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의 빌드업6] 동아시안컵에서 신태용호가 얻은 것

조회수 2017. 12. 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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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 3경기 종합 분석 및 리뷰

사실상 결승전으로 치러졌던 한일전을 4-1 대승으로 장식하며 남자 축구대표팀이 우여곡절 끝에 동아시안컵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번 동아시안컵 3경기를 통해 월드컵을 준비하는 신태용호가 얻은 것을 분석해본다.

사진 출처: MK


1. 멀티 포메이션

현재 월드컵을 준비하는 팀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 2~3개의 메인 포메이션을 정해놓고 상대에 맞춰 맞춤 전술을 구사하는 팀들. 또는 2~3가지의 멀티 포메이션을 가동하는 것이 전력상 무리라고 판단되는 경우, 하나의 메인 포메이션을 정해놓고 대신 그 완성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팀들의 경우가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경우의 가장 성공적인 예를 모두 우리가 맞닥뜨릴 F조 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 독일을, 후자의 경우 스웨덴을 꼽을 수 있겠다. 독일은 가장 강한 메인 포메이션을 꼽기 힘들 정도의 전술적 유연함과 누가 선발로 나서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20~30명의 선수단 뎁스가 세계 최고인 팀이다. 반면 스웨덴은 예선 전경기를 동일한 포메이션(4-4-2 or 파생된 4-4-1-1)과 선수구성으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강팀들을 잡아내고 본선에 진출했으며 부상 또는 징계로 어쩔 수 없이 라인업에 변화를 가져갈 때도 빠진 자리에 같은 성향의 2번째 옵션을 채워놓으며 가장 변화가 적은 전술-선수구성으로 가장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팀이다.

신태용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전형적인 전자의 경우(멀티 포메이션)을 가동했는데, 전술적으로 아이디어가 많은 젊은 신태용 감독이 주어진 시간 + 테스트 기회는 한정적이지만 베스트 11은 전혀 정해지지 않은 힘든 상황에서 대표팀을 맡았기에 하나의 제한된 상황보다는 여러가지의 최대한 복합적인 상황을 놓고 옥석을 가리기 위한 승부수이기도 했다.

한 팀의 전체 공격시도 중 몇 퍼센트가 위협적인 슛까지 마무리 되느냐를 따지는 ‘공격 완료율’은 그 팀의 전술적인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는 통계 중 하나로, 보통 강팀의 경우 10~15%의 완료율을 보이며 상대팀의 ‘공격 완료율’은 5% 정도로 제한한다. 대한민국이 보여준 중국, 북한, 일본전 세 경기의 공격 완료율은 각각 7%, 8%, 12%로써 상대팀의 4.9%(중), 1.5%(북), 2.99%(일) 보다 월등했으나 상대의 전력이 모두 한수 아래였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조금 더 나은 경기력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2. 일본전 승리과정과 4-4-2

만약 신태용 감독이 멀티 포메이션에서 원 포메이션 체제로 방향을 수정하게 된다면 그 주인공은 의심의 여지 없이 4-4-2가 될 것이다.

가장 단순한 두줄 수비 형태의 플랫 4-4-2 역습 전술은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던 지난 11월 두 차례 평가전 뿐만 아니라 이번 일본전 대승까지 이끌어내면서 현 시점 대표팀에 가장 잘 맞는 옷인 듯하다. 특히월드컵 조별리그는 3경기 모두 볼 뒤에 11명 전원이 수비에 가담하는 시간이 많을 것인데 수비적으로 현 대표팀에 가장 현실적인 갑옷이기도 하다.

킥오프 직후 실점으로 공격적인 운영이 강조됐던 일본전 4-4-2는 김신욱을 활용한 롱볼, 전통적인 대표팀의 강점인 측면 플레이, 그리고 역습까지 세 가지 공격패턴이 모두 두드러지며 4골을 뽑아냈다. 그 과정에서 이근호의 체력이 떨어진 시점에 염기훈이 들어가면서 4-3-3으로, 일본이 공격의 숫자를 늘리자 정승현을 투입하며 3백으로 전술을 바꾸며 승리를 굳힌 신태용 감독의 머리속에는 월드컵본선 시나리오 한편이 뚜렷하게 스쳐갔을 것이다. 최대한 대등하게 승부를 끌고가다 후반 마지막 15~25분, 필요에 따라 공격 승부수를 던지거나 수비를 두텁게 쌓으면서 승리를 마무리하는,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유일한 16강 진출 시나리오가 말이다.

김신욱이 있지만 다양한 공격패턴. 대표팀의 지향목표.


3. 불안한 수비. 그리고 장현수의 역할.

중국-북한전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수비는 불안했다. 어렵게 만들고 쉽게 내주는 장면이 반복됐다. 기본적인 간격유지와 커버플레이가 이뤄지지 않자 4백, 3백과 같은 전술적인 선택은 의미가 없었다. 크로스가 박스안으로 날아오기만 해도 불안했고 실제로 실점도 그렇게 허용했다. 이 반복되는 문제를 신태용 감독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문제를 아는 것과 실제 피치 위에서 해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전세계 내노라하는 명장들에게도 시간과 지원이 필요한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적인 감독들이 경질당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사실 중앙수비수는 생각할 것이 굉장히 많은 포지션이다. 경우에 따라 공격수는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기만 해도 경기가 풀리는 경우가 있다. 반면 수비수는 자신의 위치 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위치, 전체 라인의 간격과 위치, 상대 선수들의 위치, 특히 상대 공격수의 특성과 이에 따른 수비라인의 재조정을 매순간 판단해야 하며 현대축구에 이르러 수비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것을 요구 받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커뮤니케이션과 지시를 내려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수비진 리더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모든 좋은 팀에는 확실한 수비라인 리더가 있다. 스완지가 확실한 수비진의 리더인 애쉴리 윌리엄스와 닐 테일러를 팔고 나서 올시즌 어떤 상황인지, 바로 그 윌리엄스와 테일러를 주축으로 강력한 수비를 구축했던 웨일즈가 2016 유로에서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스완지 최하위 20위, 웨일즈 무려 4강).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의 은퇴 이후 대한민국 수비는 항상 리더에 목말랐다. 그리고 그 염원과 갈증은 자연스레 확실한 패인을 찾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고 장현수 선수는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반면 장현수의 실력과 장단점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코치들은 항상 장현수를 믿었다. U-20, U-23, 성인대표팀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감독들은 꾸준히 장현수를 중용했으며 나아가 수비진의 리더 역할을 맡겼다. 평생 축구를 한 여러 명의, 다양한 성향의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가지고 있는 자원 중 최고라고 다양한 연령대에서 판단한 것이다.

물론 장현수 선수의 경기력이 좋지 않을 때도, 경기를 망쳤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전 70분에 나온 다음 장면을 보며 장현수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파할 시간 없는 장현수의 라인 컨트롤

온몸으로 일본의 슛을 막아내고 아파할 틈도 없이 그 시점 수비진 전체의 가장 올바른 액션; 라인을 끌어올리기 위해 동료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장면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한 장면이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이보다 훨씬 힘든 여정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쉬운 비판상대를 찾기 원하는 여론은 ‘쟤 때문에 졌어’라고 장현수를 얼마든지 욕할 것이기 때문이다.


4. 이재성과 조헤아

이번 동아시안컵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키플레이어를 꼽하달라’라는 질문에 단 한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다.

“저는 해외파가 모두 발탁된 상황이었어도 이재성 선수를 꼽았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항상 대답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a. 좁은 공간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해 줄 수 있는 선수

b. 플레이 템포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 볼을 운반해 줄 수 있으며

c. 받는 선수가 더 쉽게, 더 좋은 상황으로 터치할 수 있게 패스할 수 있는 선수,

d. 결정적으로 한국대표팀에 반드시 필요한, 공격만큼 수비도 잘하는 선수

는 이재성 선수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번 동아시안컵 최다 찬스창출과 함께 MVP를 수상한 이재성 선수에게는 딱히 추가 분석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최다 공격횟수. 시도>전개>완료로 갈수록 더 결정적인 슛 찬스를 만든 것을 의미


골키퍼 자리는 최근 춘추전국시대였지만 한달 전 대표팀에 데뷔한 조현우 선수가 3경기만에 싹 정리를 한 느낌이다. 골키퍼가 매 경기 바뀌는 시나리오는 수비진의 안정감 구축에 굉장히 부정적으로 작용했고, 사실 대표팀 수비의 들쭉날쭉한 경기력에는 이와 같은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이번 동아시안컵의 가장 큰 결실은 강력한 주전 후보로 떠오른 조현우 선수의 활약이 아닌가 한다.  선방과 빌드업 부분 모두 발군의 능력을 보여줬는 데, 이는 신태용호가 포기할 수 없는 두 핵심 영역이기 때문이다.

5. 긴 분석기사를 마치면서

한국에는 발로텔리와 같은 성격의 선수가 없다. 모든 사람이 욕해도 “Why always me?” 라며 뼛속까지 ‘그래도 내가 짱이야’라는 똘똘 뭉친 자신감을 경기력으로 승화시키는 유형의 선수가 없다. 제 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한국 선수들을 평가했던 외국인 코치들은 하나같이 “매우 프로페셔널하며 성실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순한 플레이를 한다”는 류의 평가를 내렸다. 패배때마다 따라다녔던 “투지가 없다” “열심히 안 뛴다” “설렁설렁 한다”는 비판은 가끔 공감하기 힘들 때가 있었다. 오히려 스포츠 사이언스 부문에 대한 축구선진국과 대한민국의 투자 격차와 실력이 최근 10여년간 더욱 벌어져 ‘체력’ 부분에서의 차이도 더 벌어진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 3경기동안 75분 이후로는 공격 완료 빌드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는데, 체력적인 저하와 교체카드의 효과가 미미했던 부분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75분 이후 위협적인 슛으로 연결된 빌드업 전멸


이영표 해설위원은 끝까지 뛰는 악바리 정신만이 정신력이 아니라 '더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절대 실수하면 안되는 압박감과 싸울때도 100% 실력을 내는 정신력이 진짜 정신력'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 부분이 대표팀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며 ‘와르르’ 무너지는 경기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격했나.

비판 또는 비난을 하는 마음도 한국축구가 더 잘하길 바라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금 시기는 그 사랑을 사랑으로, 욕 대신 응원으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그것이 도의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랬을 때 대표팀이 더 나은 경기를 펼칠 확률이 높아서이기 때문이다. 사실 ‘도의적’ 같은 뜨뜻미지근한 것은 끼여들 틈이 없는 적자생존의 땅이 월드컵이다. 유럽-남미팀들은 순수 축구 실력도 한 두수 위지만 승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거리낌 없이 쓰는 것은 두 세수 위다.

1월 전지훈련, 3월 평가전, 그리고 6월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지만 적어도, 적어도 우리가 준비한 것을 100% 보여주는 후회 없는 승부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후회 없는 승부가 또 다시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의미 있는 대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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