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선수 내보내기

조회수 2017. 12. 18. 11: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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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그의 SNS 팔로어는 200만에 가깝다. 하지만 부지런한 활동량은 못 된다. 조국 멕시코에 사회적 이슈가 있거나, 가족들과 특별한 일(여행)이 있을 때 잠깐씩 등장하는 정도다. 그런 그가 얼마 전 묘한 트윗 하나를 올렸다. LA시간으로14일, 그러니까 지난 주 목요일이었다. 사진에 달린 멘션은 아주 간단했다. ‘다저스에서의 첫번째 타석’이었다.

그때만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별 다를 게 없었다. ‘기억난다. 그날 거기 2층에서 보고 있었어’ ‘당신이 친 파울볼을 남자 친구가 잡아줬어요’ ‘이번 월드시리즈에 당신이 있었어야 했는데…’. 따위였다.

이틀 뒤. 오피셜이 떴다. 아마도 이번 스토브 리그 동안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가 천사의 도시를 떠난다는 발표였다. 행선지는 대륙의 반대편이다.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였다. 그곳에서 다시 양도지명 절차를 거치는 중이다. 아마 원하는 팀이 있다면 또 다시 적을 옮겨야 할 것이다. 그가 올렸던 트윗에 댓글이 하나 추가됐다. ‘세상에,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군요.’

곤잘레스가 트레이드 발표 이틀 전에 올린 SNS.                                               A. 곤잘레스 트위터 캡처

그가 다시 SNS에 등장했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다. “내 역할이 벤치로 제한됐기 때문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FA 시장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다. 그곳에 어떤 기회가 있는 지 알고 싶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 지 찾아보겠다. 이곳에서 함께한 5년은 놀라운 시간이었다.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팬들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큰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세상에,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군요.’

월드시리즈를 앞둔 10월 말이었다. 유력지 LA타임스에 기사 하나가 실렸다. 클럽하우스의 리더가 휴가로 자리를 비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가족들과 유럽 여행을 가야한다는 이유였다. 물론 로스터에서 제외돼 전력상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역사적인 대사가 코 앞인데….

이를 두고 궁시렁궁시렁 말들이 많았다. 당사자의 해명은 이랬다. “팀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구단측 견해는 어땠을까. 파한 자이디GM(단장)은 아주 완곡하게 표현했다. “우리는 완벽하게 그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는 이 조직(다저스)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 존재입니다. 프런트 오피스와 플레이어, 코칭스태프, 그리고 닥(Docㆍ데이브 로버츠 감독)과도 언제든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한 연락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늘 뒤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죠.”

어쩌면 그 무렵, 아니면 그 훨씬 이전부터 예정됐던 수순이었는 지도 모른다. 다저스는 이번 겨울에 꼭 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페이롤(인건비) 절감을 위한 조치였다. 3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연봉을 지출하는 그들은 매년 3,000~5,000만 달러를 사치세로 헌납했다. 벌써 5년째다. 그래서 세율도 최고치(50%)를 감당해야 한다. 때문에 연봉 총액을 (사치세 한도인) 1억9,700만 달러 이하로 낮추는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야 세율이 리셋되면서 17.5%로 떨어진다. (2년째 30%, 3년째 40%, 4년째부터 50%)

이 과정에서 저효율 고액 연봉자에 대한 정리는 필수적이다. 첫번째 대상이 누구라는 것도 너무나 뻔했다. 문제는 과정이다.


다시 그의 트위터로 가보자. “구단주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만났던 누구보다 좋은 사람들이이었다. 특히 앤드류(프리드먼 야구부문 사장)는 모든 과정에 걸쳐서 나와 의견을 나누며 진행했다.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는 상황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루게릭병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페블 비치 골프장은 미국 서해안의 절경을 따라 디자인 된 곳이다.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덕분에 US오픈을 비롯한 여러 메이저 대회 개최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한 명 있다.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나중에 성공하면,꼭 한 번 저 곳에서 라운딩을 즐겨보리라.’ 몇 달 전부터 예약 사이트를 닳도록 드나들었다. 드디어 OK 사인이 떨어졌다. 먼 곳에 있는 그의 친구는 이날 약속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드디어. 신나는 당일이 됐다. 태평양의 깊은 푸르름을 만끽하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이봐 스티븐. 자네 다른 팀으로 가게 됐네. 고향에서 가까운 곳이야.”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26살짜리 외야수는 만감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어쩔 수 없었다. 시원 섭섭하다(bittersweet)는 말이 딱 맞을 것이다. 카디널스에서 잘 나가는 유망주였다. 올해 조금 부진했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충성스러운 팬들이 많은 팀이었다. 그곳을 떠나서 가야 할 곳은 오클랜드였다. 아시다시피 머니볼을 추구하는 빡빡한 곳이다. 그럼에도 축하 인사는 줄을 이었다. 그의 개인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스코티가 어머니와 목장을 방문한 뒤 올린 사진.        피스코티 SNS 캡처

지난 5월이었다.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소식을 접했다. 어머니가 루게릭 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처음엔 오진일 거라고 생각했죠. 믿을 수 없었어요. 한동안 (게임에) 집중할 수 없었죠. 며칠 뒤에 코치에게 털어놨어요. 감독(매서니)에게도 얘기하라고 하더라구요. 옳은 결정이었어요. 팀에서는 마음을 추스릴 시간을 주더라구요.”

그에게는 롤러코스터 같은 시즌이었다. 개막 초반인 4월에는 카디널스와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6년간3,350만 달러짜리였다. 이 돈으로 7월에는 세인트루이스 근교에 135만 달러짜리 집도 장만했다. 근사한 수영장이 딸린 저택이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가장 큰 낙은 아들이 뛰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럴 때 편하게 머물 곳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달려갔어요.” 본가가 있는 오클랜드 근처의 플래즌튼이라는 도시였다. 대학(스탠포드)까지 줄곧 성장한 곳이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오클랜드까지는 비행기로4시간30분 거리)



“Manners maketh man”

물론 카디널스의 결정이 오로지 휴머니즘에 입각한 것이라고 미화할 수는 없다. 마르셀 오수나를 마이애미에서 데려오면서, 외야 정리는 어쩔 수 없었다. 그 여파로 오클랜드와 트레이드가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의 과정에서 다양한 옵션이 있었을 것이다.

“존 모젤리악 부사장이 그러더군요. ‘고마워 할 필요 없다고. 감성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니라고.’ 그런데 다들 알잖아요. 많은 소문이 있었죠. 그 중에 카디널스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려준 것이죠.” (스티븐 피스코티)

“그럼요. 확실히 그렇죠. 카디널스는 (더 이익이 될) 많은 다른 카드가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 가족에게 큰 선물을 준 것이죠. 두 구단 모두에게 감사드릴 뿐이죠.” (아버지 마이크 피스코티)

협상 파트너였던 빌리 빈 A’s 부사장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트레이드 논의 중에는 그 얘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나도 그렇고, 존(모젤리악)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저들이 그를 가족에게 보내주려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일을 하면서 다시 한번 카디널스라는 조직의 우아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다저스와 애드리안 곤잘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랜동안 팀의 간판 스타였다. 또 클럽하우스의 리더였다. 게다가 전방위적인 트레이드 거부 조항으로 보호되는 선수였다 .구단 마음대로는 한 치도 어쩔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합의에 도달됐다. 와중에 사소한 시끄러움도 없었다.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스탠스를 잃지 않았다.

뭐, 꼭 미국 사람들만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도 가끔은 못지 않다. 아름답게 보내주고, 멋지게 떠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헤어짐이 많은 계절은 여전히 시끄럽다. 그리고 부산스럽다.

강하게 던지고, 멀리 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리그의 수준을 결정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 중에는 배려와 존중같은 단어들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유명한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Manners maketh man.’ (예절이 사람을 만든다.)

백종인/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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