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셋이 외로이 지키는 슬픈 '미역섬'

2017. 12. 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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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재언의 섬 ⑫ 곽도

진도 맹골군도에 속한 유인도 중 하나
자연산 미역 많아 '미역섬'으로 불려
68년 해상사고 뒤 주민들 떠났으나
갯닦기·미역 채취 때마다 찾아와

[한겨레]

진도군에 속한 섬 가운데 가장 멀리 떨어진 곽도는 가파른 갯바위가 둘러싸고 있어 변변한 선착장조차 갖추지 못한 척박한 섬이다. 곽도 항공촬영 사진. 진도군청 제공

전라남도 진도에서 40㎞ 정도, 3시간이 족히 넘는 뱃길을 달려가면 가장 멀리 떨어진 외딴섬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드넓은 동중국해가 펼쳐진다. 축구장 20개를 합쳐놓은 정도의 자그마한 섬의 이름은 곽도. 행정구역상으로 전남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곽도는 이웃한 맹골도, 죽도와 더불어 맹골군도를 이루는 섬 중의 하나다. 맹골군도에 속한 3개의 유인도 중에선 내열발전소가 설치돼 있는 맹골도가 주섬이고, 맹골도에서 1㎞ 떨어진 곽도와 죽도는 그 부속섬이다. 그나마 낚시꾼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진 맹골도와 달리, 곽도는 진도뿐 아니라 조도면 주민들조차도 낯설어하는 외딴섬이다.

섬의 이름이 곽도로 정해진 유래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섬 주위에 자연산 미역이 많이 자생하므로 ‘미역섬’이라고도 불렸는데, 진도 사람들이 미역을 ‘곽’이라 부르는 점에 비춰볼 때 미역섬을 무리하게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곽도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예부터 이 섬에선 콩을 많이 재배해 주식으로 삼았다 해서 콩잎 곽(藿)자를 붙여 곽도라 이름 지었다는 내용이다.

해양탐사선 등대호가 곽도 주변 바다를 둘러보고 있다. 이재언 제공

주민등록상 인구는 9가구 16명

진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 이외에도 곽도가 세상에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가파른 갯바위와 높은 파도로 인해 사람의 접근을 함부로 허락하지 않는 섬이 바로 곽도다. 변변한 선착장도 없는 탓에, 날씨가 조금만 나빠도 여객선이 섬 코앞까지 왔다가 되돌아가기 일쑤다. 사람이 정착해 살기엔 더없이 불리한 조건이다. 그래서일까. 1970년대만 해도 60여명이 오순도순 모여 살았다고 하는 곽도의 현재 주민등록상 인구는 9가구 16명. 그나마 상주인구는 할머니 3명뿐이다.

곽도가 외로운 할머니의 섬이 된 데는 아주 슬픈 사연이 있다. 곽도가 자리 잡고 있는 맹골수역은 잘 알다시피 2014년 4월 세월호 비극이 일어난 현장이다. 약 50년 전인 1968년 가을에도 바로 이곳에서 9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해상사고가 발생했다. 목포에서 친지 결혼식을 치른 곽도 주민 6명이 느림보 여객선을 타고 오후 늦게 종착지인 인근 서거차도까지 왔다. 당시엔 여객선이 곽도까지 운항하지 않던 시절이라, 이들은 서거차도에 대기시켜놓은 돛단배에 옮겨 타고 곽도로 향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는 심산에서였다. 비극은 삶의 터전이자 최종 목적지인 곽도를 코앞에 둔 맹골수도 끝지점에서 일어났다. 곽도를 불과 700m 앞두고 바람과 파도가 엇갈리면서 그만 돛단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섬에 남아 있던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참사였다. 이 사고로 마을 주민 6명과 학교 교사 등 9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주민이 돌김을 말리고 있는 모습. 이재언 제공

지금도 곽도에 살고 있는 황경업(82) 할머니도 당시 47살이던 남편을 잃었다. 이웃 김두래(83) 할머니도 이 사고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이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사람들은 하루빨리 기억에서 지워내려는 듯 하나둘씩 섬을 떠났다. 얼마 되지도 않는 주민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 두 할머니를 포함해 3가구 3명만이 섬에 남게 된 사연이다.

곽도를 처음 찾아간 건 2008년 1월. <문화방송>(MBC)의 공익프로그램 ‘느낌표’ 팀들과 방문했을 때다. 시간을 되돌려놓은 듯, 1960~70년대의 슬레이트 지붕에다 나무로 불을 지펴 밥을 지어 먹고 샘에서 물을 물동이로 길어오던 장면이 생생하다. 워낙 외딴섬인데다가 선착장을 만들 수 없는 가파른 지형이라 곽도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척박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요즘엔 섬사랑10호가 하루 한 차례 진도항(팽목항)을 떠나 정부의 명령항로인 이곳에 들어갔다가 돌아나온다. 90년대 말엔 전기도 섬에 들어왔다. 맹골도에서 철탑을 통해 전기를 끌어다 쓰는데, 1년치 전기료 20만~30만원을 3가구가 공평하게 나눠 낸다. 두달에 한번 병원선이 곽도를 찾아 종합검진도 해준다.

비록 이름조차 생소한 섬이지만, 전국에서 최고 수준의 미역을 생산한다는 자부심만은 가득하다. 여름철만 되면 잠시 섬을 떠났던 나머지 6가구 주민들도 미역 채취를 위해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이들이 다시 섬으로 들어오는 건 정월. 이른바 ‘갯닦기’를 위해서다. 이때면 육지의 먹거리도 가져와 섬에 남은 할머니들과 정다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갯닦기란 겨울에 바위를 닦는 공동작업으로, 예부터 마을의 필수적인 일이었다. 마치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뜻깊은 의식과도 같다. 바위에 붙어 있는 지충이라는 잡초와 파래를 없애는 것인데, 이렇게 해야 미역 포자가 잘 들러붙는다. 추운 겨울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는 작업이라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이래야만 여름철 미역 풍년을 기대할 수 있기에 저마다 정성을 다한다.

여름철이면 섬을 떠났던 주민들도 돌아와 너나없이 미역을 딴다. 이재언 제공
1990년대 들어 곽도에도 전기가 들어오긴 했으나, 생할여건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이재언 제공

진도군, ‘여자의 섬’ 집중 홍보키로

곽도에서 해마다 여름철 생산하는 미역은 약 20톤 정도. 파도가 거세 톳과 미역을 양식할 수 없는 대신 자연산이라 품질이 매우 우수해 다른 섬에서 생산된 것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에 팔린다. 곽도에서 나는 미역은 발이 두껍고 쫄깃쫄깃해 20장 한 뭇에 60만원 정도를 받는다.

얼마 전 진도군은 곽도를 ‘여자의 섬’으로 집중 홍보하기로 했다. 임산부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좋은 자연산 미역이 자랑거리인 섬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진도곽’ 중에서도 으뜸가는 자연산 미역이 풍부한 곽도를 ‘여성을 위한 특산품이 생산되는 미역섬’이자 여성들만의 체험 현장으로 널리 알리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곽도가 무인도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섬에 남은 세 분의 할머니들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도록 바라는 수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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