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정신승리' 신태용 감독의 발언, 왜 팬은 우려할까

이준목 2017. 12. 1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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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대표팀 경기력도 불안한데.. 팬들 더 불안하게 하는 신태용 감독의 '말말말'

[오마이뉴스 글:이준목, 편집:오수미]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한일전을 앞둔 축구 대표팀의 신태용 감독이 13일 오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웨스트필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은 프로 사령탑 시절부터 언론에 친화적인 감독으로 유명했다. 다른 감독들이 조심할 만한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고 거침없이 발언하는 것은 물론이고 쇼맨십도 뛰어나 언론에 여러 가지 화젯거리를 제공하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신태용 감독의 언행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팀이 잘 나갈 때는 감독이 다소 튀는 언행을 하더라도 자신감이나 개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태용 호는 출범 이후 부진한 성적에 더해 여러 가지 구설수까지 겹치며 아직까지 팬들의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신태용 감독의 섣부른 발언들이 오히려 논란을 확산시키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사실 신 감독이 가벼운 언행으로 구설에 오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올림픽 대표팀 시절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승리를 자신하며 "우승하면 한복을 입고 세리머니를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역전패를 당해 지금도 신태용 감독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남아있다.

자화자찬 늘어놓고, 비판하지 말라는 신태용 감독

슈틸리케 감독의 뒤를 이어 A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는 '페르시안'과 '졸전' 발언으로 잇달아 도마에 올랐다. 이란과의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고전 끝에 0-0 무승부에 그쳤다. 신태용 감독은 "잔디 상태 때문에 경기력에 지장이 있었다"고 변명했다. 또 "페르시안들은 잔디가 좋지 않아도 치고 나가는 힘이 있다"며 근거 없는 인종적 특성을 내세워 팬들을 황당하게 했다.

힘겹게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짓고 난 직후, 대표팀 경기력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팽배했다. 이에 신태용 감독은 "졸전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말라"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은 우즈벡과의 최종전에서 무득점 무승부에 그치며 역대 월드컵 예선 사상 최초로 '원정 무승'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달성했다. 이란이 카타르와 무승부를 기록해준 덕에 어부지리로 간신히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론과 팬들의 근거 있는 비판에도 고깝게 반응한 신태용 감독을 두고 "졸전을 졸전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다니", "팬들이 홍길동이냐"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신태용 감독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역대 대표팀 감독들도 말실수로 여러 차례 도마에 올랐다. 전임 슈틸리케 감독만 해도 "한국에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 "무슨 전술을 써야 했는지 기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나는 나가라고 하면 운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가겠다" 등 무수한 망언을 쏟아내 '아무말 대잔치'라는 조롱을 받아야 했다.

홍명보 전 감독은 "내가 세운 원칙을 내가 깬 것 맞다", "유럽에 뛰는 선수들에 비해 K리거는 B급"이라고 주장했다가 뭇매를 맞았고, 최강희 전 감독도 "혈액형으로 선수의 성향을 판단할 수 있다"고 농담성 발언을 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일부는 다소 과장되었거나 발언의 본의가 왜곡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감독이 자신의 판단을 합리화하거나 책임을 면피하려다가 오히려 더 큰 비난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감독은 저마다 자신만의 확고한 주관과 철학이 있고 자부심도 매우 강하다. 하지만 '내가 이 팀과 축구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이게 최선이다'라는, 과도한 믿음은 독선과 고집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신태용 감독의 언행을 가만히 듣다 보면 도대체 같은 경기나 선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게 맞나 싶을 만큼, 언론이나 대중의 눈높이와는 전혀 다른 해석으로 당혹감을 준다. 실망스러운 결과도 신 감독은 마치 훌륭한 성과를 낸 것처럼 말하기 일쑤다. 반면 단점이나 약점을 지적받는 것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신태용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 시절에도 수비 조직력이 불안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당시 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수비는 약하지 않다.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니 수비가 약하다는 지적을 하지 말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세간의 비판에 반박할 수 있지만 비판 자체가 사기에 영향을 준다며 아예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은 어이없는 발상이다. 실제로 신태용 호가 당시 8강에서 온두라스에 패해 떨어진 것도 결국 수비에서의 고질적인 약점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신태용 감독의 발언, 왜 팬들은 우려할까

최근 '2017 EAFF E-1' 동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의 저조한 경기력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전에서도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2-2 무승부로 끝나, 불안한 수비조직력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내용상 우리가 중국을 가지고 놀았다"고 주장하며 당당한 '정신승리'로 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후반 선수들의 체력저하와 교체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경기운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전반 추가골이 터지지 않은 것만을 아쉬워 하기도 했다.

북한전에서도 신태용식 '기적의 자화자찬'은 계속됐다. 답답한 경기운영 끝에 상대 자책골로 겨우 신승했지만 신 감독의 평가는 "스리백 전술 변화에 북한이 애를 먹었을 것"이라고 셀프 칭찬했다.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해서도 만족감을 표시했다. 선수들의 사기 진작 같은 요소를 감안해도 민망할 정도였다.

신태용 감독의 지나친 '자기 합리화'를 본 축구 팬들은 "실패를 통해 배운 게 없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이에 관해 전임 슈틸리케 감독의 인터뷰 방식과 흡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축구대표팀 감독은 국민적 관심을 받는 자리다. 대표팀의 성적은 물론이고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중심을 잡아주는 상징적인 역할도 있다. 그에 걸맞게 대표팀 감독의 언행 역시 좀더 신중하고 무게감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표팀의 불안한 경기력 만큼이나 경기 후 신태용 감독의 발언 역시 팬들의 불안 요소가 되어가는 듯하다. 신태용 감독의 언행은 본인은 물론이고 대표팀을 위해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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