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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하키계 "단일팀? 정부, 경기 한번 제대로 본적 있나"

박린.김원 2018. 1. 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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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새라 머레이 여자 아이스하키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 관계자들이 아이스하키를 한 경기라도 제대로 본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요즘 국내 아이스하키계 관계자들 입에서 수없이 나오는 말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5, 16일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남북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데 따른 반응이다. 중앙일보는 두 사람이 제시한 근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봤다. 실업팀 관계자 A씨, 아이스하키 업계 관계자 B씨, 모 남자팀 C감독한테 조언을 얻었다. 취재원들 요청에 따라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오전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 아이스하키 훈련장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한수진, 골리 한도희 등 선수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도종환 장관은 "우리 선수가 배제되는 일은 없다. 우리 선수 23명은 그대로 유지되고 플러스알파(α)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다른 나라와 형평성 면에서 어긋난다.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스위스는 벌써 '엔트리 증원은 불공정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일본이 이해해줄지도 미지수"라며 "합의가 이뤄져 엔트리가 늘어도 경기 당일 출전엔트리는 22명 그대로 유지된다. 결국 우리 선수 중 못 뛰거나 출전시간이 줄어드는 선수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낙연 총리는 "선수들이 경기 전체를 계속 뛰는 게 아니라 1~2분씩 계속 교대해가면서 뛴다. 북한 선수가 우리 선수 쿼터를 뺏어가는 게 아니라, 선수단 규모가 커지는 것으로 협의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씨는 "격렬하고 체력 소모가 많은 아이스하키는 필드 플레이어 5명이 4개 조(1~4라인)로 나뉘어 번갈아가며 50초 정도 뛰고 교체된다. 페널티 킬링(수적 열세) 상황에서는 2분은 절대 뛰지 못한다. 종목 특성을 몰라서 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번 5명을 통째로 교체하는 게 아니고 포지션별로 바꾸다 보면 라인이 섞이기도 한다"며 "대회 개막을 20여일 앞두고 조직력을 만들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낙연 총리는 또 "우리 선수들도 큰 피해의식이 있지 않고, 오히려 전력 강화의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대표팀 포워드 한수진(30)에게 메신저를 통해 "단일팀을 추진한다는데 들었는지" 묻자, "다시요? 지금 막 (전지훈련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해서 저희도 처음 듣는 얘기에요. 적어도 5년, 많게는 10년간 올림픽만 바라본 선수들 노력이 헛되어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잠잠해지더니 또 나오네요"라는 답신을 보내왔다. 정부가 단일팀 추진을 발표하던 시각, 선수들은 미국 전훈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를 탄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방문해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 격려를 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도종환 장관은 "양국(남북한) 경기력이 비슷해 북한의 우수 선수를 참가시키면 전력이 보강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새러 머리(30·캐나다) 한국 대표팀 감독은 "북한 선수 중 우리 팀 1~3라인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의 선수는 아무도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은 지난해 4월 강릉 세계선수권에서 북한을 3-0으로 완파했다. C감독은 "아이스하키의 3-0은, 축구의 3-0보다 더 큰 실력 차에서 나오는 점수다. 그때 본 북한 선수 중 우리의 4라인보다도 나은 선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C감독은 "만약 머리 감독이 출전엔트리에 북한 선수를 넣지 않을 경우 북한 선수들이 '우리가 들러리냐'며 반발할 수 있다. 양측 선수들 관계가 더 악화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낙연 총리는 "여자 아이스하키가 메달권에 있는 팀도 아니고, 우리 팀은 세계 22위, 북한은 25위"라고 말했다. B씨는 "남자 아이스하키 출전국 중 최약체로 꼽히는 한국의 백지선 감독도 선수들에게 '우리 목표는 금메달'이라고 동기 부여를 한다.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 대표팀 모토가 '기적'"이라며 "이 총리 발언은 수험생에게 '넌 어차피 명문대에 못 가니 수능 몇 과목은 다른 사람이 봐도 되지 않냐'고 하는 격"이라며 언짢음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합니다.'라는 글에 동의를 표시한 사람이 17일 1만 명을 넘어섰다. 또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은 인권 침해'라며 도종환 장관을 상대로 한 진정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진천선수촌을 방문해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면담했다.

박린·김원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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