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국인 선수의 'K리그 농단 사건'

2018. 1. 1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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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설’로 몸값 3배 올린 ‘요술’을 아시나요? ■ ‘27만 달러’ 선수서 6개월 만에 ‘80만 달러’ 선수로 둔갑…어떻게? 브라질 출신 공격수, 임대 끝나자 몸값 올리기 혈안 K리그 에이전트들에게 위임장 남발해 경쟁 부추겨 접촉한 구단들과는 서로 다른 말로 문어발식 협상 원소속팀 몰래하다 국내 한 구단과 송사 휘말리기도

브라질 용병 A는 검증된 공격수다. 지난해 초 브라질 원 소속구단으로부터 1년 임대 조건으로 K리그에 합류했다. 당시 연봉은 27만 달러(약 2억8000만원), 임대료 10만 달러(약 1억 원)였다.

그러나 입단 첫 경기에서 무릎부상을 당했다. 당초 K리그의 구단은 계약 해지까지 검토했으나 선수에게는 잔인한 결정이라고 판단, 여름 선수이적시장을 통해 다시 등록하는 조건으로 회복을 기다려줬다. 7월 추가등록 기간에 팀에 합류한 A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쳤다. 다행이었다. 구단은 시즌 막바지가 되자 임대 연장 혹은 완전이적을 검토했다.

하지만 A의 행동은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구단과의 협상 테이블에도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그는 태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큰 오퍼(85만 달러·약 9억 원)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흘려 자신을 K리그에 소개시킨 한국인 대리인을 압박했다. K리그에 남고 싶지만 일본 J리그도 도전하고 싶다며 설레발을 쳤다.

대리인은 태국에서 제안한 조건을 맞춰줄 팀들이 많지 않다는 이유로 차라리 태국으로 갈 것을 A에 권유했다. 그러자 A는 “금액이 적더라도 K리그 팀들의 오퍼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4개 구단이 관심을 보이며 달려들었다. 여기까지는 이적시장에서 나올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A에게는 올해 1월 6일까지 계약된 10여년을 함께 한 브라질 현지 에이전트가 따로 있었다. 원 소속팀과는 2월 1일까지 계약이 남아 있다. K리그로 향할 당시 A는 브라질 클럽 소속이었기에 브라질 현지 에이전트의 도움 없이는 협상을 진행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A는 묘한 주장을 펼쳤다. 현지 에이전트와의 관계를 끊고 싶다는 이유로 한국의 대리인에게 “브라질 에이전트 몰래 협상을 진행하자”고 했다. 한국의 대리인은 주변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 이적을 추진하는 것은 도의에 맞지 않고,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음을 설명했다.

하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A는 요지부동이었다.

A는 한국의 대리인을 통해 여러 K리그 팀들과 접촉하면서 몰래 양다리를 걸쳤다. 다른 국내 에이전트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에어전트들이 열심히 물어온 정보를 역으로 다른 에이전트들에 알려주며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물론 모두에게 위임장은 다 써줬다.

이 과정에서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의 B구단이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A가 위임장을 써준 많은 에이전트 가운데 한 명이 일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비밀이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그 에이전트는 진실을 알았다. A의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양다리 작전은 브라질 소속 구단에도 알려졌다.

그 구단은 B구단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물론 B구단도 속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복잡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은 갖고 있었다. 그러자 A는 계약이 깨질 것을 대비해 또 다른 K리그 C구단과 접촉해달라며 또 다른 대리인에게 협상을 진행시켰다. 현재 A는 B구단으로 마음을 굳힌 뒤 브라질의 원 소속팀에 이적료를 지불하고 나가는 형태로 계약을 풀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C구단에는 “기다리라”고 요청했다고 알려진다.

물론 이 같은 A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겠지만 법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최대한 좋은 조건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상황을 인정한다고 해도 정도가 너무 심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A의 이적에 관여한 에이전트들만 7~8명에 달한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외국인선수 한 명의 농간에 여러 명의 에이전트와 구단이 당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구단들의 모습도 옳지 않다. 단순히 검증된 용병이라는 이유로 구단끼리 과열경쟁을 펼치고 이 때문에 시장가보다 3~4배 높은 금액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당연히 해외시장에서 K리그는 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다보니 K리그 안착을 희망하는 외국인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몸값을 부풀릴 수 있는지 나쁜 사례를 너무나 쉽게 배우고 이를 이용해 돈을 챙기고 있다.

A는 우리 구단과 에이전트들을 호구로 잡고 27만 달러의 몸값을 80만 달러까지 올렸다. 태국은 A의 가치를 최대 55만 달러(약 6억 원)로 판단했다. 그런데 K리그에서는 80만 달러(약 8억5000만원) 선수가 됐다. 이런 것이 바로 K리그의 거품이고 귀중한 외화의 낭비다.

많은 에이전트들은 “K리그 팀과 A가 계약하는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A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냥 끌려간 부분은 짚어줄 필요가 있다. 많은 대리인이 합류하는 문어발식 접촉과 구단들의 과열 경쟁이 야기한 사태”라고 꼬집는다. K리그의 외국인선수 계약에는 너무나 많은 비정상이 존재하고 그 것은 모두 거품으로 변한다. 그래서 외국인선수 눈에는 K리그가 호구이자 봉처럼 보인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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