웃었다.

지난해 스켈레톤 5차 월드컵에서 1~3위에 오른 선수들. 왼쪽부터 2위 윤성빈, 1위 마르틴스 두쿠르스, 3위 니키타 드레구보프. [AP=연합뉴스]
올림픽에선 라이벌로 인해 더욱 성장한 선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스켈레톤 황제' 윤성빈(한체대)는 전 황제였던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을 보며 갈고 닦아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윤성빈은 "두쿠르스는 여전히 나의 우상"이라고 했다.
김연아에게 완패한 뒤 아사다 마오는 "분하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 패배에 대한 소회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경쟁에서 김연아가 '넘을 수 없는 산'이라는 뜻이다. [중앙포토]
'피겨 여왕' 김연아(은퇴)도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일본)와 주니어 시절부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주니어 시절 초반 아사다가 앞서 있었지만, 점점 격차가 줄었다. 김연아가 밴쿠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 아사다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는 2014년 은퇴 무렵 “마오 선수와 어릴 때부터 10년 넘게 경쟁했다. 앞으로도 우리 둘만큼 비교 당하는 선수들은 없을 것 같다. 비슷한 점이 많은 선수여서 그런지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사다도 은퇴 기자회견에서 “김연아와 나는 서로 좋은 자극을 주고 받았던 존재였다.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북돋워줬다”고 말했다.

강릉=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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