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정말 정근우의 백기투항을 기다리는 것인가

이준목 2018. 1. 2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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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최초 2년 계약 제의안 후 별다른 진전 없어.. 구단 협상 태도가 문제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정근우 선수
ⓒ 한화 이글스
정근우와 한화 이글스 구단은 과연 언제쯤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느덧 해를 넘겨 1월도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지만 FA 정근우의 계약 소식은 여전히 들려오지 않고 있다.

한화는 정근우 측에 최초 제시안으로 2년 계약을 제의한 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정근우는 당초 4년보장 계약을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2+1년으로 한발 수정된 조건을 제의하기도 했지만 구단의 입장은 요지부동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어느덧 만 36세의 노장이 된 정근우에게 3년 이상 장기계약 보장은 어렵다는 방침을 정했다. 한화는 이미 지난해부터 구단 운영의 방향을 '육성'으로 잡은데 이어 더 이상 FA에 과도한 지출을 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예비 FA를 포함한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도 정근우에게만 더 관대한 조건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한화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화는 지난 10년 간 가을야구를 번번이 실패했다. 김응용-김성근 전 감독 시절 최근 몇 년간은 외부 영입에 초점을 맞춰 단기간에 폭풍 영입을 단행하며 '이적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시절도 있었지만 정작 팀성적과 연결되지는 못했다. 2013년 FA 계약을 통하여 SK 와이번스에서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탄 정근우는 바로 한화판 '갈락티코' 프로젝트를 대표하던 선수였다.

물론 정근우 본인은 4년간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모범 FA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자기 몫을 다했다. 다만 가뜩이나 수비 부담이 많은 내야수 포지션에서 정근우가 2~3년뒤에도 공수에서 계속 지금같은 기량을 유지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한화는 전력상 큰 비중을 차지하던 외국인 선수진도 올해는 이름값보다 '가성비' 위주의 계약을 추진하는 등 전반적으로 선수단 구성도 과감한 투자보다는 리스크 줄이기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오락가락한 한화, 피해는 선수와 팬들이...

여기서 한화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외부 영입 개개인의 실패 사례보다도, 구단 운영 자체가 장기적인 비전이나 연속성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오락가락하는 행태가 너무 빈번하게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내부 육성과 투자에 무관심하다가 끝내 세대교체 실패로 라인업의 '노인정'화를 초래했고, 하위권으로 추락한 한대화 감독 시절에는 뒤늦게 잠시 '리빌딩'을 시도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노선을 바꿔 김응용-김성근같은 노장 감독들의 복귀와 함께 외부에서 즉시전력감을 대거 영입하며 당장 성적을 내겠다는 '만수르' 흉내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는 김성근 감독을 사실상 퇴출하면서 다시 하루아침에 프런트야구와 육성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결국 선수단과 팬들이었다. 줏대없는 구단 수뇌부의 일방적인 방침에 따라 180도 바뀌는 팀운영에 선수들은 혼란을 느껴야했고 프런트도 마찬가지였다. 한해 한해 지나면 더 좋아지겠지 기대했던 팬들은 잠시 반짝하는 듯하다가 금세 원점으로 돌아가버리는 한화의 악순환을 지켜보면서 오랜 세월 희망고문에 지쳐갔다.

당연하게도 정근우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아무래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 정근우는 비록 한화의 프랜차이즈스타는 아니지만 2013년 입단 이후 팀을 위하여 경기 내외적으로 꾸준히 헌신하며 선수단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한화가 전반적으로 지난 몇 년간 잘못된 구단 운영으로 인한 부작용과 투자 실패사례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먹튀도 아니고 4년간 누구보다 제 몫을 한 선수의 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불공정한 '책임 전가'로 비칠 소지가 크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로서 시장 상황은 구단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정근우의 실력 자체는 여전하지만 나이와 보상조건 등의 문제로 타 구단에서 관심을 보이기 어렵다. 베테랑들에게는 더 이상 '실력'만으로 FA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화 구단 측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구단 제시안을 밀어붙일 수 있다. 말이 좋아 협상이지, 사실상 백기 투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근우 선수와 한화, 이대로면 해피엔딩 어렵다

하지만 한화 구단이 정근우를 여전히 '필요한 선수'로 인정하고 있다면 이런 식의 협상방식은 성공하더라도 결코 좋은 선례가 아니다. 계약기간이 아니더라도 계약금과 연봉을 조금 더 배려하거나 옵션을 추가하는 등 대안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스프링캠프가 시작되는 2월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계약은 커녕, 팀내 주축 선수와의 협상이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조건의 문제를 떠나 협상에 임하는 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자신들이 원해서 기꺼이 큰 돈을 주고 영입해왔고 그 선수가 기대에 걸맞은 활약까지 보여줬음에도, 이제와서 상황이 달라졌으니 구단이 제시하는 '조건대로만' 받아들이라고 태도를 바꾼다면 그것은 비즈니스를 가장한 강압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당장 특정선수의 기를 꺾어서 도장을 찍거나 혹은 찍지 않게 만들 수는 있어도 앙금은 남기 마련이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이 구단에서는 아무리 야구를 잘하고 오랜시간 구단에 헌신했더라도 결국 '나이를 먹으면 이런 대우를 감수해야하는가'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한화가 '정근우 없이도 팀을 꾸리는 것을 감수할 자신'이 있다면 최준석과 롯데 구단의 사례처럼 과감하게 보상조건을 포기하고 선수의 타팀 이적을 돕겠다는 통큰 행보라도 보여줬어야했다. 하지만 한화는 몇 달째 칼자루만 쥔 채 그저 지나가는 시간을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정근우가 끝내 한화와 재계약에 합의하더라도 해피엔딩의 모양새가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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