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필의 野한Sight]이제는 듣기 싫은 그말 "야구로 보답하겠다"

이상필 입력 2018. 1. 12. 15:59 수정 2018. 1. 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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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진 [사진= 넥센 히어로즈 제공]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야구로 보답하겠다"

매년 한 두 번씩,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선수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도대체 야구가 무슨 잘못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KBO 리그에서는 '사과의 정석'처럼 자리 잡았다. 야구계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남용되면서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말은 야구팬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1순위가 됐다.

하지만 무술년을 맞이한 지 보름도 안 돼, 또 다시 야구팬들은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듣게 됐다. 이번에는 넥센 히어로즈의 1차 지명 선수로 프로 무대를 밟게 된 안우진이 "앞으로 야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경 지식 없이 들으면 신인의 당찬 패기처럼 생각된다.

문제는 "야구를 잘해야 한다"는 안우진의 말이 프로 데뷔를 앞둔 신인의 호기로운 패기가 아니라, 야구로 자신의 잘못을 덮겠다는 인식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안우진은 2018년 데뷔를 앞둔 신인 중 가장 훌륭한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 선수이다. 193cm, 93kg의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고, 150Km/h를 넘는 강속구로 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신중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넥센도 안우진을 품기 위해 무려 6억원의 계약금을 투자했다. 말 그대로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재능이다.

하지만 안우진은 지난해 학교 후배를 야구 배트로 폭행해 물의를 빚었다. 안우진 측에서는 폭행 사건의 원인과 폭행의 강도가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교 폭력, 그것도 운동부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이라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더욱 야구팬들을 아득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된 안우진의 발언이 KBO 신인 선수 오리엔테이션장에서 나왔든 점이다. 야구계에서는 안우진의 넥센 입단이 결정된 이후 공공연하게 폭행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안우진 역시 오리엔테이션장에서 폭행 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 "야구를 잘해야 겠다"라니 야구팬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야구로 보답하겠다" "야구를 잘하겠다"라고 말하는 선수들에게는 '야구만 잘하면 야구장 바깥에서의 잘못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제 막 프로 무대를 밟는 고교생 선수에게까지 말이다.

하지만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선수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야구를 잘하면 자신의 연봉이 오를 뿐, 그동안의 잘못이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말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으로 할 말이지, 물의를 빚은 선수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 없이 넘어가기 위해 오용해야 할 말이 아니다.

현재 안우진에게 내려진 징계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받은 3년 국가대표 자격 정지가 전부이다. 3년 이상 자격 정지를 받은 선수는 향후 영구적으로 대표팀 소집이 금지된다. 하지만 폭행 사건이 고교 시절 일어난 일인 만큼, KBO에서는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징계이다.

그러한 가운데 안우진은 대한체육회에 재심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넥센 구단은 자체 징계를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성난 야구팬들의 민심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우진과 넥센 구단이 명심해야 할 것은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징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야구팬들은 안우진을 KBO 리그에서 퇴출시키라고, 공을 던지는 모습을 영영 보기 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선수가 그 재능에 걸 맞는 자질과 품성을 갖추라고 말하는 것이다.

'야구 선수는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시대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 인식일 뿐이다. 안우진이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야구팬들은 안우진을 진정한 KBO 리그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안우진에게 필요한 것은 야구를 잘하는 것이 아닌 철저한 자기반성과 성찰이다.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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