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항의 대응 위해.. 교사들 녹음하고 보험까지

성유진 기자 2017. 12. 1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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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세웠는데.. 훈육했다고.. 따지는 학생·학부모 많아
수업 내용 녹음 등 자구책.. 소송 대비 보험 가입도 급증
77곳, 1학교 1고문변호사 도입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35)는 최근 휴대전화에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수업 내용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학부모로부터 받은 항의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유난히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던 아이에게 30초가량 손을 들게 했다. 며칠 뒤 "왜 우리 아이를 벌 세웠느냐"며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학생이 그날 했던 행동을 설명했지만, 학부모는 "얌전한 아이인데 그렇게 심하게 떠들었을 리 없다.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고 했다. 이 교사는 "괜히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며 "이후 혹시 모를 항의에 대비해 수업 내용을 녹음하고 있다"고 했다.

교사를 상대로 한 학부모 항의가 늘면서 녹음 등 자구책을 마련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 김모(59)씨는 "정당한 교육 방식에도 항의 전화를 하는 학부모들이 늘어 최근 모든 교내 전화기를 녹음 기능이 있는 것으로 교체했다"며 "3년 전보다 항의성 전화가 2배 이상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에 접수된 교권 침해 상담 사례는 2006년 179건, 2011년 287건, 2016년 572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교총에 접수된 상담 내용을 살펴보면 상당수는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를 무조건 선생님 책임으로 몰아세우고, 정당한 학생 지도에도 불만을 품고 담임 교체를 요구하는 것 등에서 비롯됐다. 한 학부모는 스케이트 강습을 수강하던 초등학생 자녀가 혼자 연습하는 시간에 넘어져 발목이 부러지자 "학생 안전에 소홀했다"며 사건 발생 2년이 지나 담임교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해 7월에는 자녀 말만 믿고 학교로 달려온 학부모가 보건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린 사건이 있었다. 보건교사가 다른 학생에게 한 '2차 소변 검사자'란 말을 해당 학생이 자기에게 한 말로 잘못 알아듣고 부모에게 전달하자 "결과를 늦게 알려줬다"며 항의한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권 침해와 직무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는 교원의 상담 건수는 올해 상반기에만 3500여 건에 달했다.

요즘 교육청에서 행해지는 교사 연수에서 강사로 나선 선배 교사들은 후배 교사들에게 가장 먼저 "기록을 꼼꼼히 남기라"는 조언을 한다고 한다. '휴대전화로 (교사와 학부모·학생) 양쪽 목소리가 모두 들리도록 녹음해라' '육하원칙에 따라 일지를 꼼꼼하게 작성해 놔라' 같은 내용이다. 교권 침해 관련 상담을 맡고 있는 한 고등학교 교사는 "요새는 변호사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무조건 '소송하겠다'고 우기는 학부모가 많아졌다"고 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이모(31)씨는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학생 인권 침해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겠다는 식으로 협박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했다. 경기도 지역 초등학교 교사 김모(31)씨는 "'선생님이 이유도 없이 우리 애를 혼냈다'고 따지는 학부모에게 자녀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왔는지 기록해 둔 학급일지를 내밀면 수긍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사고가 날 때 "왜 예방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며 따지는 학부모들 때문에 기초적인 내용까지 기록하는 교사들도 있다. 전북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32)는 "부모님도 볼 수 있는 알림장에 '횡단보도 건널 땐 손 들고 건너세요' 같은 내용까지 적어 놓는다"며 "아이가 사고라도 나면 '왜 학교에서 안전교육을 안 했느냐'고 하시는 부모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사들이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늘자 교사 전용 보험 상품도 나왔다. 학부모·학생 등의 고소·고발 시 교사의 소송 비용·중재 비용 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동부화재가 만든 '참스승배상책임보험'은 계약 건수가 2012년 1411건, 2014년 2379건, 2016년 4395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더케이손해보험에서도 비슷한 보험인 '더케이 교직원 법률비용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에만 628건 계약됐다.

교원단체에선 교사들의 법률 문의가 늘자 '1학교 1고문변호사' 제도를 마련했다. 학교마다 담당 변호사를 지정해주고 빠르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올해 77개 학교에서 운영 중이다. 하윤수 한국교총 회장은 "학교 현장의 교권 침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며 "악성 민원으로 교사의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학교 민원 처리 매뉴얼을 보급하는 등 교육부 차원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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