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자 MLB리포트] 야구 겨울나기에서 탄생한 소프트볼

조회수 2017. 11. 23. 1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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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다니던 대학의 여자 '소프트볼(Softball)' 팀이 전국 랭킹 상위권의 강팀이라고 해서 경기를 보러간 적이 있습니다. 특히 축구 과목을 함께 수강했던 친구가 여자 소프트볼 팀 포수였는데, 축구 실력도 정말 대단해서 소프트볼 팀의 능력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일단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투수의 피칭 모습에 압도당했습니다. 언더핸드로 팔을 풍차처럼 돌리며 던지는 큼직한 공의 구속과 구위에 깜짝 놀랐고, 변화구도 자유롭게 구사하는 모습에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마운드와 홈플레이트의 거리는 야구보다는 약간 짧아보였지만(나중에 찾아보니13.11미터로 야구의 18.44미터보다 5미터 정도 짧은 거리) 그래서 투수가 던지는 공은 그만큼 더 위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전까지 알고 있던 놀이삼아 하던 소프트볼과는 차원이 다른 그 종목은 ‘패스트피치(fastpitch) 소프트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패스트피치 소프트볼은 미 전역의 고교, 대학은 물론이고 지역별 수많은 아마추어 리그와 여자 프로리그 등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Wikimedia Commons

소프트볼에는 ‘패스트피치’, ‘슬로우피치(우리가 흔히 놀이로 하는)’, 그리고 둘을 절충한 ‘모디파이드’ 소프트볼 등 3종류가 있습니다. 투수의 구속 차이도 크지만 규정도 각각 조금씩 다릅니다. 패스트피치 소프트볼은 기본적으로 야구와 거의 규칙이 같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야구를 기본으로 변형된 이 소프트볼이라는 스포츠는 그 탄생부터가 ‘야구사랑’으로 우연히 시작됐다는 재밌는 유래가 있습니다.

1887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 시카고의 패라곳 보트클럽 빌딩에서 추수감사절 기념 겸 라이벌 풋볼 경기를 기해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 동창들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날 벌어진 양 팀의  풋볼 경기를 놓고 내기도 하고 친선 모임을 펼친 끝에 예일이 17-8로 하버드를 꺾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약간 다른 버전이 있기는 합니다. 한 예일대 동문이 승리를 기뻐하며 그곳에 있던 복싱 글러브를 자기 친구에게 던졌고, 친구가 청소막대기로 글러브를 받아쳤다는 설이 하나 있습니다. 또 다른 버전은 승리한 예일대 동문 하나가 하버드대 동문에게 복싱글러브를 투척했고, 그걸 막대기로 받아쳤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장난이 잠시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조지 행콕이라는 스포츠 기자가 ‘플레이 볼!’이라고 외쳤습니다. 실내에서 야구를 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시즌이 오래전 끝나 야구에 굶주렸던 이들은 즉시 실내 야구(Indoor Baseball) 비슷한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분필로 홈플레이트와 마운드, 그리고 파울 라인을 그은 후 양 팀은 복싱글러브를 단단히 묶은 공과 막대기로 야구 규칙을 적용한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공이 딱딱하지 않아 글러브는 필요 없었습니다. 난타전으로 진행된 이 경기는 41-40으로 끝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소문은 빠르게 퍼집니다.

겨울에도 실내에서 야구 놀이를 할 수 있고, 예일대와 하버드대 동문들이 시카고의 한 창고에서 '인도어 베이스볼'을 했다는 입소문에 곳곳에서 비슷한 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만인 1888년 크리스마스 날 필라델피아의 한 박람회에서 첫 공식 ‘실내 야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야구 선수들이 겨울 동안 감각을 다듬는 방법으로 이 경기가 퍼졌지만, 일반인들에게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인도어 베이스볼’은 단지 야구에 굶주린 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하는 스포츠에서, 야외에서도 아무 때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로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소프트볼의 아버지’로 불리는 행콕은 1889년에 이 경기의 공식 규칙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공의 둘레는 약 43cm(야구공은 약 23cm)이고 방망이의 두께는 4.5cm를 넘지 못한다.’ 등의 규칙이 정해졌습니다.

1907년 실내야구 선수의 타격 모습 ⓒWikimedia Commons

1895년 미니아폴리스에서는 첫 소프트볼 리그가 생깁니다.

루이스 로버라는 사람이 소방관들의 체력 단련을 목적으로 소방서마다 팀을 구성해 리그를 만들었고, 그가 근무했던 미니아폴리스 ‘19 소방서’는 소프트볼 국가사적지로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방관리그에서는 시카고 패라곳 클럽에서 쓰던 둘레 43cm 공이 아닌 30cm의 더 작은 공을 사용했습니다. 갈수록 이 작은 공이 더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슬로우피치와 패스트피치 소프트볼로 갈리는 원인이 됩니다.)

1897년에는 미국을 넘어 캐나다의 토론토에 소프트볼리그가 생겨났을 정도로 빠르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물론, 당시는 모두 제자리에서 언더핸드로 공을 던지는 슬로우피치 소프트볼이었고, 직업 선수가 아닌 일반 야구팬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인기몰이가 됐습니다.


처음엔 ‘실내 야구(Indoor Basebal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지만 야외에서 더욱 활발히 진행되며 이름이 무색해지자 ‘키튼볼’ ‘레몬볼’ ‘다이아몬드볼’ ‘머시볼’ ‘펌프킨볼’등 팀명이나 별명으로 불리던 이 경기는 1926년에 처음 ‘소프트볼(softball)’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미국 레크리에이션협회의 총회에 참석한 YMCA 대표인 월터 해켄슨이 이 경기의 이름을 ‘소프트볼’로 통일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1930년대에는 미국 전 지역과 캐나다 등 인근 나라로 소프트볼이 널리 전파됐고, 1933년에는 미국 전역을 통합하는 ‘아메리칸 소프트볼 협회’도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기간 동안에 미전역에서 모인 팀들이 대규모 토너먼트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최초의 MLB 올스타전이 열린 바로 그 만국박람회입니다.)

1936년에는 각 지역마다 로컬룰이 각기 조금씩 달랐던 것을 규정과 용어 등을 전국적으로 통일하면서 명실상부한 미국인들의 ‘또 다른 야구놀이’가 확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슬로우피치’ 소프트볼보다는 ‘패스트피치’ 소프트볼이 훨씬 더 큰 인기를 끌게 됐습니다.


슬로우피치는 도루가 허용되지 않는 등 경쟁으로서의 스포츠라기보다는 누구나 즐기는 오락에 가까운 스포츠인 반면, 패스트피치는 투수의 공도 훨씬 빠를 뿐 아니라 규정 등이 실제 야구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패스트피치 리그가 미국 곳곳에 생기는 등 큰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53년에 아마추어 소프트볼협회에 슬로우피치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전 연령을 대상으로 전통적인 슬로우피치 소프트볼도 대중적인 인기를 다시 확보해갔습니다. 야구 선수가 아니어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적인 오락으로는 숫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습니다.


슬로우피치와 패스트피치는 정 반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똑같이 야구와 사촌이면서도 많이 다릅니다. 우선 공 둘레가 41cm와 31cm로 큰 차이를 보이며, 규정도 많은 차이가 나는 등 두 개의 종목으로 확연히 구분되고 있습니다. 경쟁 종목인 여자 패스트피치 소프트볼은 1996년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으며, 2012년부터 빠졌다가 2020년에 다시 올림픽에 복귀하게 됩니다.

1970~80년대에는 남자 소프트볼 프로리그가 성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남자 프로리그는 사라진 반면 여자 소프트볼 프로리그는 경영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도 리그와 팀이 사라지고 새롭게 탄생하며 올 시즌까지 꾸준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베이징에도 여자 소프트볼 프로팀이 생겼습니다.


1887년 늦가을 시카고의 한 창고에서 야구를 그리워하던 청년들이 장난삼아 놀았던 소프트볼은 현재는 11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일반 야구팬들의 놀이인 슬로우피치와,  지역 리그에서 펼쳐지는 경쟁의 장인 패스트피치로 양분되며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minkiza.com, MLB.com, Wikipedia,  Library of Congress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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