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실력도 없으면서.." 여자 하키 대표팀에 쏟아지는 막말들

장훈경 기자 입력 2018. 1. 24. 08:12 수정 2018. 1. 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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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선수 피해" vs "올림픽 정신 부합"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매 경기 최소 3명의 북한 선수가 우리 선수를 대신해 빙판에 서게 됐기 때문입니다. 단일팀을 비판하는 쪽은 “피땀 흘린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불공정한 처사”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찬성하는 쪽은 “평화와 화합이란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고 오히려 아이스하키를 알릴 수 있는 저변을 확대할 기회”라고 강조합니다.

문제는 논쟁이 격화되면서 여자 대표팀에 저주에 가까운 막말이 쏟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올림픽에 ‘올’자도 못 볼 실력이면서…”, “주최국 출전권도 돈 주고 따낸 주제에…”, “너희 때문에 떨어진 독일 대표팀이 불쌍하다”는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선수단은 남북 단일팀을 불평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런지 짚어봤습니다.

● "200억 주고 주최국 출전권 확보" → 사실이 아님

주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따낸 걸 다른 나라가 아닌 주최국 국민이 욕하는 이상한 상황.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주최국이 아니었으면 출전권을 못 얻을 정도의 실력이니 단일팀 불평 말라’는 막말의 근거로 쓰입니다.

아이스하키 주최국 자동 출전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 문제가 됐습니다. 이탈리아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너무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최국 자동 출전은 논란만 있었을 뿐 실제 주최국이 출전하지 못한 경우는 없습니다. 흔히 동계올림픽의 아이스하키는 하계올림픽의 마라톤과 축구를 합한 정도의 비중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흥행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주최국 입장에서는 절대 빠질 수 없는 종목인 것입니다.

정몽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은 주최국 출전권을 따 낸 2014년 9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전 확보를 위한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정 회장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신뢰도 높은 감독 선임과 예산 지원 등 경기력 강화를 요구했다”며 “외국인 선수 귀화 등을 위한 200억 원 투자를 약속했다”고 말했습니다. 투자 이후 남녀 대표팀은 모두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7개 리그 중 세 번째 그룹에 속하던 남자 대표팀은 지난해 첫 번째 그룹으로 진출했습니다. 여자 대표팀도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5전 전승 우승으로 사상 첫 3부 리그 승격을 이뤘습니다. 선수들의 치열한 땀에 지원이 더해져 만들어진 성과입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주최국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기준, 중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세계랭킹은 남자 37위, 여자 18위입니다. 우리나라는 남자 21위, 여자 22위입니다. 상위 6개국에 주어지는 자동 출전권과는 모두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중국도 우리나라처럼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아이스하키 굴기’라 불릴 정도의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프로 아이스하키 리그에 진출하고 세계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를 영입했습니다. 올림픽 출전국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따 낸 출전권’이란 표현은 폄하를 위한 왜곡일 뿐입니다.

● "우리 때문에 희생한 독일 대표팀" → 사실이 아님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에는 8개국이 참가합니다. 원래는 2016년 세계랭킹 기준 상위 6개국이 자동으로 진출하고 나머지 두 자리를 놓고 최종예선을 치러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최국인 우리나라가 출전권을 확보하면서 1위부터 5위까지였던 미국, 캐나다, 핀란드, 러시아, 스웨덴 5개국만 자동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두 자리를 놓고 최종예선 C조에서는 스위스, 체코, 덴마크, 노르웨이가 경쟁해 세계랭킹 6위 스위스가 올라왔습니다. D조에서는 일본,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중 랭킹 7위 일본이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독일 대표팀이 희생했다는 주장은 우리나라가 진출하면서 8개국이 치르는 올림픽에 세계랭킹 8위인 독일이 못 나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전 동계올림픽에서도 최종예선을 통해 세계랭킹이 낮은 국가가 올림픽에 진출하거나 랭킹이 높은 나라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출전국을 정할 당시 세계랭킹 17위의 슬로바키아가 최종예선을 뚫고 올림픽에 진출했습니다. 2014 소치올림픽에서도 랭킹 11위 일본이 경쟁을 뚫고 올라왔습니다. 세계랭킹 8위는 최종예선을 무조건 거쳐야만 하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독일 입장에서는 아쉬운 측면도 있겠지만 경쟁에서 떨어진 것을 ‘희생됐다, 불쌍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선수단에 대한 왜곡과 막말은 정작 우리나라 대표팀이 출전을 확정한 2014년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4년이 지나 평창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남북 단일팀으로 우리 선수단의 출전 기회나 역량 등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북 단일팀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와 아이스하키 저변 확대는 분명 기회입니다. 단일팀을 무조건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하지만 ‘주최국 자동 출전은 남북 단일팀을 전제로 이뤄진거니 불평 말라’는 식의 거짓과 '출전권도 돈 주고 땄으면서…'라는 왜곡은 다릅니다. 막말을 퍼뜨리는 목적이 무엇이든 선수단에 대한 비난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 [사실은] "女 아이스하키 단일팀, 국제협회에 200억 주고 출전권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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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경 기자roc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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