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준의 超야구수다] 타고투저, 공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조회수 2018. 1. 25. 12: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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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3할 타자 2016시즌 40명, 2017시즌 33명. 홈런 2016시즌 1483개(1경기당 2.06개), 2017시즌 1547개(1경기당 2.15개)의 홈런. 최근 수년간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 단순히 타자들이 잘 쳤다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그 문제가 심각하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야구 격언 중에 ‘공은 절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힘(성격, 생각, 의지, 능력 등)을 실어서 타자를 향해 옮겨갈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부터 이 말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보려고 한다.

# 지시 받은 것만 소화하고 마는 투수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경기에서 투수들이 맞이하게 되는 상황들을 떠올려 보자. 무사 1루, 무사 1-2루, 무사 1-3루, 무사 만루 등의 식으로 세어 보면 총 24가지. 주자가 없는 상황은 무사, 1사, 2사 세 가지뿐이다. 나머지 21가지 상황은 모두 주자를 두고 마운드에서 투구를 해야 한다.

불펜에서의 투구연습이 경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면 주자가 있는 상황을 이미지하고 세트 모션에서 많은 양을 투구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연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즌 전체 무주자와 유주자 상황의 비율도 55:45 정도로 큰 차이가 없고,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유주자 상황이 더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 대부분의 투수들은 누구나 아는 분명한 사실에 대해 민감하게 느끼지 못했다. 스프링 캠프의 불펜에서 꽤 오랜 기간 투수의 연습투구를 도왔던 경험이 있지만 감독이나 투수코치의 지시사항이 아니면 투수 스스로 생각해서 주자를 떠올리고 세트 모션으로 투구하는 장면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대부분의 투수들은 자신의 공에 대한 만족감(특히 패스트 볼..와인드 업 투구연습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을 기준으로 투구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변화구 투구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리그 대다수의 투수들이 경기에서 변화구 제구력 부족으로 고전하지만 아직도 많은 투수들은 패스트볼을 중심으로 불펜 투구를 한다. 당연히 변화구 연습의 질과 양에 있어 많이 부족함에도 스스로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저 막연하게 그날의 주어진 공통된 과제를 의무적으로 소화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안타깝지만 이미 결과가 확연하게 보인다. 연습에서 안 되는 것이 경기에서 될 리가 없다.

앞서 아주 단순한 예를 들었지만 연습을 ‘왜’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스스로 고민하지 않고 지시 받고 주어진 것만 소화하는 준비 과정은 투수들의 성장과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에는 몸으로 기억해야 하는 길고 긴 연습만이 그나마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되고 만다. 코칭스탭, 선배 등 주변의 도움도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하고 헛된 수고로 끝나게 되고 만다.

#‘무엇’- ‘타자를 잡는다. 피칭은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이다.’ → '어떻게' - ‘타자의 스윙을 본다. 투수도 타격이론을 알아야 한다.’

2015시즌 가을 마무리 캠프, 비교적 빠르지 않은 공 스피드로 고민하던 한화 장민재에게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과 그 기준이 되는 빠른 공 만들기’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1) 일본 괴물투수 오오타니 쇼헤이(현 LA 에인절스)처럼 선천적으로 신체조건을 타고나 160km의 공을 던질 수 있는가?

일본에서도 20년 만에 1명꼴이라고 했다. 장민재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개의 투수들처럼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2)흔히 말하는 볼 끝이 살아 있는 공을 던질 수 있는가?

관절의 유연성 등 선천적인 부분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투구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큰 도움이 된다. 굳어진(?) 몸과 투구 폼을 바꿔야 하니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 실제 타석에 들어서서 스윙을 하고 쳐보지 않으면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하지만 타자들의 결과로 비교 추측할 수는 있다. 2017 아시아 챔피언 십 결승, 한일전에 등판한 일본 선발투수(다쿠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직구는 평균 140km를 넘지 못했다. 국내 리그에서라면 이정후, 김하성, 구자욱 등이 충분히 쉽게 대응할 수 있는 스피드이지만 대부분 조금씩 스윙이 늦었다. 여기서 말하는 ‘조금씩’의 미묘한 차이가 바로 볼 끝이라고 생각한다.

3) 완급을 이용, 타자에게 공을 빠르게 보이게 한다.

말 그대로 느리고 빠름의 차이이다. 빠른 직구의 ‘급’과 느린 변화구의 ‘완’을 활용해 타자의 눈과 스윙  감각을 현혹, 빠르게 보이도록 하는 방법이다. 피칭술의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다. 두산의 유희관이 리그에서 완급을 가장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투수다.

※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같은 투구 폼과 팔 스윙에서 가장 큰 효과를 얻는다. 두산 유희관의 완급 피칭이 타자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같은 동작과 팔 스윙을 통해 타자가 공을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단, 느린공을 던지기 위해 이미 느린 템포와 동작을 취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4) 코스를 이용, 찰나의 순간이지만 타자의 타격(스윙)의 시간을 뺏는다.

각 코스별로 미묘하게 다른 타자의 타격 포인트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이다. 타자의 스윙을 보고 대 응할 수 있어야 한다. 타격 이론에 대해서도 깊게 알아야 한다. 수준 이상의 제구력이 필요하고 몸쪽 코스를 활용할 때는 용기도 필요하다.

※ 타격은 시간(타이밍)과의 싸움이다. 바깥쪽 변화구를 노리고 기다리던 타자가 몸쪽 직구가 왔을 때 스윙이 대응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경우의 반대도 마찬가지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시간의 차이가 생긴다. 타자는 자신의 스윙을 하기 쉽지 않다.

이와 관련 2016시즌 스프링 캠프 중 장민재가 미디어와 인터뷰에서 “140km를 150km로 보이게 만드는 피칭이 자신이 살 길이다” 라고 말했다. 역시 ‘무엇’에 대해서 외우듯 기억하고 표현했지만 ‘왜’ 라는 의심과 ‘어떻게’ 라는 자신만의 답이 빠져 있었다.

지나치듯  던져진 조언은 어디까지나 수많은 방법론 중 하나였다. 하나의 힌트는 되겠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야구는 그리고 피칭은 애초에 정해진 답 같은 것은 없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과로 타자를 잡아내는 것뿐이다.

투수들이 마운드에서 해야 할 일 들은 정답을 외워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방법론을 얻고 그것을 힌트 삼아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 다음 행동으로 부딪쳐서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 가야한다. 

조금 더 깊이 고민하고 생각했다면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의 본질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시간의 차이’를 파고드는 것이다. 투수의 공도 중요하지만 타자라는 상대 자체에 관해서 보다 자세히 알아야 패턴이 고정되지 않고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본질을 이해하면 다른 길도 볼 수가 있고 또 만들 수도 있다. ‘어떻게’ 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 스스로 만들어 낸 답. 바로 ‘오리지널’, 외로운 마운드에서 살아낼 진짜 힘이 생긴다. 2016시즌 절실하고 열심히 했지만 결국 자신만의 답이 서지 못해 곧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대부분의 성공하지 못하는 투수들이 겪는 안타까운 과정이다.

#투수, 당신이 마운드에서 던진 공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은 경기 질적 측면에서 볼 때 프로야구의 위기다. 스트라이크 존 확대 등은 도움은 되겠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제는 위기 해결의 주체인 투수들이 밖이 아닌 안으로부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경기에서 타자들을 잡아내는 것이 투수들의 직업이다. 갑자기 160km이상을 던지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타자들을 잡아내는 방법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그것에 따라 꾸준히 행동한다면 충분히 많은 답을 얻을 수 있다.

24시간, 365일 단 한 순간도 투수라는 직업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말고 타자를 잡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키워라. (투수가 마운드에서 던진) 공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늘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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