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인터뷰&] 양현종의 '너는 내 운명'.."아내 거짓말 덕에 KS 완봉승 했죠"

광주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2017. 12. 2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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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의 국내 선발 20승,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의 1-0 완봉승, 8년 만의 통합 우승, 그리고 사상 최초의 한국시리즈·정규시즌 MVP·골든글러브 석권.

2017년 프로야구를 완벽하게 평정한 뒤 쏟아지는 초청장에 쉴 새 없이 시상식을 순회한 양현종(29·KIA)은 이제야 숨을 돌리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성공적인 한해를 보내고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하는 양현종을 통해 가장 행복한 송년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인터뷰 요청에 양현종은 광주 수완지구에 위치한 한 키즈카페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이를 돌보며 마음 편하게 인터뷰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지난 22일, 야구선수 사상 최초의 ‘키즈카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자니 두돌을 지난 지온이가 소리지르며 먼저 뛰어들어왔다. 그 뒤로 눈을 떼지 못하는 아빠 양현종, 그리고 미모의 아내 정라헬(27)씨가 함께 등장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아기 때문에 같이 외출에 나선 라헬 씨는 사진 촬영을 정중히 사양했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나누는 데 흔쾌히 응했다. “아무래도 전보다 많은 팬들이 훨씬 격하게 반겨주시는 점이 달라지기는했지만 한결같은 사람이라 큰 변화는 못 느끼겠다”며 2017년 가장 성공한 남자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양현종은 세상 최고로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준 아내, 어머니, 가족 이야기와 함께 영원히 함께 하고픈 KIA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행복했던 2017년을 기념했다.

KIA 양현종이 지난 22일 광주시 수완지구의 키즈카페 모넬로에서 아내와 딸 지온이를 동반하고 외출해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광주 |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양현종스러운’ 첫만남

‘막내딸’로 불리던 KIA의 애교만점 투수였던 양현종은 어느날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고 아빠가 되더니 부쩍 성숙한 에이스가 되었다.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두 사람의 만남이 궁금했다.

양현종이 막 선발로 출발한 2009년에 우연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13년 다시 인연이 닿아 지인의 소개로 만남을 시작했고 부부가 되었다. 라헬씨가 기억을 돌이켰다.

“2009년 대학 새내기 때 홍보 도우미를 맡았는데 학교에서 KIA 경기에 단체 관람을 갔어요. 학생들을 제가 안내하는데 오빠가 먼저 말을 걸더라고요. 이것저것 묻더니 자기를 아느냐고 물었어요. 그게 궁금했던가봐요. 잠깐 그렇게 지나간 인연인데 2013년 10월에 소개팅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알려진 사람이라 부담스러워 계속 미루다 만나봤는데, 정말 너무 소박한 사람이더라고요. 소개팅을 나갔더니 밥 먹으러 가자며 고기를 구워야 하는 식당으로 가더라고요. 웃음이 나왔어요. 커피를 마신 뒤에는 전지훈련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마트에 같이 가서 장을 보자는 거에요. 그러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산책하고 헤어졌는데 그 하루에 굉장히 편한 사이가 되었어요. 유명한 야구선수라는 데 대한 부담이 첫날 사라졌던 것 같아요.”

■남편 양현종은 이런 사람

두 사람은 2013년 10월 소개로 만나 2015년 12월 결혼했다. 딸 지온이(2)에 이어 지난 8월에는 아들 시온이가 태어났다. KIA의 새로운 에이스로 등장했다가 어깨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은 뒤 2013년부터 서서히 다시 날개를 펴기 시작한 양현종이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한 시점, 아내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라헬 씨는 야구선수의 아내가 갖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점을 가장 감사히 여기고 있다. “만나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항상 잘 하던 선수였고 해마다 성장했기 때문에 결혼하고 저도 같이 칭찬을 받았어요. 제가 내조를 했다기보다 오히려 아기 낳고 오빠가 저를 많이 도와줬죠. 시온이를 낳고 올해가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그 와중에 20승을 하면서 오빠 역시 굉장히 힘들었을텐데도 집에 오면 그렇게 잘 도와주더라고요. 힘들었던 올해 이렇게 제일 잘 해줬으니 그게 정말 고맙습니다.”

양현종은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노력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부진에 빠져있을 때면 밤 늦게 불펜이나 마운드에 나가 수건을 들고 섀도우피칭을 하는 모습은 그의 상징이 되어있다. 아내가 본 선수 양현종도 그러하다.

“시즌 때 밤 11시 전에는 집에 온 적이 없어요. 항상 경기 끝나면 ‘운동 조금만 더 하고 갈테니 먼저 자고 있어’라고 전화가 와요. 제가 봐도 타고나기보다 노력파인 것 같아요. 야구 외에도 뭐라도 하려고 항상 노력을 하거든요. 언젠가 영어 공부하면서 단어장을 만들어놓은 걸 우연히 봤어요. 외국인 선수들과 워낙 친하니까 좀 더 소통하고 싶었대요. 계속 도전하는 사람 같아요.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살면서 점점 그런 사람이라는 점을 느끼고 있거든요. 누가 저보고 ‘로또 맞았다’고 하던데 이제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 잘 만났지. 사실이야. 난 정말 훌륭한 사람과 결혼했어’하고요.”

KIA 양현종의 아내 정라헬씨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하며 남편 양현종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올해 많이 힘든 가운데서도 야구장과 가정에서 모두 잘 해줘 감사하다”며 눈물짓고 있다. 광주 |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아내는 나의 부적

라헬씨가 이야기 하는 동안 지온이 뒤를 따라다니던 양현종이 자리에 앉았다. 딸을 안고 아내와 마주앉더니 아내 자랑을 시작했다.

“결혼을 정말 추천합니다. 정말 결혼하면서 완전히 안정이 된 것 같거든요. 언제부턴가 관중석에 아내가 없으면 불안하더라고요. 그냥 있는 것만으로 의지가 된다고 해야 하나요. 연애 중이던 2015년 일이 기억나요. 어깨가 계속 아팠던 시기에 부산 원정 선발등판일이었어요. 너무 아파서 피칭을 해보고 안 되면 경기 전 급히 선발을 교체할 각오까지 하고 있었는데 라커룸에 들어가보니 아내가 (심)동섭이를 통해서 편지와 장미꽃을 가져다놨더라고요. 나 몰래 부산까지 와준 거죠. ‘안 되겠다, 이건 해야겠다’ 싶어서 그날 등판했어요. 그리고 이겼죠.”

옆에서 듣고 있던 라헬 씨가 웃더니 가장 최근의 기억을 떠올렸다.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만든 결정적 경기, 2차전 완봉승을 거둔 10월26일 아침 이야기였다.

“아침에 너무 긴장을 했더라고요. 선발 때도 항상 제가 와주기를 바라고 어머님도 제가 경기를 보다 화장실에 가면 ‘오빠가 찾을테니 빨리 오라’고 하세요. 저를 일종의 부적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날 아침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던지라고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시온이 변비 때문에 우리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시온이가 엄청난 황금색 변을 시원하게 놓는 꿈을 꿨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죠. 그랬더니 꿈을 사겠다더라고요. 30만원을 덜컥 주는 거에요. 이기고난 뒤에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했죠.”

■MVP만든 또 한 명의 여인

양현종이 등판하는 날이면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1층에서는 경기 뒤 진풍경이 벌어진다. 라헬씨와 지온이, 시온이는 물론 양현종의 부모님과 장인·장모, 누나와 매형, 조카까지 마치 명절의 어느 집처럼 양가 가족들이 총출동한다. 그 중에서도 양현종은 “오늘 아내보다 더 많이 이야기하고픈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고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던지는 날이면 새벽부터 마음모아 아들과 팀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 조순하(59)씨 이야기다. 양현종은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등판하는 날 가장 힘든 사람이 아마 엄마일 거에요. 새벽에 절에 가서 기도하시고, 말 한마디도 조심하느라 경기 끝날 때까지는 아빠와도 대화를 거의 안 하시거든요. 야구장 들어오면 아예 아무것도 안 드시고 휴대폰도 꺼놓으세요. 아들과 같은 마음으로 집중한다고요. 한국시리즈 때는 우리 선수들 이름 일일이 다 부르면서 초를 켜놓고 불공을 들이셨더라고요. 연애할 때 하루는 지정석에 엄마와 아내가 같이 있는 걸 봤는데, 불교신자인 엄마는 두손을 비비며 기도하시고 크리스찬인 아내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에 마운드에서 웃음이 터진 적도 있어요. 이렇게 간절하게 바라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는 잘 될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열심히 던졌죠. 엄마는 고3 때부터 내 뒷바라지만 해주셨어요. 이제 내가 진짜 효도하고 기쁘게 해드릴 차례죠.”

KIA 양현종이 지난 22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 하며 KIA에 남고 싶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광주 | 이선명 기자 57km@kyunghyang.com

■KIA 에이스 양현종의 미래, 그리고 ‘우리’의 미래

그리고 양현종에게 또 하나의 운명, KIA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인터뷰 당시 양현종은 KIA와 연봉 계약을 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늘 그랬듯 마음은 오로지 KIA를 향하고 있었다. 100억대 계약 기회를 놓치고 1년 계약을 하고, 가치가 최고로 치솟은 올해도 굳이 KIA 잔류를 먼저 선언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양현종은 이렇게 설명했다.

“못 떠나겠어요. 내 최종 목표는 영구결번인데 그 꿈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게 결코 소박한 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KBO리그에서도 인정받고 싶지만 이미 어마어마한 선수들이 정말 많잖아요. 최소한 타이거즈 팬들에게만은 인정받고 싶거든요. 지금이 내 전성기겠지만 훗날 바닥에 떨어져있을 때도 타이거즈 팬들만은 나를 인정해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내가 내세울 것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하고 싶은 야구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사랑하는 가족과 태어난 곳에서 집도, 차도 사고 많은 연봉 받으면서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으면 최고로 성공한 것 아닌가요. 여기서 이렇게 사랑받았는데 다른 팀에 가서 감히 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KIA에 남겠다는 거에요.”

이미 KIA 에이스로 마음속 ‘종신계약’을 맺고 있던 양현종은 인터뷰 이후 딱 엿새 뒤 계약서에 사인했다. 길게 끌어오던 협상을 마치고 23억원에 계약해 KIA 팬들에게 또 변함없는 모습으로 인사할 수 있게 됐다.

야구인생 최고 정점에 올랐지만 좀 더 크고 멋진 선수가 되기를, 그리고 가정에서는 더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를 꿈꾸며 부부는 똑같은 새해 소망을 주고받았다.

“피곤해도 자려고 누우면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요. 앞으로도 딱 지금처럼만, 다치지 않고, 아이들도 아프지 않고, 무난하고 평범하게 별일 없이 살면 좋겠습니다. 그게 행복 아닐까요.”

<광주 |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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