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뜨거운 베트남 축구와 여전히 뜨거운 박항서의 시너지

임성일 기자 입력 2018. 1. 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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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이라크를 꺾고 AFC U-23 4강에 오른 날 거리로 쏟아져 나온 베트남 축구 팬들. 지금 베트남은 축제 중이다. © AFP=News1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지난해 여름, K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올스타전이 베트남에서 열렸다. 7월29일 오후 10시(한국시간) 베트남 하노이 미딩국립경기장에서 K리그 올스타와 베트남 동남아시아게임(SEA Games) 대표팀 간의 친선경기로 진행됐는데, 과거 일본 J리그 선발과의 맞대결은 있었으나 한 수 아래 국가와 겨루는 이런 형태의 올스타전은 최초였다.

프로축구연맹 측은 그해 3월 "올 여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의 올스타전을 구상하고 있다. 이것이 동남아 시장을 대상으로 한 K리그 브랜딩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을 전한 바 있다. 일종의 교두보였다. 올스타전을 통해 단초를 마련한 뒤 축구 열기가 뜨거운 동남아시아 시장을 K리그의 새로운 타깃으로 삼겠다는 복안이었다.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해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시도는 필요했고 또 바람직했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행사를 준비한 쪽도 올스타전에 임하는 선수들도 '경기 결과'는 당연히 한국이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너무 크게 이기면 어쩌나 안일한 마음으로 임했는데, 예상 외 1-0이라는 스코어가 나왔다. 심지어 승자가 베트남이었다.

당시 올스타전을 준비했던 한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직접 보니 모든 것이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동남아시아와 베트남의 축구 열기는 뜨거웠다. 그리고 선수들의 수준도 의외로 높았다.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패한 게 아니다"고 귀띔한 뒤 "베트남 축구를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다소 충격적인 결과와 함께 제법 큰 논란이 일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잠잠해졌다. 그러다 6개월 정도 지난 2018년 1월, 베트남 축구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때 그 관계자의 말처럼, 베트남 축구가 제법 놀라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베트남 U-23 대표팀이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에 올랐다. 지난 20일 이라크와 8강에서 만난 베트남은 정규기간 동안 3-3으로 팽팽히 맞선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했다. 이와 함께 당당히 4강에 진출했다.

아시아 내에서 축구 수준이 떨어지는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변방으로 간주되는 베트남이 조별예선에서 호주를 제압하고 8강에서 이라크까지 꺾으리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믿기지 않은 결과에 베트남은 지금 축제 중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에서 날아온 지도자 박항서 감독에게 뜨거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AFP 등에 따르면 이라크를 꺾고 대회 4강에 오른 날 하노이에는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자동차와 오토바이 경적을 울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당시 광장에 모인 한국의 축구 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이 대회의 4강도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기쁨을 선사한 인물이 2002WC 당시 히딩크 사단의 일원이던 박항서 감독이다.

베트남은 지금 '박항서 열풍'에 휩싸여 있다. © AFP=News1

박 감독은 지난해 10월부터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A대표팀 뿐 아니라 U-23 대표팀까지도 겸하고 있다. 베트남 축구협회에서 큰 권한을 준 셈이다. 그리고 박 감독은 빠르게 결과물을 도출해 내고 있다.

일단 첫 단추를 잘 끼웠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12월 'M150 CUP U-23 국제 토너먼트' 3·4위 결정전에서 태국을 1-0으로 꺾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베트남에게 태국은 라이벌보다는 꼭 꺾고 싶은 '벽'의 이미지인데, 10년 만에 국민들의 숙원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U-23 챔피언십에서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1차전에서 거함 한국을 맞아 먼저 선제골을 넣는 선전 끝에 1-2로 석패한 베트남은 놀랍게도 호주를 1-0으로 제압하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이라크까지 꺾고 4강까지 진출했으니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표현도 무리는 아니다. 생각보다 더 뜨거운 베트남의 축구 열정에 여전히 축구에 대한 애정이 뜨거운 지도자 박항서의 시너지가 발휘한 결과다.

경남과 전남을 거쳐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상주상무를 이끌었던 박항서 감독은 이후 한동안 '실업자'로 지냈다. 40대 후배 지도자들이 리그의 대세로 자리 잡는 상황에서 1959년생(59)의 나이는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걸림돌이 됐다.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식질 않아 2017년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으나 여러모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찾아온 베트남에서의 제안은, 자신에게도 일종의 해방구이자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환상의 호흡을 보이고 있다.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까지 모두 뜨거움에 흥이 겨워있는 모양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큼 무서운 무기는 없다는 것을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가 보여주고 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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