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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구라다] 천재 단장, 오승환의 왼발에 900만불을 걸다

조회수 2018. 2. 1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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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다. 굳이 왜 그랬을까. 그럴 필요까지 없었다. 안 그래도 그만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런 의문에서 출발했다. 이 일의 기묘한 전개에 대해서 말이다.

보스가 구역을 떴다. 세인트루이스의 여름이 지겨울 법하다. 후텁지근한 끈적거림은 딱 질색이다. 덥더라도 차라리 화끈한 게 낫다. 대프리카의 강렬함도 이겨낸 강골 중의 강골 아닌가. 남들은 투덜거린다. 하지만 알링턴의 땡볕도 때로는 찬란함일 수 있다.

물론 액수가 실망이었다. 최대한으로 봐서 925만 달러였다. 그러나 허수가 많다. 2년째는 450만 달러는 손에 쥔 게 아니다. 구단이 OK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인센티브(보너스)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뛰면서 숫자를 채워나가야 한다. 그래야 최대 100만 달러를 손에 넣게 된다.

그러니까 기름기 ‘쫙’ 뺀 액수는 불과 275만 달러다. 확보한 건 그게 전부다. 불펜 투수 평균치에도 한참 못 미친다. 기간도 사실 1년짜리로 봐야한다. 황홀한 장밋빛이던 미디어들의 프리즘은 산산이 깨졌다.

그렇게 생각했다. 계약 소식에 대한 첫 인상은 별로였다. 괜한 기대가 거품이 됐다고 여겼다. 그런데 몇 가지 묘한 점이 있다. 현지발 보도들이다. ‘마무리 투수 보장이니 어쩌고….’ 그런 기사들 말이다. 처음에는 콧등으로 들었다. ‘돈을 봐라. 저게 무슨 마무리한테 주는 액수냐.’ 그렇게 핀잔이라도 놓고 싶었다. 하지만 대강 스치는 ‘썰’들은 아닌 것 같다. 소스도 구단 내부에서 나온 얘기로 들린다.

그게 의문의 출발이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JD는 왜 자신이 직접 나섰나

존 대니얼스(JD)다. 그쪽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인물이다. 코넬 출신의 그가 첫 발을 들여놓은 곳은 콜로라도였다. 주급 275달러짜리 인턴으로 시작했다. (묘하게 275라는 숫자가 보스의 연봉과 겹친다.) 그리고 텍사스로 옮긴뒤, 불과 28살에 사상 최연소 GM(단장)으로 승진했다.

그런 천재가 ‘인맥’을 떠올렸다. 명문대에서 응용경제학을 전공한 그가,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 그가, 지극히 고전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바로 ‘친구 통해서’라는 방법이었다.

알려진 것처럼 추신수에게 청탁을 넣었다. 보도에 따르면 정황은 이렇다. 존 대니얼스가 추신수에게 전화했다. (영어니까 반말로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쑹완 오가 니 친구지? 계약하고 싶은 데 좀 도와줘.’ 갑장은 곧바로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돌렸다. 다짜고짜 존(대니얼스)의 생각을 전했다. ‘단장이 너 관심있대. 마무리시켜준대. 텍사스로 와. 괜찮아. 한국 식당도 많고, 살만해.’

물론 그럴 수 있다. 스카우트란 결국 감성에 호소하는 작업 아닌가. 아무리 억만금을 지르면 뭐하나. (하긴 그게 통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명분과 소소한 마음씀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가족 모두에게 유니폼을 선물한다든지.

그래도 그렇다. 깨놓고 말하자. 200만 불짜리 투수다. 굳이 GM이 직접 나설 정도는 아니다. 중간 관리자 급에서 전결로 처리해도 그만이다. 그냥 에이전트 통해서 이메일로 왔다갔다 해도 충분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게 두번째 의문이다.

                                                                                                     사진제공 = 게티이미지

가설 ‘작년 부진은 익숙함 탓이다’

기술적인 지적이 있었다. ‘슬라이더를 가다듬어야 한다(댈러스 모닝뉴스).’ 몇 가지 데이터가 근거 자료로 나왔다. 패스트볼의 평균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는데, 슬라이더의 헛스윙률이 26.5%(2016년)→15.8%(2017년)로 현저히 낮아졌다는 말이다.

낙관적인 요소도 있다. ‘친구 곁으로 가니까’였다. 맞다. 아무래도 도움은 될 것이다. 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점은 없다. 뭔가 뜨뜻미지근하다.

그래도 명색이 천재 단장 아닌가. 좌우에 날고 기는 스태프들이 수십명 포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납득할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애매모호한 그 무엇이 아닌, 또렷하고 명료한 ‘팩트’ 말이다. 그걸 찾아야겠다.

하나의 명제에서 출발했다. ‘작년에 왜 부진했을까?’ 몇가지 요인들이 떠오른다. 나이를 먹어서, WBC 때문에…. 많이 듣던 얘기들이다.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다. 해서, 다른 가설 하나를 세웠다. “혹시, 2년째라서?” 서퍼모어 징크스를 말하자는 게 아니다. 익숙함에 대한 부분이다.

아시다시피 처음 만나면 타자보다 투수가 유리하다. 어디로 어떻게 던지겠다는 주도권을 쥔 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결 횟수가 늘어나면, 점차 타자쪽이 공략법을 터득해 나가는 게 보통의 경과다. 그런 일반론을 적용해보자. 그러고보니 일본에서도 2년째 성적이 별로였다. 물론 그런 반론도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왜 9년간 멀쩡했냐고. 그건 리그의 수준차라고 해두자.

이대호 “승환이 공은 처음 보면 무조건 못쳐요”

특히 그의 경우는 더 그렇다. 독특한 폼 때문이다. 던질 때 왼발이 나가면서 한번 ‘멈칫’ 하는 동작이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이중 모션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팁토(tiptoe)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더 타자를 애먹이는 동작이다.

또 한 명의 1982년생 친구의 설명이 적절하다. “승환이 공은 처음 보면 무조건 못쳐요. 일단 투 스트라이크는 먹고 들어간다고 봐야죠.” (이대호)

카디널스 시절 동료였던 내야구 그렉 가르시아의 묘사는 훨씬 생생하다. 캠프에서 첫 라이브 피칭의 상대였던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몸쪽 공이었어요. 치려고 나가는 순간 타이밍이 완전히 뒤엉켜버렸죠. 분명히 와인드업에 잘 맞춰서 시동을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공은 그의 손 안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장전을 해야했죠.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그렇다. 그의 폼은 아주 특이하다. 때문에 처음에는 까다롭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난 2년 간 가장 많이 상대한 팀들은 당연히 같은 디비전(NL 중부) 팀들이다. 1년에 19차전씩 대전 스케줄이 잡혔다. 시카고 컵스, 신시내티 레즈, 밀워키 브루어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4팀이다. 성적은 다음과 같다.

첫 해는 나쁘지 않았다. 이듬 해 급격히 나빠졌다. 특히 파이어리츠전은 최악이었다. 9게임에 등판해 홈런 3개를 맞는등 (8이닝) 10실점했다. 작년 7월에는 조시 벨에게 끝내기 3점포를 맞기도 했다. ERA가 무려 11.25였다.

나머지 리그, 혹은 디비전을 상대해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평균자책점이 2.36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2년째가 원인’이라는 가설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다. 그러니까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보스가 작년에 꼬였던 이유는 익숙함 탓이다. 즉, 많이 상대해본 같은 지구 타자들이 생소함에서 벗어나 공략법(타이밍 잡는 법)을 익혔다는 뜻이다.

상대한 경기수와 ERA는 정확히 비례했다

데이터를 조금 더 알기 쉽게 소팅(sortingㆍ구분, 분류)해보자. 미국 진출후 2년간 상대한 경기수별로 나눠서 집계해봤다. 이런 결과였다.

거의 완벽하게 비례한다. 이 정도면 함수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할만 하다. 자주 만난 팀과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5배 이상 차이난다. 그런 개그가 떠오른다.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은? 바로 처음 만난 여자다. 마찬가지로 보스에게도 그렇다. 가장 만만한 상대는 처음 만난 타자들이다.

그럼 앞으로의 예상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자. 텍사스로 이사해서는 어떨까. 역시 표본은 지난 2년간의 기록이다. 레인저스가 소속된 AL 서부지구에 대해서는 어떤 성적이었나.

완벽했다. 1점도 주지않았다. 4팀을 통틀어 ERA 제로다. 참고로 위의 성적은 2016년도 것이다. 2017년에는 아예 만난 적도 없다. 그러니까 올해는 또다른 생소함으로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설명하지만, 같은 지구 팀과는 각각 19번씩 대전이 예정됐다. 연간 162게임 중 절반에 가까운 76경기(47%)를 치르게 된다.

                                                                                                                                                     mlb.tv 중계화면

그를 둘러싼 견해들은 대부분 비관적이다. 나이도 많고, 구위도 예전만 못하다. 감기에, 물집에, 근육통에…. 잔부상도 부쩍 잦다. 게다가 한번 아프면 쉽게 낫지도 않는다. 전형적인 노화의 길을 걷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도 한가닥 빛은 있다. 그건 바로 ‘생소함의 회복’이다.

천재 단장은 자기 팀 베테랑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게끔 설득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거기에 숨겨진 의도는 분명히 따로 있을 것이다. 그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이봐, 자네 친구 왼발 말이야. 그것 좀 잠시 빌릴 수 있겠나?” <…구라다>는 그렇게 추론한다. 강력하게.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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